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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아린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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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된다는 것은 영어로는 overwhelming이라고 한다. 미국 사람들처럼 이런 느낌에 민감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이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모든 사람들의 문제일 것임으로 한번 짚고 넘어가 보자.


압도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분량 이상으로 먹거나, 보거나, 생각하거나, 당하게 되면 생기는 감정, 혹은 그럴까 봐 지레 겁을 먹는 감정이다. 얼마 전에 한 학생을 만났다. 그 학생에게 전화를 한 것은 정말 주님의 안배를 따른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그런데, 만나기 시작한 지 2주밖에 안됐는데, 좋다고 그러면서 마구 오기 시작하더니, 일주일에 네 번이나 집회를 왔다. 그러고는 그만 나가떨어졌다. 나중에 연락이 간접적으로 오기를 압도되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저러다가 일나지'라고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역시나'이다.


그러면 왜 이런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는 물론 봉사자들의 미숙함이 가장 큰 이유이다. 아무리 새 신자가 좋아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을 집회에 오게 하는 것은 금할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기의 접촉으로 가장 좋은 미팅은 혼자서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 동안(적어도 한 두 달 혹은 석 달)은 일대일 양육을 할 일이다. 이것도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하다(이런 것은 공식이 아니고, 나의 체험을 말하는 것임으로 이견을 달지 않기 바란다. 각 사람마다 선호가 있을 것이므로 알아서 하시고, 다만 참조만 하시기를 바람). 그런 후에 소그룹 모임에 혹은 소그룹보다 더 비공식적으로 느껴지는 모임이 있다면 데리고 가는 것이 좋다. 대략 한 학기 정도 후에 소그룹에 인도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 후에는 주일 집회를 데려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번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 가지 원인은, 처음 단계인데, 너무 많은 지체들에게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주님은 이런 일에서, 자신의 속도가 있다. 그런데 양육시간이 끝난 다음에 다음날의 홈 미팅에 오라고 해서 왔다. 그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집에 바래다주는 한 형제가, 다음날의 그룹 성경공부에도 초대해서 오게 되었다. 나는 그 형제를 거기서 보는 것이 평강이 없었지만, 집회 데려오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식의 인식에 대해서는 정말 대항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토요일의 우리 행사에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형제와 동향인 지역 성도들이 그 형제를 발견하더니, 너무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홈 모임' 초대를 한다. 안 그래도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중인데, 최종적으로 이 형제들의 '열정적인 환영'이 강타를 먹인 것이다.


거기다 나도 거들어서, '종강할 시, 내가 형제를 집에까지 차로 데려다주마'라고 제안 한 것이다(인제 만난 지 겨우 한 달, 네 다섯 번 본 사람이 뭐가 친하다고 이런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인가!).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독립적인 사람들일수록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어려워한다. 나는 내 안에서 주님의 느낌이 후퇴하고 있었는데도, 한번 뱉은 말이라서 담기도 어려웠다.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형제를 '급격하게 삶으려고' 한 것이다.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맘이 어렵다. 왜 언제나 이런 식의 실수를 해야만 하나!!! 도대체 우리는 언제나 온전케 될 것이며, 이 떨구어 버린 영혼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완전히 떨구어 버린 것도 아니다. '나의 속도를 조정하겠다는 것이지 닫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공과를 배우고 나아가기 원한다. 이런 일의 근저에는 일전에 어떤 형제의 교통이 내 맘을 누르고 있었던 것도 한 원인이다. 이 형제는 봉사교통에서, '그룹 성경공부를 알리기는 알려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알리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당신은 아직도 집회의 개념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데, 오스틴 전체의 방향이 집회중심에서 관계중심으로 전환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도대체 어떻게 그룹 성경공부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이냐? 그 모임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모임을 키우겠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섞임이 필요하면, 다른 여러 방식도 있고, 그룹 성공은 그 많은 방식의 하나에 불과하다. 경우 경우마다 사람의 필요가 다른 것인데,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획일화시킬 위험이 있다.'


그래서 결국 내 말대로 결론이 나기는 했어도, 나 자신은 '혹시 내가 개인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자꾸 그런 방향으로, 즉 '집회가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좋을 것이다'라는 그 오래된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이 큰 원인일 것입니다. 이번 경우를 대하면서, 뼈아픈 공과를 재확인하게 됩니다.


즉 '생명의 내적인 느낌의 인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적인 대의가 옳아도, 생명의 길만이 사람을 살립니다(외적인 대의와 방향도 필요합니다).


사실 내적인 생명의 느낌에 따르면, 지난번 토요일의 종강집회에 이 형제가 오는 것은 '아니다'였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내부의 강박적인 느낌에 더하여, '나라도 사람을 좀 더 많이 데려가야지, 새 사람들이 거의 없으면 분위기가 뭐가 되겠는가'라는 이런 외적인 쇼맨십도 상당한 한몫을 했음을 자인해야 합니다(우리는 이런 선한 아말렉을 맘속에서 철저히, 무자비하게 궤멸해야 합니다. 오직 내적인 생명률을 단순하게 따라야 합니다. 사울이 이것에서 실패해서 그의 왕의 직분을 상실한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비인간적이고, 사람을 일의 성취로 삼으려는 야비한 사람의 타락한 본성의 표현인데, 이런 것을 거부하기로 작심한 내가, 보기 좋게 그러고 있는 사람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돕는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우리의 일의 성취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정말 주님이 얼마나 내 안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역사해야 하는지....우리는 주님의 본성의 본질인 사랑으로 재조성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우리의 영적인 성취의 목표로 삼으려는 야비함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결코 교회생활은 따뜻하지 않을 것이고, 인수가 증가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덤으로 말하자면, 새 사람을 만나면, '열정적으로 환영하거나, 열정적으로 말을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그냥 평범하게 말하고, 적당히 말하고, 평범하게 표현하는 것이 훨씬 사람의 맘을 편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오래 가야 할 길이고, 결국 평범한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 하나님-사람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에서 우러나오는 편안한 따스함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인성을 통해서 진리의 말씀이 소화되어 나온다면, 추운 겨울도 훈훈할 것입니다.


'떨구어 먹었나?'라는 생각에 맘 한편이 아리지만, 그래도 사람이 서고 넘어지는 것은 제 주인에게 달린 것이므로 주님께 중보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렇게 위로도 해 봅니다. '아니, 모든 낚시꾼이 모든 고기를 다 낚아야 하나? 올라오다 중간에 떨구어 먹는 것도 다반사가 아닌가?' 다만 이런 일이 있을 때, 동료들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사람을 얻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몸을 건축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주님이 나 같은 형편없는 자도 버리지 않고, 계속 온전케 하사, 당신의 목적에 더욱 유용한 자로 재조성하시기를 간절히 기대할 뿐입니다. 아멘



글쓴이 : 빛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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