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들의 누림글 모음 장소 ^^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새로운 창조를 누림

첨부 1


roza-buton-lepestki-makro-2991.jpg



말씀 앞에 나아갈 때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어떤 것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을 읽을 때 용어는 익숙하지만 그 의미가 낯설 때는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오 주님, 이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 이 말씀이 내게 빛으로 비춰지게 하시고, 말씀의 실재 안으로 깊이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 아침에 이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은 성경 구절은 에베소서 2장 15절입니다.


“규례들로 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 안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이 둘을 그분 자신 안에서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시어 화평을 이루시려는 것이며.”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규례들로 된 계명의 율법을 당신의 육체 안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더 이상 이런 규례들이 우리를 묶지 못하게 하소서. 오 주 예수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을 헐어버리심을 감사합니다. 믿는 이들 사이에서 규례로 인해 생긴 모든 담들도 허물어지게 하소서. 오 주님, 또한 당신은 당신 안에서 한 새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어떠한 창조인지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낡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새 사람, 그것도 한 새사람입니다. 이 한 새사람 안에 참된 화평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 새로운 창조, 한 새사람에 대해 우리의 눈이 더 열리게 하시고 더 보게 하소서. 그 실재를 더 누리게 하소서.


몇 분 지체들과 말씀을 기도로 먹을 때, ‘규례’, ‘창조’, ‘화평’ 이런 단어들이 마음 안에 잔영으로 남습니다.


사실 ‘규례’와 ‘화평’은 서로 관련이 있습니다. 누구든 규례를 주장하면 화평은 쉽게 깨집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도 바울도 사실은 과거에 수많은 규례들로 화평을 깨던 자였습니다. 그는 옳은 것, 성경적인 것으로 주님의 몸 된 지체들(예루살렘 교회)을 박해했었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또한 적극적인 실재인 이 한 새사람을 보지 못하면 이런 일들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습니다(요16:2).


그런데 종교적인 방면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이런 저런 규례들로 쉽게 화평이 깨지는 것을 봅니다. 어떤 분의 말에 의하면 성경이 지키라고 말하는 율법(규례)이 총 631가지랍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우리들 각자가 만들어 낸  규례들까지 합치면 숫자는 훨씬 더 많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 사회 안에서 화평은 너무나 쉽게 깨지고,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 소위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 가정의 화평을 깨는 것의 상당 부분이 이런 규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이 붙들어야 할 유일한 규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영 안에 설치된 ‘생명의 영의 법’(롬8:2), 이 하나 뿐인 것을!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제게도 많은 실패의 체험이 있습니다. 특히 융통성이 부족하고 고지식한 성격은 남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며, 반대로 자기 의에 빠지게 했습니다. 주님은 그런 저를 주권적인 안배 가운데 여러 차례 폭로 시키셨습니다. 그대로 두면 그리스도 자신으로 충만된 몸을 건축하시려는 그분의 경륜에 방해가 됨으로 이런 저런 환경을 통해 코너로 몰아넣으셨습니다. 그 결과 규례는 사람을 살게 하지 못하고, 생명의 공급과 체험만이 사람을 살게 함을 조금씩 배우게 하십니다.


물론 그러한 폭로와  부서뜨림 외에 몸 안에서 넘치는 공급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형제님의 <온전케 하는 훈련> (한국복음서원)을 읽다가 ‘부부 싸움을 반으로 줄이는 비결’을 언급한 대목에 눈이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요지는 그리스도 자신이 아닌 것에는 융통성을 발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설거지물이 뜨겁든 차든 하나님의 신약경륜과 무관하니 그런 일로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어느 날은 말씀을 먹다가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되, 중요한 것은 오직 새 창조 뿐입니다.”(갈 6:15) 라는 구절이 유난히 강한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창조하시어’라는 말이 새삼 만져집니다. 여기서 ‘창조하시어’로 번역된 원문은 ‘크티조’(2936)입니다. 이것을 ‘지어’로 번역한 개역 성경을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원문의 의미를 좀 더 살린 회복역 성경으로 읽었을 때 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참고로, 한글 킹제임스 성경도 ‘창조하사’로 번역함).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창조’는 ‘새로운 것을 처음 만듦’이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한 새사람’이 바로 그런 새  창조물입니다. 회복역 성경 해당 각주는 “옛 창조 안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본성을 어떤 피조물 안에도 넣지 않으셨고, 심지어 사람 안에도 넣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인성 안에 넣으심으로, 한 새사람인 교회를 창조하셨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또 말해 왔지만 그 교회가 새 창조물이요 한 새사람이라는 말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소위 교회들이 이런 개념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교회와 성경이 말하는 교회 사이에 간격이 있다면 그 간격은 반드시 좁혀져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경적인 교회관이 우리의 표준이요 최종 목적지입니다.


<새로운 창조물인 교회>, <한 새사람인 교회>,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이 인성 안에 넣어진 결과인 교회>는 오늘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에 가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교회의 실상을 눈이 열려 더 보고, 그러한 교회의 실재 안에서 더 발견되기를 얼마나 사모하는지요! 이런 교회는 하나이니 당연히 ‘분열’은 삼켜져야 하고, 이런 교회는 ‘새’ 사람이니 반드시 모든 ‘낡음’은 씻겨지고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오 주님, 이 아침에 낡은 것을 벗고 새로움이신 당신을 덧입기 원합니다. 화평을 깨는 요인들을 붙들거나 주장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모두를 주관하게 하소서. 모든 믿는 이들 안에서 당신이 새롭게 창조하신 한 새사람인 교회의 실재를 더 얻으소서! 아멘.



글쓴이 : 갓맨

출처 : http://www.btmk.org/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 바로 우리의 일입니다.
    • 유진
    • 조회 수 7019
    • 16.04.14.14:32
    우리의 말 안에서 우리가 드러나는 것보다 우리의 일 안에서 우리의 어떠함이 더욱 드러납니다. 우리가 처리받지 못한 만큼 우리의 일은 우리의 경쟁, 우리의 야심, 우리의 지위, 우리의 주관함...
  • 요한 성당을 찾아간 날
    엊그제 시막내고모님이 돌아가셔서 남편을 따라 급히 서울에 갔었습니다. 분당에 있는 요한성당에 찾아간 시간은 저녁 7시경, 장마비는 그칠줄 모릅니다. 웅장한 건물에 여기저기 성모상, 예수...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1) 에스더서를 흠뻑 누리고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합니다. 하나님은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합니다. 숨어계시는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 새로운 창조를 누림
    말씀 앞에 나아갈 때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어떤 것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을 읽을 때 용어는 익숙하지만 그 의미가 낯설 때는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오 주님, 이 ...
  • 시간이 지나면..
    • 유진
    • 조회 수 7098
    • 16.05.06.20:42
    시간이 지나면 생명으로 한 것만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유창한 것도 사라지고 아름다운 것도 자취를 감추고 영원한 것은 다만 생명으로 한 것 뿐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것 사람의 ...
  • 더 깊어진 야곱의 다루심....
    영적이지만 건축되어 있지 않음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어렵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것이 그렇게 단순하게 규정될 수 없는 것이기에... 야곱은 여전히 많은 고난을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
  • 참 믿음은...
    믿음이 하나님의 주입하심에 의해 산출되는 어떤 것이라면, 심지어 참 믿음이란 하나님 자신, 곧 우리 안에 주입되셔서 우리의 믿는 능력이 되시는 그분 자신이라면, 하나님의 주입하심 없이 믿...
  • 축복을 생각하다
    7080세대라고 불리는 세대의 사람들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제목의 책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처럼 인문학 열풍이 불기 전인데도 이 책은 대학의 필수 교양서적 중 하나로 꼽혔을 뿐 아니라 대중...
  • 더 이상 껍질이 아닌..
    • 유진
    • 조회 수 5396
    • 16.05.24.14:29
    어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것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주님의 긍휼로 작은 계시가 있고 작은 누림이 있어 어떤 방향으로 방향성이 정해졌다고 해도 그러한 존재가 한 번에 변화되는...
  • 멀쩡해진 오늘은...
    무거운 후라이팬을 들다가 손목이 휙 돌려진 후 반년을 훨씬 넘게 왼쪽 손목을 제대로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왼쪽 손목을 아파하면서 안 것은 왼손이 그렇게 많은 역할을 하는지 ...
  • 그리스도의 신장
    우주 끝까지 간들 주님의 팔 자락을 만질까.. 하늘 끝까지 오른들 주님의 머리카락을 만질까.. 음부에 내려간들 주님의 발꿈치를 만져볼까.. 그분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어찌 측량할 ...
  • 전 걷기를 잘 못합니다...
    제가 제일 잘 걸어 다녔던 것에 대한 저의 기억은... 아마도 초, 중등 때까지 였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는 한 3키로 쯤 떨어져 있었고.. 중, 고등학교는 읍내에 약 4키로 쯤 떨어져 있었으...
  • 체험의 강은..
    • 유진
    • 조회 수 5599
    • 16.06.10.15:05
    체험의 강은 넓고 깊어 쉬이 건널 수 없습니다. 때로는 건너편이 바라 보이지만 건너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강을 건넌 자가 되기를 두려워합니다. 교회 생활 가운데 실재와의 간격은 넓고 깊...
  • 우리의 기질을 처리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
    Nee 형제님은 오십세가 되기 전에 겉사람을 파쇄하는 공과를 배우지 못한다면 교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Lee 형제님은 '오늘날 내가 주님께 매우 자주 ...
  • 그 하나
    여로보암의 기반은 높은 지지율이었습니다. 열두 지파 중에 열 지파가 따랐으니 80%가 넘어 압도적입니다. 그렇게 <높은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통치자라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추진력을 ...
  •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며
    사람이 쓴 책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은 늘 새롭고 그 풍성은 다함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백지와 같고, 열린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간다면 기존에 익히 알던 말씀에서도 새로운 빛비...
  • 처음의 위치로..
    • 유진
    • 조회 수 5590
    • 16.06.27.16:13
    강해지려고 할 뿐 먼저 약해져야 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얻으려고 할 뿐 먼저 잃어야 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되려고 할 뿐 먼저 되지 않아야 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남자가 되려고 할 뿐 먼저 여...
  • 남은 길을 갈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제가 무슨 글을 쓸 때마다 카페 얘기를 하는 것은 그것이 제 얘기이기 때문에 빗대어하기가 수훨한? 이유뿐입니다....... ............... 처음으로 세상밖으로 나와 크던 작던 어떤 일을 벌인...
  • 아! 주님이 승리 하셨구나
    매일 아침부흥 하던 시간에 전화가 오지 않아 직장을 다니는 자매님인지라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10시 반 정도 되어서 따르릉... 벨이 울렸습니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 인지라 오...
  • 생명과 건축
    창세기에서 야곱의 일생이 생명의 성숙을 말한다면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에 의한 그 분의 거처를 말한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을 건축하리니..(마16:18) 이 예언은 창세기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