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교회 생활을 찾던 한 젊은이의 이야기(2)

by 관리자 posted Jan 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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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교회 생활을 찾던 한 젊은이의 이야기(2)



13. 우리는 어떻게 믿는 이들의 하나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사람의 방법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 있는 본을 그대로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교회가 시작될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와 안디옥에 있는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서신서들에서 우리는 빌립보에 있는 교회와, 고린도에 있는 교회와, 에베소에 있는 교회, 골로새에 있는 교회,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장, 3장에서 우리는 각 지방의 교회들에게 편지한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14. 성경의 원칙은, 한 지방에 한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에 제한을 받으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정상적이라면 모든 믿는 이들은 영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믿는 이들이 느낌적인 느낌으로 그분의 말씀을 인식하고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방식으로 인식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주님의 음성인지 그들의 생각인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변하지 않고 영원토록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단체적인 실행을 말할 때, 그분은 절대로 한 입으로 두말을 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15. 그분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하셨지, 각각의 교파나 각각의 선교단체에게 편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곳에 계속 머문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분량에 맞게 사용하실 정도만 사용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분열적이고 성경적이지 않은 터 위에서 계속 있을 수 있지만,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의 지방교회들 안에 있는 이기는 이들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기는 이들은 지방교회들 안에 있습니다.


16. 이기는 이는 미지근함, 열매 없음, 죽어있음을 이깁니다. 또한 어린양의 피와 그들의 증언하는 말로 사탄을 이기고 죽기까지 그들의 혼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두운 이 시대의 별들이며 교회들의 전달자들이고, 심지어 그리스도의 복사판입니다. 개인적인 영적 거인들로 나타나지 않으며, 단체적인 한 무리로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한 새 사람을 표현하는 자들입니다.


17. 여러분은 낮은 진리를 말하여 여러분을 안주하게 하는 거짓 권위와 직분을 가진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말하며 권위를 행사하고 헌금을 강요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대형건물을 짓기 위해 헌금을 강요하고 그 건물이 주님의 성전인 듯이 말하는 이단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성전은 더 이상 건물이 아니고 바로 우리의 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행전 2장을 볼 때, 집회소나 큰 예배당에서 모이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의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그러나 인수가 늘어나고 사람들은 편익을 위해 큰 건물들을 짓고 월급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는 형태로 하락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생각으로부터 온 사상과 실행을 거절해야 합니다.


18. 큰 교회 큰 건물 큰 단체는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어붙고 말하지 못하고 달란트 있는 사람만 활동합니다. 이것은 계급을 나누고, 월급제를 만들고, 모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의 한 달란트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전체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을 마비시키게 됩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몸의 이런 아픔을 회복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분은 다시 오실 때, 지체 장애를 가진 몸으로 대적과 싸울 수 없습니다. 또한 장애를 가진 신부를 얻기 원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신부는 점과 흠과 주름이 없습니다(에베소서 5장). 솔로몬과 술람미가 예표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말하듯이 그리스도와 교회는 신격이 아닌 생명과 본성과 표현에서 어울려야 합니다.


19. 그러나 여러분은 선생이라고 불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선생은 오직 한 분이시며, 여러분은 모두 형제입니다. 또 땅에 있는 그 누구를 여러분의 아버지라 부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마태복음 23:8-9)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선생이라고 불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생은 한 분이십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누군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십니다. 우리는 다 형제입니다. 형제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은사의 분량은 있지만, 몸 안에서 높고 낮음은 없습니다. 목사님이 없습니다. 원어로는 목자일 뿐입니다. 아버지라고 불리는 신부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는 대언자가 없습니다.


20. 올해는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5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항의서를 발표하고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에 붙였습니다. 왜 그가 그렇게 했을까요? 그는 성경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존 녹스가 세인트 자일스 성당에서 16세기에 외치던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으로 돌아가라!”라고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없애라고 했습니다. 모든 이방 종교와 혼합된 사상들을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큰 예배당에서 집들로 돌아가라! 라고 했습니다. 그때 스코틀랜드에 큰 부흥이 있었습니다. 1611년에 영국의 제임스 1세도 그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KJV, 킹 제임스 버전(흠정역) 성경을 썼습니다.


21. 우리에게 성경이 없다면 우리 일생에 빛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닫혀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은 종교적인 외양 뿐 실재와 빛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간 길을 따라 가야 하며 이제는 완수해야 합니다.


22. 제가 눈물을 흘린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성경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며, 트렌드에 따라 자기 견해대로 교회생활을 하고 성경에 있는 합당한 교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이 성경적인 교회를 찾으려 해도 찾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교회, 잘못된 인도자로 인하여 실족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열의 터에서 나와 축복의 하나에 참여해야 합니다.


23. 이스라엘에도 성전은 하나였습니다. 매년 절기마다 그들은 그 한 장소에 모이려고 먼 길을 여행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하나의 길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나뉘었을 때 저주를 받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분열과 당 짓는 것은 모두 육체에 속한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훼손하고 나누는 무리들을 심판하십니다.


24.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편 133편) (끝)



글쓴이 : 그리스도의 몸 안의 한 지체



* 필자는 서울교회에서 생활하다가 작년 10월말에 영국 에딘버러로 이주했고 현재 에딘버러에서 교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자와 더 대화하기 원하시는 분은 yckim90@hanmail.net 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