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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행실을 죽이라-그러면 산다(2)


몸의 행실을 죽이라-그러면 산다(2)

 


로마서 8장 13절에서의 ‘죽는다’, ‘산다’ 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으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육신적인 삶을 마감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들립니다. 그러나 과연 로마서의 저자가 그런 의미의 생사를 말하고자 했는지는 전후 문맥을 고려하여 판단 할 일입니다. 먼저 본문에 대한 간략한 해석을 한후 이 본문을 실생활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이 글은 죽고 사는 문제가 영적인 방면을 가리킨다는 것을 전제로 쓴 것입니다.


-몸의 행실 : 몸의 행실은 바로 앞에서 쓰인,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의 몸 또는 육신은 거듭난 후에도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롬 7:18, 20, 8: 10).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사는 생활 자체가 몸의 행실입니다. 옛나를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몸의 행실의 특징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 죽어 있는 상태로 어떤 봉사를 하건 그것은 결코 영적 생명인 그리스도를 공급하지는 못합니다(요10:10).


-몸의 행실을 죽이면 : 이것은 자학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대신에 육신에 두던 생각을 돌이켜 영에 둠으로써 육신에 이끌려 살던 삶을 그치는 것입니다. 즉 몸의 행실들을 무력화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3:5)는 말과 같습니다.


-몸의 행실들을 죽이면 살리니: 이것은 우리가 생각을 육에 두는 것을 그치고 대신에 영(연합된 영)에 둠으로 우리 존재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하는 것입니다(갈2:20, 빌1:21).


-위 말씀의 적용


말로 풀어서 설명하려니까 장황한데 사실은 매우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로마서 8:6처럼 우리 생각이 육체(정욕)의 잡아 끄는 것을 거절하고, 대신에 우리 안에 살고 계신 분의 세미한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내면의 영의 인도에 순종하면, 우리 안에는 자연스럽게 기쁨, 활력, 해방, 자유함, 빛, 초월의 느낌이 가득하게 됩니다. 매일 아침 참된 방식으로 큐티를 해 본 분들은 이 ‘사는 맛’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후 하루를 살면서 이런 저런 결정의 순간들을 거칠 때도 우리의 생각이 아침의 그런 신선함 안에 계속 지켜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본의 아니게 육신의 요구에 끌려 갈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깊은 내면에서는 뭔가 모르는 어둠의 느낌 또는 영적으로 약화된 느낌 내지는 허전함, 뭔가 모르는 불안함, …이런 것들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그야말로 ‘죽을 맛’입니다. 이것은 몸의 행실을 허락한 결과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육신(의 정욕) 혹은 깊은 내면의 영의 인도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영적인 사망 또는 영적인 생명(삶)을 경험합니다(롬8:6). 따라서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살므로’ 하나님의 아들들로 발견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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