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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18) - 다윗성(3)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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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18) - 다윗성(3)

 

 

예루살렘 총정리


1. 예루살렘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재건축되기 전까지 폐허로 남아 있었다.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세스바살과 제사장 여호수아 등과 함께 1차 귀환을 하였다(스 2장). 이들은 즉시 번제단을 수축하고 그 이듬해에 성전을 세우기 위해 기초를 놓았으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와 거짓 상소로 중단되고 말았다(스 4:1116).


2. 그러다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학 1:4-6;8, 2:4, 슥 4:610)와 다리오 왕의 후원으로 B.C. 516년에 성전이 완공되었다.


3. 그 후 B.C. 458년에 에스라가 백성을 이끌고 2차로 귀환했으며, 얼마 후에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술 관원으로 있었던 느헤미야가 귀환하였다. 그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52일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세웠으며, 성문들을 중건하였다. 이 문들은 양문(느 3:1), 어문(느 3:3), 옛문(느 3:5), 골짜기문(느 3:13), 분문(느 3:29), 샘문(느 3:15), 수문(느 3:26), 마문(느 3:28), 동문(느 3:29) 등이다. 성벽의 건축 순서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의 북쪽에서 시작되었다.


4. 약 260년 후 B.C. 198년에는 팔레스타인 땅이 시리아의 셀류쿠스 왕 안티오쿠스 2세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5. 예루살렘이 최대의 수난과 수치를 당한 것은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에 의해서였다. 그는 성전을 약탈하고 제우스 단을 세웠다.


6. B.C. 165년 마카비 반란으로 성전이 회복되었으며, 그 후 하스모니안 왕조는 로마가 개입하는 B.C. 1세기 중엽까지 예루살렘을 통치했다. BC 37년에는 하스모니안 왕조의 마지막인 헤롯 대왕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7. 헤롯 대왕 시대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된 헤롯 대왕은 로마의 비호 아래 예루살렘을 확장하고 요새화했다.


8. 그는 제일 먼저 성전 경내 북서쪽 모퉁이에 있던 요새를 재건하고 그곳을 자기의 보호자였던 로마 장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이름을 따서 안토니아 라고 명명했다.


9. 당시 예루살렘에는 대략 4만 명에서 7만 명 가량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의 가장 야심찬 계획은 성전을 증축하고 그 경내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극장, 시장과 광장, 수도, 저수지, 주랑의 통로, 성전 지역과 윗성을 서로 연결하는 다리를 만드는 등 특별히 건축에 있어서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10.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주요 활동지 가운데 하나였으며, 무엇보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성령 강림과 초대교회의 탄생도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루살렘성은 아그립바 왕(헤롯 대왕의 손자, A.D. 41 - 44년) 때에 그 규모가 가장 컸다.


11. 로마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유대인들의 반란(A.D. 66년)으로 인해 A.D. 70년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과 망대들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12. 그 후 A.D. 135년에 바르 코크바(Bar Kokhba)의 지도로 유대인 독립 운동이 일어나자 하드리아누스(Hadrianus) 황제는 다시 한 번 철저히 예루살렘을 파괴했다. 그는 예루살렘의 폐허 서쪽 언덕에 로마식 도시를 건설한 뒤, 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라고 불렀다. 제 2성전이 있던 자리에는 주피터의 신전을 짓고 그 동쪽 앞에 올리브 산을 향해 주피터 상을 세웠다.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유대인들은 추방되었다.


13. 콘스탄티누스가 통치하기 시작한 4세기 초 그의 어머니 헬레나(Helena)는 예루살렘에 많은 교회를 세웠다. 그 후 이곳에는 많은 교회들과 성당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건물이 A.D. 335년에 준공된 성묘교회이다. 이 때가 비잔틴시대의 시작으로,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국적으로 성경과 관련되는 곳에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졌다. 이 시대 건물들의 특징은 교회 바닥의 아름다운 모자이크이다. 또한 동유럽에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 정교회인들이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도 A.D. 3세기 내지 4세기경으로, 지금도 성내의 서남쪽 부분을 계속 차지하고 있다.


14. 예루살렘은 그 이후에도 페르시아, 아랍, 투르크, 십자군, 영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당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15. A.D. 636년에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칼리프 오마르(Khalif Omar)가 성전이 있던 자리에 모스크를 세웠으며, A.D. 691년에는 아베드 엘 마릭(Abed El Malik)과 벤 마완(Ben Marwan)과 오마야드 칼리프(Omayad Khalif)가 오마르의 작은 모스크를 현재의 모스크로 대치시켰다. 이것이 모리아 산에 세워진 이슬람교의 성전 ‘바위 돔(Dome of the Rock)’이다.


16.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던 예루살렘은 1099년에 유럽의 십자군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다. 이 때 바위 돔은 ‘하나님의 성전(Templum Domini)’으로 바뀌었고 많은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이 학살당하였다. 또한 비잔틴시대의 교회가 있던 터 위에 다시금 웅장한 건물들이 세워졌다. 이 시대 교회 건축의 특징은 건물이 높고 규모가 큰 편이나, 별로 섬세하지 못한 것이다. 이 시대의 건물로 가장 깨끗이 보존되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의 스데반 성문 안에 있는 성 안네 교회이다.


17. A.D. 1187년에 이슬람 제국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살라딘(Saladin)이 점령했으며, 그 후 88년 동안 십자가 대신 초승달 모양의 이슬람 상징이 돔의 지붕에 달리게 되었다. 이후 A.D. 1260년에는 주인이 이집트(맘루크 왕조)로 바뀌었고 , A.D. 1516년 투르크의 술탄 셀림이 점령했다.


18. 현재의 예루살렘은 16세기 중엽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탄 슐레이만(Sultan Suleiman) 1세가 1537년에서 1542년 사이에 세운 예루살렘 성을 기준으로 해서, 성안의 도시가 구도시(the Old City)로, 그 외부에 199년 전부터 새롭게 현대식으로 세운 도시가 신도시(the New City)로 간주된다.


19. A.D. 1860년에 영국계 유대인으로 시온주의자인 몬테피오리 경이 힌놈의 골짜기 서편에 첫 유대인 동네인 ‘예민 모세’를 세웠다.


20. A.D. 1917년 영국군에 의해 점령된 후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왔고, 그들의 대부분은 서 예루살렘에 정착하였다.


21. A.D. 1948년 5월에 이스라엘이 독립할 때에는 예루살렘 성이 요르단 영토였기 때문에 성내에 살던 유대인들은 쫓겨났다. A.D. 1949년 12월 5일에 이스라엘은 서 예루살렘만 점유한 채, 이곳을 수도로 결정하였다.


22. 그 후 A.D. 1967년에 있었던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 전체를 회복하여 현재까지 점령하고 있다. 현재 예루살렘은 네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유대교, 기둑교, 이슬람교, 아르메니아 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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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산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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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항공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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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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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벽(통곡의 벽)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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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박물관 입구)을 바라보며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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