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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과 야고보서와 성경의 신성한 영감

첨부 1

 

아래 자료의 출처는 https://shepherdingwords.com 입니다. 이 번역문은 영어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비공식 자료’이며, 원문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원하는 분은 영어 원문을 직접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번역 자료는 영어원문 없이 한글 번역본만 다른 곳에 재인용될 수 없습니다.
 
 
Psalms, James, and the Divine Inspiration of the Bible
 
시편과 야고보서와 성경의 신성한 영감
 
 
Some have accused Witness Lee of teaching that parts of the book of Psalms and the Epistle of James were not divinely inspired. This is a grievous accusation that, if true, constitutes a denial of one of the basic affirmations of Christian orthodoxy: that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complete and inerrant. Such ones hastily seize upon Brother Lee’s statements which indicate that not everything conveyed in Psalms or James’ Epistle expresses the divine concept. Only when plucked out of context and twisted from their original meaning could these statements be in any way alarming. With a fair evaluation of Brother Lee’s ministry on these books as well as his numerous clear affirmations of the divine inspiration of every book of the Bible, the point of these statements and the basis for making them become quite clear.
 
일부는 위트니스 리가 시편의 일부와 야고보서의 일부가 신성한 영감을 받지 않았다고 가르친다고 비난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성경은 완전하고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정통 기독교의 기본 확언들 중 하나를 부인하는 가혹한 비난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시편이나 야고보서에서 전달된 모든 것이 신성한 관념을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 이 형제님의 진술을 성급히 붙잡습니다. 이러한 진술은 오직 문맥에서 벗어나서 원래의 의미를 왜곡시킬 경우에만 어떤 식으로든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형제님이 성경 각 책의 신성한 영감을 여러 차례 분명하게 확증한 것은 물론 위의 책들에 관한 그의 사역을 공정하게 평가할 때, 이 형제님의 이러한 진술의 요점과 그런 말들이 나오게 된 근거가 매우 분명해질 것입니다.
 
On the Divine Inspiration of the Bible
 
성경의 신성한 영감에 관하여
 
There is no ambiguity in Brother Lee’s ministry regarding the divine inspiration of the Bible. In Truth Lessons he says “The entire Bible is God’s breath. Each book of the Bible is God’s revelation with every line and word coming from the inspiration of the Holy Spirit. The Scripture is infallible.” (Truth Lessons, Level 1, Volume 1, 11). Speaking of the Bible as God’s word and drawing upon such verses as 2 Samuel 23:2 and 2 Pet. 1:21, he taught:
 
성경의 신성한 영감에 관해 이 형제님의 사역에는 모호한 점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진리 공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온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다. 성경의 각 책은 매 줄과 각 단어가 성령의 영감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경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진리 공과, 1단계 제1권, 16-17쪽).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또한 사무엘하 23장 2절과 베드로후서 1장 21절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Not only do we have to admit that the Bible is God’s inspiration, but we must also realize that the Bible is God’s Spirit bringing man into God and is from God, speaking forth God’s word. It is also the Holy Spirit speaking the word of God through man’s mouth. This is the Bible. What is the Bible?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spoken through man being borne by the Holy Spirit. (On Knowing the Bible, 16)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임을 인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이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영이시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내시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성경은 사람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성령이시다. 이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무엇인가? 성경은 성령께 이끌린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성경을 앎에 관하여, 영문판 16쪽).
 
In the same portion he went on to conclude, “Therefore, we can draw a very clear, simple, and accurate conclusion: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spoken by His Holy Spirit through the mouth of man.” Quotes such as these make clear that Brother Lee strongly held that every book, even every word, of the Bible has God as its source, being divinely inspired by Him and communicated to the writers via the Holy Spirit. In the face of such definite speaking to the contrary, it is impossible to sustain the accusation that Brother Lee did not believe in the so-called verbal plenary inspiration of the Bible.
 
같은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매우 명확하고 간단하며 정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의 입을 통해 성령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와 같은 인용문은 이 형제님이 성경의 모든 책, 심지어 모든 단어가 하나님을 근원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신성한 영감을 받으며, 성령을 통해 저술가들에게 전달하신 것임을 강력하게 믿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분명한 진술과는 반대로, 이 형제님이 이른바 성경의 축자영감을 믿지 않았다는 비난을 지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Psalms and James Containing Mixture
 
시편과 야고보서는 혼합물을 포함함
 
In ministering on books such as Psalms and James, Brother Lee brought forth an important consideration for understanding Scripture: Even though the Bible and all the speaking contained therein is God’s Word, not every speaking in the Bible can be said to be God’s own speaking that expresses the divine concept. In the Life-study of James he said, “For the Bible to be divinely inspired does not mean that every word in the Bible is God’s word.” (75) The distinction should be clear. Every word contained in the Bible is was breathed out by God through His Spirit, but not every word is God’s word in the sense that it conveys God’s own thought. The serpent’s deceptive speaking in Genesis 3:4-5, the beclouded debates of Job and his three friends (Job 2:11–32:1), and Peter’s rebuke of the Lord Jesus in Matthew 16:22 are all clear examples of this. All of these words were recorded according to the divine inspiration of the Holy Spirit, but they are not God’s own words, God’s own speaking, nor do these words, when taken in isolation, convey the divine thought and concept.
 
시편이나 야고보서와 같은 책을 사역할 때 이 형제님은 성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다음과 같은 고려 사항을 제시했습니다. 즉 성경과 거기에 담겨 있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성경에 있는 각각의 말씀이 신성한 관념을 표현하고 있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에서 그는 “성경이 신성한 영감으로 되어 있다는 말은 성경 안에 있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 아니다”(메시지 8, 영문판 75쪽)라고 말했습니다. 구별이 명확해야 합니다. 성경에 담긴 모든 말씀은 그분의 영을 통해 하나님에 의해 호흡해 내어진 것이었지만, 그러나 매 단어가 하나님 자신의 사상을 전달한다는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창세기 3장 4-5절에서 뱀의 기만적인 말이나 욥과 그의 세 친구의 혼돈스러운 토론(욥 2:11-32:1), 그리고 마태복음 16장 22절에서 베드로가 주 예수님을 책망한 것은 모두 이것에 대한 분명한 예입니다. 이 모든 말씀은 성령의 신성한 영감에 따라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 아니며, 이 말을 따로 분리시켜 놓고 보면 신성한 생각과 개념을 전달하지도 않습니다.
 
With this important distinction in mind, we can properly understand Brother Lee’s teaching that the writings of the psalmists contain a mixture of the divine concept with the human concept. For example, of Psalms 1 and 2 Brother Lee says:
 
이 중요한 차이를 염두에 둔다면 시편 기자들의 저술에 하나님의 관념과 인간의 관념이 혼합되어 있다는 이 형제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1편과 2편에서 이 형제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These two psalms are two kinds of declarations. One is made by the psalmist according to his human concept, and the other declaration is made by God according to His divine concept, concerning Christ as His centrality and universality. We have to say amen to God’s divine concept in Psalm 2. In God’s eyes, it is not a matter of our keeping the law. In God’s eyes, it is a matter of taking refuge in Christ and kissing Him. To take refuge in Christ means to believe in Him, and to kiss Him means to love Him. This is according to the divine concept of the New Testament. We need to believe in Christ and to love Christ. By doing this, we are blessed. (Life-study of Psalms, 7)
 
이 두 시편 안에는 두 종류의 선포가 있다. 하나는 기자의 인간의 관념에 따른 선포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중심성과 우주성으로 하는 하나님의 신성한 관념에 따라 하나님이 하신 선포이다. 우리는 시편 2편에 있는 하나님의 신성한 관념에 아멘 해야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가 지키지 않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고 그분과 입 맞추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는 것은 그분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과 입맞춤은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약의 신성한 관념에 근거해서 말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복을 받는다(시편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 10쪽).
 
What is the divine concept? In brief it is to exalt Christ as the centrality and universality of God’s eternal economy. It is that God desires to dispense Himself in Christ into His chosen people to produce the Body of Christ as the enlargement of Christ to be Christ’s glorious expression. With this revelation as a base, it is easy to see why Brother Lee identifies some Psalms as having mixture. Some exalt the keeping of the Mosaic law, which clearly contradicts the teaching of the New Testament (Rom. 6:14; Gal. 2:16). In many others, the psalmist expresses desire for vengeance against his enemies or boasts of his own righteousness. This, too, is against the teaching of the New Testament, in which the Lord instructs us to love and pray for our enemies and in which Christ Himself is our righteousness and our unique boast (Matt. 5:43-48; 1 Cor. 1:30-31; Luke 18:9-14; Phil. 3:3). The Psalmists’ exaltation of the law, their wishing ill upon their enemies, and their boasting in their own righteousness all indicate that there is indeed a mixture of the natural human concept with the divine in the Psalms. Because the divine revelation of the Bible is progressive, it is understandable that some of what the psalmists saw and expressed does not come up to the standard of what, for example, the Lord Himself taught in the Gospels, or what was revealed to the apostle Paul and conveyed in his Epistles. Nevertheless, we strongly affirm with Brother Lee that, without exception, all the Psalms were written by godly men, whose words were recorded under the inspiration of the Holy Spirit for a specific purpose. As a whole the Psalms show that in their seeking of Him, the Lord turns His lovers from the law to Christ and to the building up of God’s habitation and kingdom for Christ to take possession of the earth.
 
신성한 관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성과 우주성으로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그분의 택한 백성들 안으로 분배하사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표현이 되도록 그리스도의 확대인 그리스도의 몸을 산출하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계시에 근거해 볼 때, 우리는 왜 이 형제님이 일부 시편을 혼합물이 있는 것으로 인식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신약의 가르침과 명백하게 모순되는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높입니다(롬 6:14, 갈 2:16). 많은 다른 곳에서 시편 기자들은 자신의 원수에게 복수하기 원하거나 자신의 의를 자랑합니다. 이 또한 신약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시고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의와 유일한 자랑이라고 말씀합니다(마 5:43-48, 고전 1:30-31, 눅 18:9-14, 빌 3:3). 시편 기자들이 율법을 높이고, 그들의 원수들이 잘못되기를 소원하고, 자기 의를 자랑하는 것은 모두 시편 안에는 참으로 천연적인 인간의 관념이 신성한 관념과 섞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의 신성한 계시는 점진적이므로, 시편 기자들이 보고 표현한 것 중 일부는, 예를 들어 주님 자신이 사복음서에서 가르치셨던 것들이나 사도 바울에게 계시되어 그의 서신서들에서 전달된 것들과 같은 표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형제님과 함께 모든 시편이 예외 없이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쓰였고, 그 모든 말들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성령의 영감 아래 기록되었음을 확고하게 믿습니다. 시편 전체에서 주님은 그분을 추구함에 있어서 그분의 연인들이 율법에서 그리스도에게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땅을 차지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거처와 왕국을 건축하는 데로 돌이키게 하심을 보여줍니다.
 
In his Epistle, which is on practical Christian perfection, James uplifts the Old Testament law and charges the Jewish believers in Christ to keep it (James 1:25, footnote 252; 2:8-12). However, a great part of the New Testament addresses the immense and ongoing struggle to bring the believers, both Jew and Gentile, thoroughly out from the old covenant, in which God dealt with His people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the law, into the new covenant, in which He deals with His people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grace. The writings of Paul strongly emphasize that the believers in Christ have died to the law and should have nothing further to do with it now that Christ, who is the end of the law, has come (Gal. 2:19; 5:1-4; Rom. 10:4).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의 실행적인 완전함을 말하는 자신의 서신에서 구약의 율법을 높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인 믿는 이들에게 그것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약 1:25, 각주 1, 2:8-12). 그러나 신약의 상당 부분은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이 율법의 원칙에 따라 그분의 백성을 다루신 옛 언약에서 철저히 나와서 은혜의 원칙에 따라 그분의 백성을 다루고 계시는 새 언약 안으로 이끄는 엄청나고 지속적인 분투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들은 특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이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율법의 마침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지금은 더 이상 율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강조합니다(갈 2:19, 5:1-4, 롬 10:4).
 
Galatians 2:1-10 and Acts 15 show how some tried to induce the Gentile believers in Antioch to keep the law and how absolutely Paul and Barnabas fought against this Judaic influence to maintain the truth of the gospel (Gal. 2:5). They even traveled to Jerusalem to meet with the apostles and the elders in order to clarify the truth for the sake of all the churches, the entire Body of Christ. During the conference in Acts 15 Peter strongly confirmed that both the Jewish and Gentile believers should not consider themselves to be under the yoke of the law (vv. 7-11). The solution given by James showed that his concept was still at least partially according to the Mosaic law and his Judaic background (vv. 20-21, see footnote 211). This is even more clear in his subsequent boasting of the church in Jerusalem’s zeal for the law (21:20). Moreover, his influence continued to frustrate the work of bringing the believers fully out from under the law, as seen in his effect on the clear standing of the apostles Peter and Paul (Gal. 2:11-12; Acts 21:21-26).
 
갈라디아서 2장 1절부터 10절과 사도행전 15장은 일부 사람들이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율법을 지키도록 어떻게 설득했으며,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의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이러한 유대교의 영향력에 대항하여 얼마나 절대적으로 싸웠는지를 보여줍니다(갈 2:5). 그들은 모든 교회들인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위해 진리를 명확히 하려고 사도들과 장로들을 만나기 위해 심지어 예루살렘까지 갔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5장에 언급된 회의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 모두는 자신이 여전히 율법의 멍에 아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7-11절). 그런데 야고보가 제시한 해결책은 그의 관념이 여전히 최소한 부분적으로 모세의 율법과 자신의 유대교적인 배경에 따른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20-21절, 각주 1 참조). 이것은 그가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 안에 있는 율법에 열성적인 이들을 자랑한 데서 더욱 분명해집니다(21:20). 더욱이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분명한 입지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영향력은 믿는 이들이 율법 아래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하는 일을 계속해서 좌절시켰습니다(갈 2:11-12, 행 21:21-26).
 
As with Psalms, the divine inspiration of James’ Epistle is unquestioned, and in both the Life-study of James and Crystallization-study of James Brother Lee emphasizes this very point. However, in light of God’s economy as the central line in the Bible, Brother Lee is faithful and bold to point out that James’s writings lack a clear view of God’s economy, including His dispensational move from the Old Testament, in which righteousness is through the law, to the New Testament, in which righteousness is through faith in Christ. Nevertheless, the inclusion of James’s Epistle in the Bible is, as with all other Scripture, quite purposeful: “In Acts 21 and in the book of James the purpose is to show us the possibility that a godly person may lack the clear, heavenly view of God’s New Testament economy. Praise the Lord that everything in the Bible is God’s breath, and everything has been recorded to serve a particular purpose!” (Life-study of James, 132). Brother Lee’s appreciation of Psalms and James is evident in the hundreds of messages he released on these two books. We appreciate his great insight that these books were included in the Bible to show us that the pursuit of godliness or practical Christian perfection may cause us to misaim if we lack a clear vision regarding God’s economy, which is wholly and absolutely centered on Christ dispensed into and lived out of the believers for the building up of the church as the Body of Christ to be His fullness and expression.
 
시편과 마찬가지로, 야고보서에 대한 신성한 영감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와 야고보서 결정 연구에서 이 형제님은 바로 이 요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중심 노선인 하나님의 경륜의 빛 안에서, 이 형제님은 야고보의 저술은 그분의 시대적인 경륜이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구약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신약으로 옮겨진 것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경륜의 분명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할 만큼 신실하고 담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야고보서가 포함된 것은 다른 모든 성경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1장과 야고보서에서의 목적은, 경건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분명하고도 하늘에 속한 이상이 부족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호흡이며 모든 것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기록되었음을 인해 주님을 찬양하라!”(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4번, 영문판 132쪽) 이 형제님의 시편과 야고보서에 대한 감사는 그가 이 두 권의 책에 대해 해방했던 수백 개의 메시지를 볼 때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 책들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 즉 그리스도의 충만과 표현이 되도록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믿는 이들 안으로 분배되시고 또한 믿는 이들을 통해 살아내어진 그리스도를 전적이고 절대적으로 중심 삼는 분명한 이상이 결여된다면, 경건이나 실행적인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를 목표에서 빗나가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성경에 포함되었다는 그의 위대한 통찰력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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