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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로 교회에 혼란이 발생한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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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목표는 교회이다

 

우리는 교회의 일곱 가지 어떠함 즉, 몸·새 사람·신부·집·왕국·거처 그리고 군대를 보았다. 이 일곱 가지 항목들은 모두 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마지막 날에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주님이 이 단체적인 것을 회복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지난 수세기 이래 교회 안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많은 혼란과 분열이 일어난 원인은 모두 사람들에게 이런 단체적인 것에 대한 이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수세기 동안 사람들이 본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라든지 성경의 빛 비춤이라든지 영적인 체험들 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지키고 성경을 지켜야 함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버리고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우리가 열심히 영혼을 구해야 하고 복음에 열심을 내며 선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타락한 죄인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이것들이 다 좋은 것이나 그 중 어떤 것도 하나님의 목표가 아님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목표는 구원이 아니고 거룩함이나 신령함도 아니며 성경을 준수하는 한 무리를 얻는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를 세상에서 구원해내는 것만도 아니며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위해 일하고 열심을 내는 것도 아니며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목표에 이르게 하는 수단과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목표는 오직 하나뿐이고 유일하며 궁극적인 것이다. 이 목표는 바로 교회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목적은 이 땅 위에서 교회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목표는 이미 완전히 제쳐졌다. 과거 수세기 이래 많은 성도들이 많은 빛과 다른 것들을 얻었지만 그들은 목적과 목표에서 이탈되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영원한 뜻의 목표요 하나님의 신성한 경륜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교회에 해를 가져다 준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대적이 교회를 파괴하는 데 사용하는 첫 번째 것이 유대종교이고 둘째는 헬라 철학이며 세째는 인간적인 조직이다. 유대종교와 헬라 철학과 인위적인 조직 이 세 가지는 교회를 파괴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들이다. 역대로 교회의 모든 혼란과 분열, 패배와 분리됨은 모두 이 세 가지 원인에서 나왔다.

 

이 세 가지가 교회 안으로 들어옴으로 인해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교회가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도록 교회를 위해 변론하고 발언하며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졌다. 그러나 매우 애석하게도 초기 교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목표가 단체적인 몸을 얻고자 하는 것임에 대해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를 위해 변호하는 동시에 큰 잘못을 범했다. 그들이 교회를 보호하겠다는 의도는 좋은 것이었으나,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로 더 크고 많은 해를 입게 하였다.

 

이그나티우스의 과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의 실례를 들겠다. 2세기 초엽, 주후 백년 즈음에 이그나티우스(Ignatius)라 하는 한 유력한 교회의 보호자가 있었다. 그는 사도 요한을 본 적이 있고 그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그는 당시 교회 중에서 위대한 호위자(護衛者)였지만 그는 「주교」라는 것을 발명했다. 환언하면, 그는 주교제도를 발명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이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오는 그 단락의 성경 구절에서 바울은 장로를 감독이라고 칭했다.

 

여기서 장로와 감독은 동의어이고 같은 무리를 가리킴을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감독이 곧 장로요 장로가 곧 감독이다. 감독은 다스리고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즉 장로의 임무는 교회 전체를 돌보고 감독하는 것이다. 이것이 장로의 책임이다. 그 반면에 장로의 의미는 이 무리가 남보다 비교적 노련하고 연장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장로는 곧 감독이다. 장로란 경험과 연령 등을 말하고 감독은 그들의 직책을 말한다. 그들은 같은 무리의 사람이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는 교회를 호위한 동시에 사람들에게 감독이 장로보다 높다고 말했다. 결국은 사람들에게, 장로는 지방교회를 위한 것이고 감독은 일대 지역의 교회들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주게 되었다. 이러므로 계급 조직이 생겨나고 장로보다 높은 한 계급이 나오게 되었다. 이런 전환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대주교가 생겼다. 장로는 지방적인 것이고, 감독 혹은 주교는 주(州), 도(道)를 위하며, 대주교 혹은 종주교는 나라를 위하고, 그런 다음 여러 나라를 다스리는 홍의주교가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많은 홍의주교들 중에서 전세계를 다스리는 교황이 나왔다. 이것이 천주교의 조직이다. 가장 높은 사람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교황을 베드로의 승계자라고 한다. 그 밑에는 홍의주교가 있고, 홍의주교 밑에는 대주교가 있고, 대주교 밑으로는 주교가 있고, 주교 밑에는 장로가 있다. 이것이 천주교의 세상적인 교회 계급이다.

 

이것은 2세기 초엽에 시작되었으며, 사도 요한을 본 적이 있고 교회를 호위하려는 좋은 맘과 뜻을 가진 사람에 의해 발명된 것이다. 왜 이그나티우스는 이처럼 큰 과오를 범하게 되었는가? 이는 그가 오늘 우리와같이 몸을 인식하지 못하고 교회가 한 새 사람임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지만 이그나티우스는 기독교 역사에서 이름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평범한 한 형제보다도 분명하지 않았다. 내가 솔직히 말하지만, 이그나티우스가 우리와같이 이상이 분명했다면 그렇게 큰 과오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노시스파 철학에서 야기된 진리의 변론

같은 원칙에서 그노시스파 철학이 교회 안에 들어올 때에도 진리를 위해 변론하는 교사들이 일어났다. 이 변론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다른 설을 유발시켰다. 그러므로 역사상 소위 「그리스도론(Christology)」이 생겼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관한 학문적인 토론이고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연구이다. 이런 쟁론으로 인하여 당시 기독교는 수차 대회를 소집하였는데 마지막으로 주후 사백년 쯤에 니케아(Nicea)에서 열렸다. 그때의 회의에서 그들은 공신경(General Creed)을 제정하였다. 오늘날까지도 개신교와 천주교는 이 신경을 붙들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니케아 대회의에서 제정한 온전하고 근본적인 신조들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말하지만, 이 신조가 아무리 온전하고 근본적이며 또 주후 사백년 쯤부터 지금까지 약 천 오백여년이 지나도록 천주교가 준수하고 개신교가 지키고 있을지라도 이것들은 백지 위의 검은 글씨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신조들은 주로 하나님이 삼이일이심을 강조했고 신격 안에 세 위격 즉 성부, 성자, 성령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결국 이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셋이라는 인식을 주게 되었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이해를 갖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삼일성이 일종의 교리가 아니라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분배하기 위한 것임을 보지 못했다...

 

네스토리안(The Nestorians)파가 일으켜진 후의 교회의 분열

주후 사백년 즈음에 네스토리안파의 한 무리가 또 일어났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해 괴상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본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분은 최고의 인물이고 완전하고 놀라우며 극히 선하신 분이므로 결국 하나님이 되었다고 말한다. 본래 그가 하나님이 아니었지만 사람의 행실이 완전하여서 후에 하나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때 소위 카톨릭 교회가 그들을 정죄하고 쫓아냄으로 그들은 페르시아로 넘어갔다. 그러므로 페르시아의 기독교는 네스토리안파이다.

 

이것이 주후 천 이백 년 쯤에 중국에 전해진 기독교(곧 경교:景敎)이다. 당나라 때 고경성에 수백 개의 예배당 건물을 지은 적이 있었는데 중국이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를 받은 후로 이 건물들이 모두 파괴되었다고 한다.

 

진리를 호위하기 위해 생긴 쟁론으로 인하여 다른 견해들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들어와 큰 분열을 야기시켰다. 결국 대체적으로 말하자면 서양의 기독교가 로마 카톨릭으로 변하고 또 동방 기독교 곧 소위 헬라정교가 생기게 되었다. 이 두 파 외에 또 남쪽 페르시아로 건너간 네스토리안파가 있다. 이것이 소위 기독교의 삼대 파벌이다. 이것은 사오세기 때부터 형성되었다.

 

청교도는 하나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

이 세 큰 파 외에 2세기 초엽에 이르러 소수의 자유 그룹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이 자유 그룹으로 인하여 「카톨릭 교회」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때의 교회 중에 큰 호위자들은 많은 자유 그룹들이 일반 교회에서 탈피하는 것을 보고 이 일반 교회를 공교회라고 불렀다. 공교회라는 뜻은 일반적인 것일 뿐 아니라 통일된 것을 가리킨다.

 

이 작은 단체들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주된 이유는 그때 일반 교회가 어느 정도 세속적인 것을 보고 교회는 세속적이지 말아야 하고 세상과 분별되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초기에 그들은 여전히 일반 교회 안에 남아 있었으나 결국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별 유익이 못된다는 것을 느끼고 일반 교회를 포기하고 교회를 떠나서 스스로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이십 명 또는 오십 명씩 모임을 가졌다. 이러한 일들은 계속 발생하였다.

 

혹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서 우리는 다 형제이므로 어떤 계급적인 지위가 없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일반 교회들에는 이미 주교가 있었고 또 주교보다 더 높은 계급도 있었다. 그들은 이런 상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것을 전파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여전히 일반 교회에 머물러 있다가 결국은 따로 모임을 세웠다. 이렇게 하여 또 하나의 자유 단체가 형성되었다. 이처럼 자유 그룹은 하나씩 하나씩 형성되어 갔다.

 

교회 역사를 쓴 사람들은 대부분 이 작은 단체들을 주의하지 않고 일반 교회들만 돌아보았다. 그러나 세세하게 역사를 쓰는 사람은 이런 일들도 그들의 저서에 기록하였다. 이 자유 그룹들은 17세기의 청교도들(Puritans)과 유사하다. 나는 여러분에게 매 세기마다 청교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러나 내 말을 용서하라. 모든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단체적인 목표를 보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역사는 개교가 루터로부터 시작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교회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개교의 참된 시작이 루터로부터가 아님을 안다. 심지어 그보다 백 년 전부터 개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믿을 만한 기록에 의하면 심지어 2세기 초엽에 소위 개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의 회복은 일찍이 2세기 초엽부터 시작되었다. 환언하면,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할 때 주의 회복은 즉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틴 루터가 일으켜졌을 때 개교 혹은 주의 회복은 비교적 큰 양상으로 돌입되었다. 이것이 일반 교회역사가 루터를 주의하고 작은 단체들을 주의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나 모든 작은 단체들, 심지어 루터 이전의 작은 단체들도 주의 회복의 일부분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역대로 청교도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세기에 청교도들이 있었고 4세기에도 청교도들이 있었으며 매 세기마다 청교도들이 있었다. 청교도란 무엇인가? 주님을 사랑하고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흐름 안에 있기를 원치 않고 사람의 행위와 관념과 야합하기를 원하지 않는 반면에 최선을 다해 주님의 말씀을 준수하고 청결한 양심을 가지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있어서 어떤 사람의 강요도 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이 청교도이다. 그러나 내가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들은 하나님의 단체적인 목표에 대해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이유이다. 이 땅 위에 얼마나 많은 청교도들이 있든간에 정상적인 교회생활이 없다면 주님은 여전히 그분의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루터가 범한 과오

주님이 이 회복의 흐름을 일으키실 때 그 시작이 칭의임은 틀림없다. 루터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에 관한 한 개교의 첫인물이었다. 우리는 루터가 이것을 위해 목숨까지도 다 바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즉 성경에 따른 이신칭의(以信稱義)만을 돌아보았다. 루터는 확실히 진리를 위한 위대한 진리의 호위자였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그가 교회의 호위자는 아님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는 구원과 이신칭의를 위한 호위자였다.

 

한면에서 루터는 진리를 호위하였으나 다른 면에서 그는 독일 정부와 관계를 맺은 과오를 범했다. 이것은 바로 소위 국교회의 기원이 되었다. 루터의 잘못으로 인하여 국교회가 들어왔다. 내가 루터를 비평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다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은 한편으로 주님에게 상당한 쓰임을 받을 수 있지만 또 다른 한면으로 상당히 불쌍한 사람들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이신칭의에 있어서 루터는 강하고 엄격했고 목숨까지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 문제를 만질 때 그는 극히 연약하고 두려워했다. 초기 이신칭의에 있어서 그는 교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땅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큰 권세에 대하여 용감했다. 그러나 후에 교회 문제에 부딪힐 때 그는 극히 소심하고 강건하지 못했다. 이것은 나의 비평이 아니다. 만일 여러분이 정확한 역사를 읽어본다면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한 역사 학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의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독일 정부로부터 가장 유익을 얻었다.

 

최초에 국교회가 일어난 곳은 독일이다. 그런 다음 덴마크가 뒤따랐고 또 노르웨이, 스웨덴, 벨기에가 일어났다. 영국은 가장 엄격히 따랐다. 성공회는 바로 영국 국교회이다. 그러므로 때로 성공회는 앵그리칸 교회라고도 불리운다. 이 뜻은 영국교회라는 뜻이다. 오늘날까지도 영국의 엘리자베드 여왕은 영국교회의 원수이고 덴마크 황제도 덴마크의 루터파 국교회의 원수이다.

 

오늘 스웨덴의 국왕도 스웨덴 교회의 원수이다. 이 국면(局面)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루터의 잘못에서 온 것이다. 루터 자신도 이 약함을 알았다. 그는 이 점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으나 하지 않았다. 구원의 진리에 있어서 그는 위대한 호위자였지만 또 한면으로 큰 과실의 장본인이기도 했다...

 

오직 하나님의 목표를 분명히 알아야만 과실을 면할 수 있다

이제 먼저 여러분에게 워치만 니 형제님의 일에 관하여 약간 말하겠다. 의심할 것 없이 그는 교회의 머리이신 분이 몸에게 준 가장 큰 은사이다. 나는 깨끗한 양심 안에서 그를 위하여 간증할 수 있다. 나는 그가 또한 교회의 큰 호위자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그는 이 점에서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이는 그가 하나님의 그 단체적인 목표에 대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 말의 뜻은 당신에게 교회의 이상이 있으면 하나님의 단체적 목표에 대해 분명해지고 이로써 당신은 보장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 몸, 새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 있는 단체적인 목표이다. 이것이 당신의 보장이다. 당신이 성경을 얼마나 알고 있든지간에 당신이 교회를 모른다면 결국 엄중한 과실을 범하게 된다. 혹 당신이 성경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교회에 대해 분명하다면 당신은 보장이 있다. 교회에 대한 이상을 보는 것보다 당신에게 확실한 보장을 주는 것은 없다.

 

청년 형제 자매들에게 내가 다시 말하지만 오늘날 주의 회복은 단지 구원이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나 믿음으로 거룩케 되는 것이나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사는 것의 회복이 아니다. 주의 회복은 최종적으로 교회 생활을 위한 것이다. 앞에 있는 모든 항목들은 전부 이것을 위한 것이고 또 반드시 이것을 위해야만 한다. 구원의 회복, 성화의 회복, 속 생명의 회복, 그외에 심지어 성경 지식의 회복조차도 응당 교회생활을 위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정상적인 교회생활의 회복, "역대로 교회에 혼란이 발생한 원인",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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