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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개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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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의 출처는 https://shepherdingwords.com 입니다. 이 번역문은 영어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비공식 자료’이며, 원문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원하는 분은 영어 원문을 직접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번역 자료는 영어원문 없이 한글 번역본만 다른 곳에 재인용될 수 없습니다.
 
 
A Christian’s Attitude Toward Reforming Society
 
사회 개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In 1950, in a time of great social upheaval in China, Watchman Nee, in a series of messages for new believers, said, “Today the world is full of all kinds of problems. How will these problems be solved? What should be our attitude towards these problems?” (Messages for Building Up New Believers: Volume Three [hereafter, Message (3)], 914). These questions and Brother Nee’s answers to them are as pertinent to believers today, a time when the world is beset with intractable problems, as it was then.
 
1950년 중국에서의 엄청난 사회 격변기에, 워치만 니는 초신자들을 위한 일련의 메시지에서, “오늘날 세상은 온갖 종류의 문제가 가득하다. 어떻게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것인가? 이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초신자 공과 메시지, 3권 [이하, 메시지(3)], 영문판 914쪽)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니 형제님의 답변은 그때처럼 세상이 다루기 힘든 문제들로 둘러싸인 오늘날의 믿는 이들에게도 타당합니다.
 
In an earlier work Brother Nee said of all the problems in the world, “We have to see that God has already prepared the solution to all these problems. He has also set the schedule for the fulfillment of the solution” (The Normal Christian Faith, 175). This solution is carried out in two stages, which are based on the first and second comings of Christ. In the first stage, Christ came through incarnation to establish the model of living as a God-man, He accomplished redemption, and He became the life-giving Spirit in resurrection (Matt. 1:23; 1 Pet. 2:21; Eph. 1:7; 1 Cor. 15:45b). He is now working to bring men to salvation (Matt. 1:21), to cause them to grow in the divine life, which they receive through their rebirth (1 Pet. 2:2), and to build them up as God’s house and His kingdom (1 Tim. 3:15; Eph. 2:21-22; Col. 1:13; Rev. 12:10). Thus, as Brother Nee noted, “When Christ came the first time, He saved us individually. He did not deal with the world or its systems. He did not touch any social problems. His first coming was to settle the spiritual issues, not the material ones” (The Normal Christian Faith, 175).
 
이전의 일에서 니 형제님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예비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그분은 또한 그 해답을 이루실 시간표도 정해 놓으셨다”(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믿음, 381쪽)라고 했습니다. 이 해답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오심을 토대로 두 단계로 실행됩니다. 첫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을 통해 오셔서 하나님-사람으로서 사는 본을 세우셨고, 구속을 이루셨으며, 부활로 생명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마 1:23; 벧전 2:21; 엡 1:7; 고전 15:45하). 지금 그분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일을 하고 계시며(마 1:21), 그들이 거듭날 때 영접했던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자라게 하시며(벧전 2:2), 그들이 하나님의 집과 그분의 왕국으로 건축되게 하십니다(딤전 3:15; 엡 2:21-22; 골 1:13; 계 12:10). 따라서 니 형제님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처음 오셨을 때, 우리를 개별적으로 구원하셨다. 그분은 세상이나 세상의 제도를 처리하지 않았다. 그분은 사회 문제에 손대지 않았다. 그분의 첫 번째 오심은 물질적인 것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위의 책, 381쪽).
 
This does not mean that the Lord is indifferent to the evils of human social systems and institutions. He will solve all the problems of human society—when He comes again to establish His kingdom (Rev. 11:15). God’s work for man will be completed through Christ’s second coming. Thus, Brother Nee said, “All social problems will be settled when the Lord comes back again. When He comes back, all social ills will be removed” (Messages (3), 914). He added, “When Christ comes the second time, He will change all social systems and institutions” (917). Actually, the work Christ is doing in this age to perfect His believers to reign with Him is with a view to establishing His kingdom on earth to resolve all the problems caused by man’s rebellion against God.
 
이것은 주님께서 악한 인간 사회 조직과 제도에 무관심하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분은 자신의 왕국을 세우시려고 다시 오실 때 인간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계 11:15).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니 형제님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모든 사회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사회적 병폐들은 제거될 것이다”(메시지(3), 914쪽)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사회 조직과 제도를 바꾸실 것이다”(917)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이 시대에 하고 계시는 일은 믿는 이들을 온전케 하여 그분과 함께 다스리도록 하는 것인데, 곧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해서 생겨난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 땅에 그분의 왕국을 세우는 것입니다.
 
This does not mean that Christians should not care for those who suffer in the present age. The local churches and the believers who meet in them have also actively participated in numerous relief efforts and care for the needy, though in the principle of the Lord’s word in Matthew 6:3-4, these matters have not been widely publicized. However, some Christians have replaced the emphasis of the Bible on the accomplishment of God’s purpose with their own pursuit of social justice. Some have gone so far as to adopt and advocate acceptance of unbiblical standards of morality that belong to the present evil age but have no place in the church. The false dichotomy between a personal and social gospel comes from a lack of understanding of the significance of the first and second comings of Christ. When Brother Nee gave his Kuling training, many who were at least nominal Christians in China were enmeshed in social activism and were critical of those who were not. To that criticism he responded: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시대에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방 교회들과 그 안의 믿는 이들도 마태복음 6장 3-4절에 있는 주님의 말씀의 원칙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구호 활동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적극 참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강조점을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회 정의로 대체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악한 시대에 속하고 교회 안에서는 설 자리가 없는 비성경적인 도덕 표준들을 수용할 것을 지지하고 옹호했습니다. 개인적인 복음과 사회적인 복음으로 나누는 잘못된 이분법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왔습니다. 니 형제님의 고령 훈련 때, 중국에서 많은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활동에 빠지게 되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러한 비판에 대해 니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Because of their ignorance of the Lord’s work in His second coming, some people have formed wrong concepts about Christianity. They think that Christians are only interested in a gospel for individuals, that they are not interested in a gospel for society as a whole. Actually we believe in an individual gospel, and we also believe in a social gospel. The time for the social gospel will be when the Lord comes again. (The 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Volume 60: Miscellaneous Records of the Kuling Training (2), 444)
 
어떤 사람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완성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해 분명치 않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하여 오해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만 개인적인 복음을 전할 뿐 사회적인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우리는 개인적인 복음을 믿고 또한 사회적인 복음도 믿는다. 주님이 두 번째 오실 때, 곧 사회적인 복음을 전하게 된다(워치만 니 전집, 제60권: 고령 훈련 기록(2), 269-270쪽).
 
What, then, should be our attitude and practice today? Brother Nee counseled the saints to render help to others but not to get swept up in social action movements. These movements, no matter what their orientation, are like tides that carry people away from God’s purpose. Involvement in them compromises the testimony of the church’s heavenly calling (Heb. 3:1; see Messages (3), 916-917). This is consistent with the pattern of the Lord Jesus and of the New Testament apostles, especially Paul. Just as the Lord Jesus never sought to reform the corrupt social system of the Roman Empire, neither did the apostles. Of the apostle Paul, Brother Nee commented, “Never once did he try to change the social order. He came only to solve man’s spiritual needs and settle the spiritual problems of the church” (179-180). Thus, Paul charged the Philippians to “be blameless and guileless, children of God without blemish in the midst of a crooked and perverted generation, among whom you shine as luminaries in the world” (Phil. 2:15).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태도와 실행은 어떠해야 합니까? 니 형제님은 성도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되 사회적 행동을 수반하는 운동에는 휩쓸리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그 방향이 무엇이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목적에서 멀어지게 하는 파도와 같습니다. 그러한 것들에 참여하게 되면 교회의 하늘에 속한 부름에 대한 간증을 타협하게 합니다(히 3:1, 메시지(3), 영문판 pp. 916-917을 보라). 이것이 주 예수님과 신약 사도들, 특히 바울의 본과 일치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로마 제국의 부패한 사회제도를 개혁하려고 하지 않으셨고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에 대해 니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사회 질서를 바꾸려고 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단지 사람의 영적인 필요들을 해결하고 교회의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pp. 179-180). 따라서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나무랄 것이 없고 순결하여,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데 가운데서 세상의 발광체들로 빛나라.”라고 명령했습니다(빌 2:15).
 
Paul’s treatment of the inhuman Roman system of slavery is instructive. In his Epistles, he consistently exhorted slaves who were believers to obey their masters (Eph. 6:5-8; Col. 3:22; 1 Tim. 6:11; Titus 2:9). At the same time, he clearly indicated that the status of slave and master had been annulled in Christ (Gal. 3:28; Col. 3:11; Philemon 16). Paul was a herald of the New Testament jubilee of grace, a teacher of God’s New Testament economy. As such, he did not touch the existing social system. In his Life-study of Titus, Witness Lee said:
 
로마의 비인간적인 노예 제도에 대한 바울의 대처는 본받을 점이 있습니다. 그의 서신서들에서 그는 믿는 이들이었던 노예들에게 그들의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지속적으로 권유했습니다(엡 6:5-8, 골 3:22, 딤전 6:11, 딛 2:9). 동시에 그는 노예와 주인의 신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었음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갈 3:28, 골 3:11, 몬 16). 바울은 은혜의 신약적 선구자이자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교사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현존하는 사회 제도를 만지지 않았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디도서 라이프 스타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If Paul had advocated the annulment of the system of slavery, he would have been regarded as a social reformer by those who read his Epistles. That would have obscured Paul’s teaching concerning the living out of Christ’s divine life in our human living in the midst of any kind of social system. In order to guarantee that the light would shine without hindrance, Paul did not say a word about the social system in the way of correcting it or reforming it. (Life-study of Titus, 30)
 
만일 바울이 노예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면 그는 그의 서신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사회 개혁자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사회 제도 가운데서도 우리의 인간 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명을 살아내는 것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흐리게 했을 것이다. 빛이 방해가 없이 비추는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바울은 사회 제도에 대해 그것을 고치거나 개혁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디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4).
 
Of course, neither Paul nor the God He served approved of the evil system of slavery. Brother Lee said further:
 
물론 바울이나 그가 섬겼던 하나님도 악한 노예 제도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이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추가로 말했습니다.
 
When the Epistle of Titus was written, a number of slaves had become believers in Christ. According to civil law, a slave had no rights. A master could brand a slave as if he were a horse or a mule. Furthermore, a master could legally put a slave to death. What a dreadful system! To be sure, God was utterly opposed to such a social system, for it was altogether contrary to the place of man in His creation. Paul certainly did not approve of this evil social system. But instead of trying to reform it, he charged the slaves to behave well in it, to live in it according to the standard of the humanity of the Lord Jesus. Even in the midst of such an unjust social system, Christians could live out a life with the highest standard of humanity. What a testimony this is! (30-31)
 
디도서가 쓰였을 때 많은 노예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사람들이 되었다. 사회의 법에 따르면, 노예는 권리가 없다. 주인은 노예에게 마치 소나 노새처럼 소인을 찍을 수 있었다. 더욱이 주인은 노예를 법적으로 죽음에 넣을 수 있었다. 얼마나 끔찍한 제도인가! 참으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회 제도를 극도로 반대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창조 안에 있는 사람의 위치와 완전히 반대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분명히 이 악한 사회 제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개혁하는 대신에 그는 노예들에게 그 안에서 잘 처신하며, 주 예수의 인간성의 표준에 따라 그 안에서 살 것을 명했다. 그처럼 불공평한 사회 제도 가운데서조차 그리스도인들은 최고의 인간성의 표준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이 어떠한 간증인가!(디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4)
 
Though he did not try to reform the Roman social system, Paul declared that all social, racial, and national distinctions were abolished through the death of Christ and have no place in the church as the new man (Eph. 2:14-16; Col. 3:10-11). This is illustrated in his Epistle to Philemon, in which he urged Philemon, who had been Onesimus’s master, to receive the runaway Onesimus back not as a slave but as a brother (Philemon 13-16). Concerning this Brother Lee commented, “In the practice of the economy of God, it is crucial that all social ranks and differences among races and nations are swallowed up”(Life-study of Philemon, 13).
 
바울은 비록 로마의 사회 제도를 개혁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사회적, 인종적, 국가적 차별이 폐지되었고, 새 사람인 교회 안에는 위치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엡 2:14-16, 골 3:10-11). 이것은 그의 빌레몬서에 예시되어 있는데, 거기서 그는 오네시모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도망갔던 오네시모를 노예가 아니라 형제로 받아줄 것을 강권했습니다(몬 13-16). 이것에 관해 이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실행함에 있어서 모든 사회적인 지위와 종족과 국가 가운데 있는 차이점들이 삼켜져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빌레몬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2).
 
The problems of human society will never be solved until Christ comes to establish His kingdom. Thus, a Christian’s responsibility is not to try to solve today’s social ills directly, an endeavor that is bound to fail, but to cooperate fully with the Lord’s present work. In this age that work is to propagate Christ by preaching the gospel to gain men, to grow in life and minister Christ as life to others, and to live a crucified life under the reigning of the divine life in the reality of the Body of Christ so that the Lord can return to bring in the manifestation of His kingdom (Matt. 24:14; 1 Pet. 2:2; 1 Tim. 4:6; Gal. 2:20; Rom. 5:17; Eph. 4:15-16; Matt. 25:31-34). Then the Lord will set all human affairs in order and will reign in righteousness over the whole earth unto eternity (Zech. 14:9; Isa. 32:1; Psa. 72:1-2; 2 Pet. 3:13).
 
인간 사회의 문제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까지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오늘날의 사회 병폐들을 직접 해결하려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노력을 할 것이아니라 주님께서 현재 하시는 일에 전적으로 협조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그러한 일은 사람을 얻도록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를 확산하고, 생명이 자라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사역하며,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서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 아래 있도록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살게 하여 주님께서 그분의 왕국의 나타남을 가져오시도록 다시 오시게 하는 것입니다(마 24:14, 벧전 2:2, 딤전 4:6, 갈 2:20, 롬 5:17, 엡 4:15-16, 마 26:31-34). 그러면 주님께서는 모든 인간 문제를 질서 아래 두시고 온 땅에 걸쳐 영원토록 의로 통치하실 것입니다(슥 14:9, 사 32:1, 시 72:1-2, 벧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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