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변증자료를 나누기 위한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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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니스 리 측과 최삼경 목사와의 진리논쟁) 『누가 이단인가?』에서 발췌...

첨부 1

 

장로교단 내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예장 통합 측은 최삼경 목사가 연구한 지방교회자료를 근거로 지방교회를 이단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했었다. 그러나 3년 동안 쌍방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진리공방을 한 결과 그러한 단정이 성급했고, 근거없는 정죄인 것이 이 토론을 지켜본 양심적인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확인되었다. 반면에 최삼경 목사는 분리된 세 하나님들을 믿는 삼신론 이단자(장로교 교리기준으로도)임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장로교 통합측은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을 철회하고 지방교회 측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 지방교회 성도중 한 사람으로서 통합측의 양심적인 조치를 기대해 본다. 다음은 최삼경 목사와 토론을 시작하는 지방교회측 글 중 일부이다. 독자들의 공정한 판단을 위해 인용 소개한다. 이러한 일들에 관심있는 분들은 남의 말만 듣지 말고, 토론원문자료인 '누가 이단인가'를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단판정의 상대성

 

교회역사를 볼 때 한 단체가 다른 단체를 '이단'이라고 판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인 일임을 알 수 있다. 즉 누가 이단이고 누가 정통이냐는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달린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3개의 대형 교파(교단)를 든다면 그것은 로마천주교, 개신교, 동방정교회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이단으로 판정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로마천주교는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확산으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트렌트 공의회(1545-1563)에서 루터, 칼빈, 쯔빙글리의 개신교 교리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반대로 개신교의 일부 신학자들은 성경과 고대 공의회(500년 이전)를 기준으로 삼아 로마 카톨릭을 "실제적 이단(real heresy)"으로 평가하기도 한다(교회와 신앙, 94년 1월호,108-109쪽, 교회론에 나타난 이단사상).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단인가? 개신교인가? 아니면 로마 천주교인가? 이단판정의 기준은 또 무엇인가? 누가 소위 '정통교회'인가에 대해서도 사람과 교단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이단이냐 정통이냐의 기준은 성경 자체이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만이 사람의 양심을 향해 참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시 교리나 신조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순수하고 균형잡힌 말씀이 루터의 양심을 사로잡아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지 않았는가!

 

최 목사님은 지난 호 기사에서 인신 공격을 피하고 교리 논쟁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따라서 최 목사님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대의 인신 공격인 '이단'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번 토론을 통하여 양 측이 믿고 있는 진리의 전모를 다 제시한 후 이것을 지켜본 독자들이 '정통성'이 어느측에 있는지 판단하게 하자. 이것이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위트니스 리의 신앙관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믿는이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의 신앙을 판단한다는 것은 두렵고도 떨리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롬14:10). 위트니스 리는 거듭남을 체험한 이후 지금까지 약 70년을 성경 연구에 일생을 바쳐 온 주 안의 신실한 형제이다. 그는 워치만 니와 25 년 간 가장 친밀하게 동역하며 영적공과를 배웠다. 또한 그는 21년에 걸쳐 신구약 전체의 주석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을 구성하는 핵심 진리는 근본적이고 정통 노선 안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고든 맬튼 박사는 위트니스 리가 쓴 책들을 깊이 연구한 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방교회의 신앙고백은 그 핵심적인 요소에 있어서 완전히 정통적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허용하듯이, 신앙과 생활에 관한 덜 중요한 요점들에 대해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특권을 그들에게도 허용하기를 제안합니다"(J.G.Melton, An Open Letter Concerning the Local Church Witness Lee and the God-Men Controversy p. 27 미국 종교 문제 연구소).

 

위 맬튼 박사는 그가 쓴 종교백과사전(1993 년 제4판, 539 쪽)에서 그는 지방교회를 플리머스 형제회와 함께 "독립적인 근본주의 계열" (Independent Fundamentalist Family)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1970년대 후반, 성경 출판으로 유명한 토마스 넬슨사는 위트니스 리의 신앙관을 오해하여 비판한 한 권의 책을 출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방교회측의 '강력한 항의'로 토마스 넬슨사는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을 공식 사과하고 문제의 책을 미국내 전 서점에 서 회수한다는 광고를 83년 4월 10자 미국내 18 개 주요 일간지에 게재한 바 있다.

 

월간지 '현대종교'는 84년 4월호에서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였고,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시비는 일단락 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현대종교'는 또한 1989년 6월호에서, 위트니스 리의 한국 방문의 기회를 이용하여 탁 명 환 소장과 위트니스 리와의 장문의 대담기사를 전재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의 신앙관에 대한 한국내 일부 부정적인 시각은 공정한 결론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신앙관은 성경적 기준과 지방교회측이 토론시 제시하는 객관적인 내용을 통해 장로교단 내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이단판정기준-목사제도?

 

이단 (진리) 논쟁은 역기능도 있지만, 순 기능도 많다. 즉 쌍방의 주장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고정관념이 깨지고 "성경의 순수한 가르침" 안으로 인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계 내에는 "그 "목사제도가 없으면 이단이며, 이단은 아니더라도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방교회에는 "목사"가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어떤 성도는 목사가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목사가 있다고 한다. 기존 교단에서 보여지는 목사를 말하는지, 성경이 말하는 목사를 말하는지에 따라 두 가지 답변이 다 가능하다고 본다. 다음은 장로교 통합 측 최 삼경 목사님이 "지방교회는 목사제도가 '장로교단'과 다르니 이단이다"라고 한 것에 대해 지방교회측이 반론한 것이다. 독자들이 양심과 성경을 기준으로 판단해 보기 바란다.

 

1. 최삼경 목사가 말하는 소위 '정통교회'의 목사와 장로의 개념은 무엇이며, 그것들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가 기성교회의 목사를 부정한다는 최 삼경 목사의 말은 우선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들을 때 기분 좋은 말이 아니다. 바로 이 점을 최 목사가 노리고 있는 줄은 안다. 그러나 최 삼경 목사는 위트니스 리가 어느 책, 몇 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러나 최 삼경 목사가 먼저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교회 인도 직분에 대한 지방교회측의 입장을 밝힌 다음, 기성교회의 목사 제도를 비판해 보겠다.

 

(1) 지방교회에는 목사가 있는가?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지방교회에는 목사가 없다는 말을 가끔씩 듣는다. 이 말은 한 면으로는 맞고 한 면으로는 틀린다. 권위주의적이고 계급적인 의미에서 말한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목사가 없다. 그러나 '영적 아비'로서 교회를 감독하고, 지체들을 목양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양무리의 본이 되고, 이리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많다.

 

빌립보서 1장 1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함으로 한 지방교회를 구성하는 요소는 감독들(장로들)과 집사들을 포함하는 모든 성도들임을 보여 주고 있다. 주의할 것은 원문에서 "to all the saints... at Philippi with the bishops and deacons." 라고 했다는 점이다. 이 구절에 사용된 접속사가 'and'가 아니고 'with'인 것은 집사나 장로도 같은 성도임을 보여준다.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등의 직분이 없는 사람만 '성도님'이 아니고, 집사도 장로 (개신교 안의 목사를 포함한)도 '성도님'인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우리는 성경 안에 있는 장로들(행14:23, 딛1:5)과 집사들(딤전 3:8 -13)을 부인하지 않는다.

 

(2) '기성교회' 내의 계급적이고 권위적인 '교회직분'은 성경적이 아니다.

 

사실 목회자의 긍정적인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이견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일부 목회자들의 부정적인 상태까지도 정당화하려는데 있다. 지방교회를 포함하여 '참된 주의 일꾼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계급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회직분이 비 성경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기성교회에 편만한 성직자, 평신도 개념이 신약의 진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경을 보기로 하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상).

 

위 말씀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을 우리는 현대식으로 표현하여 '성직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너희'는 누구인가? 문맥에 의하면 '하나님의 소유된 모든 백성'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모든 선민들(고전6:20, 행20:28)이 왕 같은 제사장(성직자)들이다.

 

에베소서 4장 11-12절도,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들이 하는 일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원문은 '사역'임)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언뜻 보면 그들의 일이 세 가지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한가지 일에 모아진다. 그런데 바로 다음 16절에서는,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 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소위 '은사 있는 자들'의 하는 일과 '지체들'이 하는 일이 똑같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일임을 보게 된다. 즉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생명으로 전하여 주님의 양(믿는 이들)이 되게 하고, 그러한 양들에게 계속 생명을 공급하여 자라게 하는 동일한 일은 한다. 이 일이 '성직(거룩한 직업)'이 아니고 무엇인가?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요 10:10)이라고 하셨다. 바울도 새 언약(신약)의 일꾼은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영으로 분배(공급)하는 사람이라고 한다(고 후3:6, 요6:63). 즉 부활 후 주님이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오셔서 성도들을 통해 자신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고 계신 것이다.

 

기성교회측은 '목사'의 근거를 위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목사(혹은 목자)와 교사'를 합친 것에서 찾는 것 같다(박형룡, 교회론, 1988,138-139쪽). 그렇다면 자격이나 조건을 따지기 전에 묵묵히 그러나 실질적으로 '목양'과 '가르침'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눈앞에서 성경 원문에 근거한 '목사'가 아닌가?

 

'목사'라고 불리우지는 않지만 C.C.C.나 '네비게이토'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 안에서, 그리고 지방교회들 안에서 이러한 목양과 가르침에 자신을 헌신한 귀한 '성도들'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한 최 목사의 의견은 어떤가? 아울러 정규신학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고시에 합격해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야 '정식 목사'가 된다는 성경근거를 다음 호에서 밝혀 주기 바란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오해가 없기 바란다.

 

최 삼경 목사에게 하나 더 질문하고자 한다. 기성교회에서는 '목사'도 원칙적으로는 '장로'의 한 부류라고 했다(통합 측 헌법 제24조 3항, 박 형룡, 교회론, 137쪽). 그렇다면 같은 장로이면서 목사는 '성직자'가 되고 '진짜 장로'는 '평신도'가 되는 성경근거는 무엇인가? 기성교회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최 삼경 목사가 더 잘 알 것으로 본다.

 

끝으로, 최 삼경 목사는 기성교회의 '목사제도'에 계급적 또는 권위적인 요소가 없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교회와 신앙 측'에 실린 한 목사님의 말을 인용함으로 그에 답하고자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 발생되는 많은 사건과 문제는 90%가 목사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는 눈을 뜨고 찾아 봐도 참 지도자를 만나보기가 힘들고, 철저한 이기주의 아니면 이기 집단들만이 눈에 쉽게 들어오고 있다. ... 교회의 체질은 대부분이 목회자에 따라서 결정되어 지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한국교회 체질은 제사장 적인 목회자들이 율법 중심의 목회를 함으로 교인들은 목사에게 맹종하는 것으로 잘 길들여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목회자와 교인과의 관계를 오히려 불편한 관계로 만들고 말았다. 권위주의 때문이다"(교회와 신앙, '96년 6월 호, 44, 48쪽, 새교회운동협의회 대표 목사 이 평소)

 


최삼경 목사의 위트니스 리의 교회론 비판에 대한 재반박

 

(1) 최 목사는 워치만 니의 글로 위트니스 리를 공격했다.

 

최삼경 목사는 '97년 11월호의 글에서 위트니스 리가 기성교회의 교회직분, 목사, 예배, 노회나 총회제도를 부정하고, 장로개념도 다르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위트니스 리가 어느 책 몇 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했다. 단지 워치만 니가 쓴 책 한 권을 여기 저기 인용하고 임의로 저자의 의도를 왜곡시켰을 뿐이다 (독자들은 최 목사가 왜곡시킨 워치만 니가 쓴 '사역의 재고(한국복음서원)' 본문을 직접 읽고 성경과 대조해 보기 바란다).

 

최 목사는 자신의 연구보고서에서 위트니스 리가 1950 년대에 독자적인 교회를 개척함으로 지방교회가 시작되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1922년에 워치만 니에 의해 지방교회가 시작되었고 위트니스 리는 약 10년 후에 이 모임에 합류했다는 것은 이 분야를 제대로 연구한 사람들은 다 아는 상식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속이면서까지 애써 두 사람의 관계를 분리시키려 했던 최 목사가 워치만 니 책자를 근거로 위트니스 리를 공격하는 것은 앞 뒤가 안 맞는 행동이다.

 

(2) 최삼경 목사는 자신이 주장하는 목사제도가 어떻게 성경적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최 목사는 우리 측의 '목사제도'에 관계된 몇 가지 질문(같은 책, 97년 9월호, 167-168)에 끝내 답변치 못했다. 그대신 '너무도 형편없는 질문'이라는 식으로 슬쩍 넘어갔다. 최 목사는 적어도 같은 장로의 신분이면서 목사는 성직자가 되고 진짜 장로는 평신도(대표)가 되는 '목사 제도'의 성경근거가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반드시 밝혔어야 했다. 그래야 진리 토론인 것이다.

 

사실 우리 측은 한국 기독교계의 제도적,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진리 토론의 취지에 부합된 최소한의 부분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 목사는 '97년 11월호'에서 마치 자신만이 주님의 몸을 사랑하는 듯한 오만한 말을 서슴치 않았었다.

 

최 목사가 아파하는 그 천배 만배 이상으로 지방교회 성도들도 '주님의 몸'(정통교회)을 사랑하며, 분열되고, 이물질이 섞임으로 불신자들에게 조차 조롱받는 교회 현실을 아파한다는 것을 최 목사는 꼭 기억하기 바란다. 최 목사와는 달리 같은 장로교인이지만 다음의 정직한 신학자들은 현행 목사제도의 현주소를 솔직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외친 가장 기본적인 교리는 '성경만으로' 판단의 척도를 삼는다는 것이며... 목사를 제사장으로 이해하는 사상 등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자가 되신다는 신학을 약화시키거나 가리우는 어떠한 교리나 관습도 용인할 수 없음을 천명한 것이었다... 장로교회에서는 목사의 직분을 중요하게 보는 전통적인 이해 때문에, 목사는 평신도 위에 있는 직분자로 알던 중세적인 계층제도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목사와 평신도와의 구분으로 쉽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음을 관찰하게 된다. 특히 오늘날의 한국교회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아주 농후하다"(김영재 교수(합동신학원), 장로교회제도의 역사적 고찰, '한국교회의 갱신과 성령', 17-21쪽, 한국로고스연구원, 1995년).

 

"한국 장로교회는 더이상 세계 장로교회와 그 동질성을 확인하기가 힘들 정도로 바뀌어졌다... 이러한 성직자 중심의 교회구조는 현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구조의 문제이다(정일웅 교수(총신 대학원),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구조변혁, 위 책 69-81쪽). 위 글들은 최 목사 말처럼 목회자 개개인의 '인간적인 약점'이 아닌 한국교회의 목사제도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음을 독자들은 주목하기 바란다.

 

이와는 달리 성경은 영적인 생명이 성숙한 성도들인 '장로들(복수)'이 교회를 감독하고 대표한다고 말한다(행14:23, 딛1:5, 행20:17, 28-38 요이1절, 벧전5:1, 5). 더 나아가 성경은 장로(목사)들에게,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다만 본이 되라'고 충고하고 있다(벧전5:3). 그러므로 현재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계급구조는 성경진리와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상의 직분인 장로와 집사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정통교회"인가?

 

...1920년대 초반 워치만 니가 일부 비성경적인 전통과 분열이 만연된 교파를 떠나 '성경 자체'에 근거한 교회생활을 꾀함으로 시작된 지방교회들을 최삼경 목사가 '교회론'에서 이단성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존 넬슨 다비로부터 비롯된 근본주의운동이 '성경적인 교회생활'를 추구했고 워치만 니가 다비를 비롯한 형제회의 이러한 유산을 이어 받았으며, 위트니스 리가 워치만 니의 유산을 이어 받았다는 것은 이 방면을 연구한 사람들에게는 상식에 속한 일이다.

 

최 목사가 이러한 '성경적 교회관'을 가진 신실한 믿는이들을 이단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다음과 같은 자기중심적이고 비성경적인 소위 '정통교회관'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1. 최삼경 목사의 정통교회관은 자기 중심적이고 비성경적이다.

 

최 목사는 "조직과 체계 자체도 성경적인 것으로 믿는 것이 정통교회...", "정통교회가 고백하는 사도신경", "정통교회 목사가 정통교회 목사의 자성과 회개를 촉구하며 한 말...", "정통교회와 지방교회(회복교회)에는 부자와 나사로가 오고 갈 수 없는 것같은 차이..."라는 말들에서 보듯이 '정통교회'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했었다(교회와 신앙, 97년 11월호).

 

그리고 '정통교회'란 천주교에서 말하는 외적인 전승이 아니라 내적 전승, 말씀의 전승 그리고 성령의 전승을 갖는 개신교를 의미한다고 했었다(최 삼경 목사는 이 곳에서는 정통교회에서 천주교를 제외시키는 듯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계시록 17장의 '음녀요 바벨론'을 '천주교 조직체계'로 해석한 지방교회측의 주장을 일관되게 맹렬히 공격함으로 천주교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천주교인들이나 동방정교신자들을 이단으로 만드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해석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최 목사식의 '정통교회'에 대한 정의는 같은 장로교단 내에서도 일치가 안 된 정의라는 점이다.

 

첫째, 최 목사식의 정통교회에 대한 정의는 이형기 교수(장로교통합측)와 다르다.

 

최 목사는 천주교회를 정통교회에서 제외시켰으나(천주교를 포함시켜도 문제지만), 이형기 교수는 로마천주교를 정통교회에 포함시켰다(이형기, 정통과 이단, 1997년, 한국장로교출판사). 최 목사는 자기교단 내에서도 통일이 안 된 기준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최 목사식의 정통교회에 대한 정의는 김재준 박사(기독교장로회)와 다르다.

 

한국장로교회사에서 자유주의 신학과 정통보수주의 신학의 대립, 예장과 기장의 분열 등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다. 그러나 두 교단이 분열이라는 최악의 수단을 쓸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 특히 양보할 수 없는 신학적 차이가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기장' 측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김재준 박사는 상대방인 '예장' 측의 신학을 이단으로 단정했기 때문이다.

 

"그 후 김재준 목사는 보수주의 신학에 대하여 더욱 가혹한 평을 내렸다. 그는 말하기를 정통신학은 신신학보다 더 교묘히 위장된 실제적인 인본주의요,정통적인 이단이라고까지 극언하고 정통주의를 일종의 이단으로 몰아붙였다(김진복, 한국장로교회사, 1995년, 156쪽). 위 말은 한 쪽은 '정통'이요, 다른 쪽은 '정통적 이단'이라는 주장이므로 최 목사의 말처럼 둘 다 '정통교회'일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셋째, 월간 '현대종교' 편집위원이며 산본 성산교회 담임인 김진수 목사의 기준에 의하면 최삼경 목사의 교단이 이단이다.

 

김진수 목사는 월간 '현대종교' 97년 9월호에서 성경적인 이단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으면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시인'이라는 단어의 뜻은... 어떤 고문이나, 환란, 고난, 고통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고 그분을 믿는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을 '시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 일경에 동조했던 무리들이 오늘날 신앙의 정통을 부르짖는다고 떠들어대며 가장 잘 믿는이들처럼 자신들의 속을 감추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우상숭배를 받아들였다면 분명히 이단이다. 그런 이들에게서 배운 이들이야 오죽하겠는가?"(57-59쪽).

 

위 글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쪽이 신사참배 요구에 굴복한 쪽을 이단으로 본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느 한 쪽을 두둔하려는 의도가 없다. 다만 정통교회에 대한 최 목사식의 정의가 같은 장로교단 내에서도 일치가 안 된 것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런 정통교회관을 근거로 남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독자들이 판단하기 바랄 뿐이다. 만일 최 목사의 말대로 자기 교단을 '이단'이라고 한 상대방을 '정통교회'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이단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최 목사가 남발하는 소위 '정통교회'라는 말의 정체는 최 목사식의 자기중심적이요 비성경적인 개념이지 "성경적 개념"은 아님을 독자들은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최 목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다. 최 목사는 교회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이 만든 건물이나 조직이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만이 교회가 아닌가(엡 1:23)? 그렇다면 교회(거듭난 믿는 이들)면 교회이고 교회가 아니면(가라지, 불신자들) 아닌 것이지, 정당이나 사회단체처럼 교회에 '정통' '비정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꼭 그런 표현을 쓰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몸'(거듭난 믿는이들)만이 '정통교회'이고, 건물인 예배당이나 사람이 만든 조직은 정통교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건물이나 조직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유기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건물)에 간다'라는 말이나, '당신이 다니는 교회가 무슨 파냐'는 식의 질문은 성경적인 교회관에 따른 말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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