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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들에 대한 이인규님의 거짓말(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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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들에 대한 이인규님의 거짓말(8)

 


지방교회의 재림과 부활관(이인규님의 원글 제목)


(이인규님) “1. 지방교회가 말하는 재림


1)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


우리 일반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의 재림은, 십자가에 달려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 분이 다시 오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방교회의 양태론적인 주장을 보면, 예수, 그 분은 이미 죽고 부활함으로서 이미 살려주는 영으로 변화하고 말았다. 첫단추를 잘못 꿰메었으니 끝까지 단추가 맞지 않는 것이다. 즉 하나님 자신이 예수로 오셔서 직접 죽고 부활하여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는 것이 지방교회의 양태론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지방교회에게 "예수의 재림"이란, 곧 양태론적으로 승계된 살려주는 영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을 가르킨다. 즉 지방교회에게는 갑작스러운 재림은 없는 것이다. 이들은 이것을 생명의 성장, 성숙이라고 말하며, 예수의 재림은 성경이 말하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이 성경적이라고 말한다. 지방교회의 주장을 들어보자.”


한 마디로 근거없는 거짓말입니다. 이인규님의 “지방교회에게 "예수의 재림"이란, 곧 양태론적으로 승계된 살려주는 영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을 가르킨다”라는 이런 지어낸 거짓말은 반박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사도행전 1:11(갈릴리 사람 여러분, 왜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습니까? 여러분에게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님은 여러분이 하늘로 가시는 것을 본 그대로 오실 것입니다.) 회복역 성경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재림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눈에 보이게 올리브 산(행1:12)에서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다. 동일하게 그분은 눈에 보이게 구름을 타고(마24:30) 올리브 산에(슥14:4) 돌아오실 것이다.


이인규님이 인용 소개한 위트니스 리 형제님 1차 본문에 대한 간략한 평가


# 주님의 오심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지만 여러분이 생각한 대로는 아닐 것이다. 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부터 오실 것이다. 여러분은 그분이 갑자기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으로부터 오실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왕국, 329쪽)


# 거의 모든 신학 서적이 이런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갑작스럽게 나타나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의 성장에 의해서 오고 계신다. (330쪽)


#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심으셨고, 그분이 지금 우리 안에서 자라고 계시며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 안에서 성숙되고 계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익고 성숙할 때, 그것은 그분의 오심의 때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분의 오심은 갑작스런 사건이 아닐 것이다. (왕국, 330쪽)


# 왕국의 나타남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분의 재림은 왕국의 나타남을 가져온다. 우리의 왕국이 우리 안에서 성숙되어질 때, 이 성숙이 주님의 재림을 가져온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왕국의 나타남은 바로 그 분의 다시 오심에 있어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성숙이다.


# 분명히 주님의 오심의 속도는 우리의 성장의 속도에 달려 있고, 우리의 추구함에 달려있다. 우리가 추구하지 않고 자라지 않는다면 그분의 오심은 연기된다. (왕국, 710쪽)


우선 위 위트니스 리의 1차 자료는 ‘주 예수님의 하늘로부터의 오심’(재림)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인규님은 이 말을 정반대로 뒤집어 지방교회측이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비양심적으로 사실을 왜곡시킨 후, 그러한 거짓말을 토대로 재림을 부인하는 이단 운운하는 것은 이분의 이단감별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위트니스 리가 통상적인 재림의 방면을 인정하면서 추가적으로 “여러분 안에서부터 오실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아래와 같은 살후 1:10 본문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날에 주님께서 오시면, 주님은 그분의 성도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며, 또 사람들은…모든 믿는 이 안에 계신 분을 놀라운 분으로 여길 것입니다.”


개역성경이나 한글 킹제임스는 위 ‘성도들 안에서’(in)‘모든 믿는 이들 안에’(in)를 ‘성도들에게서’와 ‘믿는 이들에게서’로 번역했고, 킹제임스 흠정역은 ‘…가운데서’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살린 번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위 두 경우 모두 ‘in’(엔 1722)즉 ‘안에’입니다. ‘to be glorified in his saints’ ‘to be admired in all them’


2) 저명한 헬라어 성경언어 박사인 헨리 알포드도 해당 본문 설명에서 이 점을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To be glorified..in(not ‘through’, nor ‘among’ but they will be the element of His glorification: He will be glorified in them…) His saints(not angels, but holy men), and to be wondered at in(see above) all them” (Alford’s Greek Testament, Vol.III, p. 286)


위트니스 리는 위 살후 1:10 본문에 대해 그의 라이프 스타디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그는 통상의 그리스도의 재림 개념을 인정하면서 추가적으로 우리 안에서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방면을 언급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0절에서 바울은 그의 성도들 안에서 영광 받기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분은 그의 부활과 승천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다(요17:1, 눅24:46, 히2:9). 이제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영광 안으로 이끌기 위해(히2:10) 영광의 소망으로 우리 안에 계신다(골1:27). 그분이 다시 오실 때 한편 그분은 하늘로부터 영광으로 오실 것이며(계10:1, 마25:31), 다른 한편 그분은 그의 성도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그분이 그의 성도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은 그분의 영광이 그의 지체들 안으로부터 나타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들의 천한 몸을 영광 받으신 그분의 몸과 같이 그분의 영광 안으로 변형시킬 것이다. 그분은 불신자들에 의해 그분의 믿는 이들인 우리 안에서 놀라움과 경이함과 기이히 여김을 받게 되실 것이다” (위트니스 리, 데살로니가후서 라이프 스타디 #1).


(이인규님)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이 갑자기 온다고 말하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으며 성경은 "도적 같이 온다" 혹은 "그 시와 때를 알 수가 없으니 예비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도적같이 온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한마디로 억지 성경해석이 되어진다.


# 계시록 3장 3절은 주님이 무엇인가를 훔치시기 위해 도적같이 오실 것임을 가르킨다. 우리가 그 분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그 분은 쓰레기가 아닌 귀한 것들을 훔치러 오실 것이다. 생명 안에서 성숙되고 혼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만이 주님이 훔쳐가실 만큼 귀한 것이다. (왕국, 558쪽)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3)


-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24:43)


- 너희도 아는 바니 집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눅12:39)


-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5:2)...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5:4)...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5:6)...


-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9-10)


예수의 재림이 도적같이 온다는 성경구절은 모두 그 날이 갑자기 옴, 그 날과 때를 알지 못하며 갑자기 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위트니스 리는 "그것을 훔치러 온다"고 해석을 한다. 더 이상한 것은 지방교회 모두가 한결같이 입을 모아 그러한 해석을 진리이고 생명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훔치러 온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마 위트니스 리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런 비판 역시 특정부분만 떼어 내어 저자의 문맥상의 의도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이인규님의 전형적인 이단감별 수법의 반복일 뿐입니다. 위트니스 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목적’을 말한 대목을 가져와서 마치 그가 도적같이 라는 ‘시점’의 의미를 무시하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비겁한 것입니다.


이인규님이 거짓말로 속이는 것처럼 위트니스 리는 참으로 ‘도적같이’에 대한 의미를 모르고 있을까요? 위에서도 인용 소개된 살전 5:2의 ‘밤에 도적같이’에 대해 위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각주를 달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오시는 날이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다가 아무도 알지 못하게 갑자기 온다는 것을 가리킨다(마24:42-43, 계3:3, 16:15).”


계16:15(보아라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다)에 대해서도 위트니스 리는 “…주님께서 돌아오셔서 그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은 여전히 알아채지 못하는 시각에 도둑이 오는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각주를 달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사실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위트니스 리 혹은 지방 교회측의 약점을 잡기 위하여 자기가 보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떼어내어 크게 부각시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인규님이 위트니스 리의 1차 자료를 인용했다고 해서 그의 말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됩니다. 이인규님은 정직하지 않은 이단감별사입니다.

 


(이인규님) “2) 예수님의 재림은 가시적이며, 예수 그분이 오신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 그대로 하늘로부터 오신다. 제자들이 본 그대로 오신다. 또 성경은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그리스도"(살전4:16)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예수님은 "인자가 오리라"(마24:44)리고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계22:7)라고 말씀하셨으며,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16:22)라고 기록하였다.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라고 기록하였다.


-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3:20)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다시 오는 분은 그리스도 예수이시며, 누구나 볼 수 있게 가시적으로 오시며 영광과 존귀와 함께 오신다


-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4)


-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눅21:27)


-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26:64)


-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막13:26)


-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살후1:7)


예수의 초림은 낮고 낮은 천한 모습으로 오셨다. 목수의 아들로 마굿간에서 태어나, 나귀 타고 오시는 예수님이셨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은 가시적이며 영광과 존귀의 모습으로 오신다.


지방교회의 입장에서는 변형된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를 주장하므로, 이미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으로 변화하였다. 즉 지방교회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그 모습대로 다시 오신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이 역시 자기가 파 놓은 함정에 자신이 빠진 상태에서 한 거짓말일 뿐입니다. 지방 교회측은 ‘변형된 양태론’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성부만 하나님으로 믿는 이단 신론 소유자인 이인규님이 ‘하나님(2격)이 육신을 입으셨다’라고 한 것을 성부가 성자가 된 것이라고 억지를 부려서 만든 ‘함정’일 뿐입니다.


지방 교회측은 이인규님이 인용한 위 모든 성경 구절을 다 믿습니다. 특히 사도행전 1:11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위트니스 리의 해당 각주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오히려 이인규님은 믿고 죽으면 저 하늘 어디에 있는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주장하는 분임으로, 주 예수님의 이 땅으로 지상 재림을 말하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주 예수님과 저 하늘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말과 주님이 지상으로 재림하신다는 말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 이 놀라우신 하나님은 그분의 분배를 성취하기 위해 "친히 두 단계를 취하셨다". 성육신에 의해 그 분은 구속하는 어린양으로서의 사람, 마지막 아담이 되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또 하나의 단계인 부활을 취하셨다". 부활 안에서 그분은 더 전진된 "어떤 것이 되셨다". 그분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큰 비밀, 19-20쪽)


전적으로 성경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요1:14).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 최종완성이라는 단어는 일이나 혹은 과정이 완성되거나 끝났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음식을 요리하는 것으로 예시할 수 있다. 요리하는 과정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식품은 날것이다. 두시간 동안 요리된 후에 식품은 만찬으로 최종완성된다. 성육신 전에 하나님은 인성이 없이 신성만 갖고 계신 날 것이었다. 성육신과 인생과 죽음과 부활과 그리고 승천을 통하여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셨고 최종 완성되었다. 이제 그분은 더 이상 "날 것"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신성과 인생과 만유를 포함한 죽음과 능력있는 부활과 그리고 초월하는 승천을 지니신 최종완성되고 완결된 삼일 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것들은 과정을 거치고 최종 완성되신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요소이자 성분이다. (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 하나님. 53-54쪽)


위 내용은 요한복음 7장 39절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라는 말씀을 설명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눅24:26에 따르면 부활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인규님) ”즉 지방교회의 입장에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이미 우리와 전혀 다른 예수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성경은 살려주는 영이 아니라, 예수 그 분이 오신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가시적으로 오신다고 하셨으며, 그분의 부활은 신체적이었다.


“지방교회가 말하는 재림은 내면적인 재림이며, 결국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온 영(즉 하나님 자신)과 신인 합일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재림은 갑자기 오는 재림이 아니라, 개인마다 다른 성숙의 시간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과 한 인격, 한 영, 한 실제가 되는 것이다. 즉 양태론적인 삼일 하나님이 성도들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생명이 자라나고 성숙되기 위하여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주님의 재림인 것이다.”


이인규님은 성경의 어느 한부분을 절대화함으써 성경의 다른 부분의 언급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은 주 예수님께서 부활로 생명주시는 영이 되심도 말하고(고전15:45), 그분의 다시 오심도 말합니다(행1:11). 또한 주님이 승천하여 하늘에 계심도 말하고(롬8:34), 우리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심도 말합니다(골1:27, 3:4).


이인규님은 교리와 지식으로만 성경을 알고 그것을 절대화함으로써, 주관적이고 체험적인 방면을 말하는 또 다른 방면의 성경본문들을 부인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인규님에게 반복적으로 타나나는 고질적인 문제점입니다.


# 왕국의 나타남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분의 재림은 왕국의 나타남을 가져온다. 우리는 왕국이 우리 안에서 성숙되어질 때, 이 성숙이 주님의 재림을 가져온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왕국의 나타남은 바로 그 분의 다시 오심에 있어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성숙이다.


# 분명히 주님의 오심의 속도는 우리의 성장의 속도에 달려 있고, 우리의 추구함에 달려있다. 우리가 추구하지 않고 자라지 않는다면 그분의 오심은 연기된다. (왕국, 710쪽)


지극히 성경적인 언급입니다. 우리 안에서의 영적인 생명의 성숙은 어린양의 신부로서의 단장과 관련이 있고, 또한 주님의 재림은 예비된 신부와의 혼인잔치의 방면이 있습니다(계19:6-9).

 


(이인규님) “2.부활


-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


우리가 말하는 부활은 신체적인 부활이다.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방교회의 부활관은 역시 신인합일,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는 것을 가르킨다. 그들의 모든 개념을 하나님-사람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위트니스 리는 "그 영, 즉 님들이 말하는 살려주는 영이 부활의 실제라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예수가 곧 부활이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살려주는 영이 부활의 실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말하는 부활은 신체적인 부활이며, 그들이 말하는 부활은 우리의 개념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사이비 집단을 보는 것 같다....”


이 역시 성경은 다양한 개념으로서의 부활을 말하나 이인규님은 자기가 아는 한 가지 개념의 부활을 절대화함으로 다른 방면의 부활을 언급하는 성경 본문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확신을 갖고 남을 정죄하는 일에 빠른 것은 비극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25)라는 말씀은 그분 자신이 부활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죽음과 부활을 거쳐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내주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분이 부활의 실재라는 말이 무엇이 문제라는 것입니까? 죽은 자의 신체적 부활은 당연히 믿는 것임에도 이인규님은 자신만 그런 믿음을 가진 것처럼 위와 같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인규님이 인용 소개한 위트니스 리 형제님 1차 본문에 대한 간략한 평가


# 일단 우리가 삼일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완결된 영 안에 산다면 우리는 부활 안에 있는 것이다. (같은 책, 63쪽)


이들이 말하는 신인합일적인 하나님-사람의 개념, 그것이 곧 부활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요11:25)이심으로 ‘그분 안에 있다면 부활 안에 있는 것이다’라는 말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까?


# 부활로 말미암아 그분의 인간 본성은 거룩케 되고 높혀지고 변화되었다. 그러므로 부활에 의해 그 분은 그분의 인성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맏아들로 인정받으셨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4쪽)


지방교회가 말하는 부활이란 그들이 말하는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성과 신성을 연합시켰듯이, 믿는 성도들이 인성과 신성을 연합시키는 것이 곧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위 언급은 주 예수님의 부활을 말한 것이며 믿는 이들과는 무관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시 그분의 죽을 인성이 죽지 않는 인성이 되셨다는 설명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새 창조 안의 부활한 나를 말한다. 이 부활한 내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하나가 되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부활시키셨는가? 부활 안에서 그분은 그분의 신성을 우리의 인성과 연합시키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부활한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3쪽)


이것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뒤에 언급된 나’(이제 내가 사는 것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나’는 앞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라고 한 그 나가 부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인규님은 장차 죽은 후 신체적으로 부활하는 방면만 알 뿐, 에베소서 2장 6절이 말하는 “또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하늘들의 영역 안에 그분과 함께 앉히셨습니다.”라는 방면에는 무지합니다.


# 그와 같이 완결된 영을 살아날 때, 이것이 바로 완결된 영의 부활 안에 사는 것이다. 이 부활은 어떤 능력이나 사물이 아니라 한분의 인격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그분은 부활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더욱이 부활의 실제는 삼일 하나님의 최종완결인 그 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결론-삼일 하나님, 그리스도, 그 영, 부활은 하나임-을 갖는다.


이 역시 성경적인 언급입니다.


(이인규님) ”거듭남이란 Regeneration이고, 부활이란 Resurrection입니다. 거듭남이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주관적인 영적 체험을 말하며, 부활이란 죽은 자가 다시 생명을 얻게 되는 객관적인 신체적 체험을 말한다. 지방교회에게 어느 성경에 성령이 성도의 안에 내주하는 것을 부활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고 물었다.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궁극적이고 종말적인 부활이 지방교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한 지방교인은 이 구절을 인용하였다.


"나는 부활이니...."(요11:25) 예수님이 곧 부활이라는 것이다. "예수 = 부활"은 동의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길이요"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예수 = 길"이므로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이신가? 나는 포도나무(요15:1)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예수 = 포도나무로 해석하여, 예수님이 포도나무라는 식물이신가? 고전10:4에 의하면 예수 = 반석이므로 예수님은 돌멩이이신가? 이런 성경해석이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성경해석이란 말인가?


예수님이 자신을 부활이라고 하신 이유는 성경 다음 귀절을 읽어보면 알 수가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위 언급들은 애석하지만 참으로 이인규님의 무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표현들입니다. 이인규님의 취지는 ‘예수님께서 부활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길’, ‘포도나무’, ‘반석’처럼 비유요 상징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다>라고 하실 때 그 ‘부활’이 상징하는 실재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인규님은 이 질문에  답변할 의무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재림 혹은 부활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어느 한 부분만을 절대시함으로써 또 다른 방면의 성경 말씀들을 부인하는 것은 불신앙의 극치입니다. 주님께서 이인규님의 눈을 열어주사 그리스도에 대한 주관적이고 체험적인 인식이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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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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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5.11.06. 01:14
이인규님의 반복된 오류 내지는 약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경 자체가 양면성을 말함에도 어느 하나를 강조하여 다른 쪽을 말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하늘 우편에 계심(롬8:34)과 동시에 우리 안에 내주하심(골1:27)을 성경은 말하나 전자를 가지고 후자를 부인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위트니스 리 1차 자료를 소개하되 문맥을 무시하고 일반화시켜 비판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부활이심을 성경 자체가 말함(요11:25)에도 이러한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부활의 실재가 되신다고 라고 하면, 사람이 나중에 죽음에서 일으켜지는 부활을 부인한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런 식의 소위 이단감별은 한국교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성경 본문으로또 다른 본문을 공격하고 부인하는 악한 선례를 남길 뿐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교리와 지식으로만 알고 계시와 체험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다소의 사울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주 예수님과 신약 백성들을 향해 똑같은 오류와 잘못을 범한 바 있습니다.

이인규님은 자신은 토론에서 져 본적이 없다는 식으로 마음이 높아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이인규님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요, 하늘의 빛 비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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