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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지방 교회들의 <한 지방에 한 교회> 실행을 비판한 아래 주장에 대하여 따옴표로 원문을 인용하고 그 밑에 간략한 평가 내지는 반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쟁점이 될 만한 부분은 원문에는 없지만 밑줄로 그어서 강조하였다.



“지리적인 입장을 폐하신 그리스도


교회의 진리 -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관한 예언 참조) 인격의 실로에게로 있게될 모임(gathering)에 대한 그 예언의 예표적이고 지리적인 입장들은 실로-살렘-예루살렘(창49:10, 대하 6:6, 렘7:12-16, 창14:18, 히7:2, 사9:6, 골1;20, 엡2:14-15, 히7:14-17, 시76:2)이었지만, 이제 그 실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으로 그 지리적인 입장을 페하셨다. 물질 성전의 실제이신 주님은 먼저 물질 성전을 헐라고 명령하셨고(요2:19), 지리적인 경배 장소인 예루살렘에서 이제 더 이상 예배하지 말라고 명하셨다(요4:21)


이것은 주님이 물질 성전의 실제요, 예루살렘(실로-살렘)의 실제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신약 교회들이 헛것인 물질 성전을 중시하고 있는가 하면, 헛된 것인 지리적인 입장을 중시하고 있는 교파적인 교회가 있다.


교회는 불가시적(不可視的)인 면이 있지만, 가시적(可視的)인 면이 있다. 교회의 하나인 면은 불가시적이요, 본질적이요, 영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하나인 면, 즉 볼 수 없는 면을 볼 수 있게 나타내고 증거해야 하는 증거하는 면을 중시해야 한다. 볼 수 없는 교회의 하나인 면은 우주 안에서, 국가 안에서 뿐만 아니라, 한 도시 안에서도 하나님의 교회, 즉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하나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볼 수 있는 증거하는 교회들의 실재가 필요한 것이다.


증거하는 교회들은 모임(집회) 단위로 실재하는 것이며, 그 모임들은 한 도시안에서도 각처, 각 곳에서 각 각 독립적으로 모여서 서로 얼굴을 대면하며, 서로의 지체가 되어 서로 섬기며, 교제(코이노니아, 나눔, 함께 참여함)를 하는 집회(모임)들로서 증거된다.


그러나 각각의 모임들이 어떤 한 교파에 소속되어 그 교단의 통제를 받는 모임들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 아래 있는 각각의 독립적인 모임들이 아니다.  만일 한 도시 안에 있는 여러 모임들이 어떤 특정한 교파에 소속되어 그 교파 교회의 이름 아래서 제 1집회소, 2 집회소, 3 집회소........등으로 이름한다면, 그것은 각각의 주님의 이름 안에서 주님과 함께 모이는 모임들(assemblies)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 도시-한 교회(one city- one church)"의 입장론의 교리는 짬뽕 신앙, 즉 구약의 지리적인 입장에 신약 교회를 세우는 혼합한 교리이다. 성경 어느 부분에 증거하는 교회들을 한 도시에는 한 교회만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가?


그 특정한 교사가 주장하는 한 도시-한 교회의 입장론을 주장하는 성경적인 근거는 그의 초창기의 저서들에서는 많은 구절들을 근거로 내세웠으나, 아마도 그분 스스로도 잘못된 것을 아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마지막 저서에서는 계시록 2-3장에 있는 일곱 교회들을 근거로만하여 한 도시에는 한 교회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론: 구약 시대에는 경배를 위해 물질적인 성전에 가야 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이 성전이 그리스도 자신으로 대치되었다는 위 주장은 옳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배당 같은 특정 장소에 가서 드려야 참된 예배라는 사상은 버려야 한다. 그러나 윗글은 이러한 <특정 예배 장소가 폐해진 것>을 <지역교회 행정의 경계>도 사라진 것으로 오해하는 심각한 잘못을 범하고 있다.


성경은 1)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수만 명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가정에서 예배드렸으나(행 2:46), 그 각각의 가정을 개 교회로 보지 않고 전체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단수)라고 말한다(행 8:1). 2) 또한 성경은 “예루살렘 ... 장로들”로 지칭되는 특정된 인물들을 언급한다(행 15:4). 3) 사도 바울은 본인도 그렇게 실행했을 뿐 아니라 자신과 동역하던 디도에게도 <도시(city) 단위의 개 교회> 별로 장로들을 세우라고 명령했다(행 14:23, 딛 1:5). 4) 신약 성경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신약 서신서의 대부분은 그 지방(city)에 있는 교회에 보낸 것이다. 5) 이처럼 신약 교회가 일관된 지역 교회 경계의 원칙을 따라 교회 행정을 실행한 결과, 사도 바울이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그 교회 장로들을 불렀을 때”(행 20:17) 아무나 오지 않고 해당 된 장로들만 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도 바울도 “짬봉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함부로 폄하할 것인가?


한편 교파와 관련하여, 윗글이 비판적으로 교파적 실행을 언급한 것은 일리가 있다. 문제는 정작 그 글을 쓴 장본인도 특정 교파 소속이고, 심지어 한 교단의 총회장 경력까지 인물 소개시 따라다닌다는 점이다. 이러한 말과 실천이 다른 부분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의 몫이다.


끝으로, 워치만 니는 그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한국복음서원)에서, 소위 지방 입장(local ground), 즉 모든 거듭난 믿는 이들로 구성된 한 몸인 보편적인 교회(엡 4:4, 마 16:18)는 그들의 거주 지방(city)을 단위로 개 교회를 구성한다(행 8:1, 13:1, 계 1:11)는 원칙이 성경적인 지역교회 기준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 위트니스 리와 달리, 스티븐 강 혹은 윗글을 쓴 사람(유OO 목사?)은 이러한 워치만 니의 지방 입장을 반대하고 심지어 공격한다. 그런데도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 자료는 이들을 “워치만 니의 절친한 동역자”, 혹은 “워치만 니 계열”이라고 소개한다. 이처럼 사실과 다른 정보는 마땅히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계3:14)라고 표기한 것은 라오디게아 도시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원문에는 에베소 사람들의 교회(Ephesian)라고 표기하고 있으며(계2:1), 서머나 사람들의 교회(Smyrneans assembly)라고 표기하고 있다(계2:8). 그러므로 계시록 2장, 3장에서 취한 지방교회의 입장은 오류(誤謬)적인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계시록에서의 7교회들이 지방입장론의 성경적 근거라면, 모든 지방교회들은 타락한 교회들이라는 말이 된다. 심지어 서머나교회는 사탄의 회당, 즉 사탄의 교회이고, 버가모 교회는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그 역시 사탄과 연관되어 있는 교회이다. 그렇다면, 왜? 지방입장론을 주장하는 성경적 근거를 거기에서 발췌(拔萃) 했는가?


또 데살로니카 전, 후서에서도 데살로니가(City)교회라고 하지 않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교회라고 표기하고 있다(살전1:1, 살후1:1).”


반론: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혹은, 에베소, 서머나도 마찬가지)를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 즉 <라오디게아(혹은 에베소, 서머나)에 거주하는 모든 거듭난 사람들>로 보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둘은 정확히 같은 말이다.


혹시 글쓴이는 성경이 ‘라오디게아 사람들’이라고 했으니 불신자를 포함하여 그곳에 사는 모든 거주민을 교회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인가? 아니면 “(전남) 광주 사람들의 교회”에는 광주광역시 출신이지만 지금은 부득이 경기도 성남에 사는 “광주광역시 사람들”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인가? 만일 그런 주장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본인이 그토록 비판하는 ‘하늘에 속한 교회’를 땅에 속한 특정 출신 지역에 묶어 놓는 일이 아닌가?


워치만 니는 교회의 ‘상태’가 아니라 서 있는 ‘터’(ground)를 중시했다. 즉 우리 몸은 한번 태어났으면 늘 우리 몸이지 건강할 때만 몸이고, 아프거나 실패하고 죄를 지으면 우리 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점은 사도 바울이 문제가 많은 고린도에 있는 교회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른 것과 같다(고전 1:2). 계시록 2-3장에 있는 일곱 지방 교회들이 참된 지방 교회들인 것은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 이것을 두고 “모든 지방 교회들은 타락한 교회들이라는 말이 된다”며 그러니까 지방 교회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치우친 교회론이다. 즉 교회의 에베소서 방면만 알고, 고린도전후서 방면에 무지한 결과이다. 교회의 우주적인 방면(마 16:18)과 지역적인 방면(마 18:17) 모두를 붙드는 것이 건강하고 균형 잡힌 교회론이다.


또 빌레몬서 1장 2절은 아킵보의 집에 있는 교회를 언급했고, 롬16장 3-5절을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를 언급한다. 궁색하게도 브리스길라와 아글라의 집에 있는 교회를 그들은 로마 교회라고 까지 억지를 부린다. 그러한 사상은 성경을 매우 허술한 것으로 격하(格下) 시키는 성경 모독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억지로 성경을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말하며(벧후3:20), 사사로운, 즉 사견(私見)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벧후1:20). 문제는 그 성경을 억지로 푼자 보다 맹신(盲信)적으로 따르는 자들이 문제이다. 그러한 자들을 성경은 니골라당의 교리를 지키는 자들이라고 한다(계2:15).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유랑적이고 정착하지 않는 생활을 했다. 아굴라 자신은 소 아시아 본도에서 출생했다(행18:2). 그들은 처음에는 로마에, 다음에는 고린도에(고전16:19), 그리고 다음에는 에베소에, 그리고 다시 로마에 그리고 끝으로 에베소에서 다시 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의 집이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코이노니아)의 중심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모임은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assembly)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指向)해야 할 가정집에서 모이는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모임(엑클레시아)이다(행18:24-26, 고전16:19, 딤후4:19, 롬16:10, 11,230).


반론: 성경에는 ‘OO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이 모두 네 번 나온다. 그러나 윗글이 암시하는, ‘한 도시 안의 여러 가정 모임들 각각을 개 교회로 보아야 한다’는 원칙이나 실행은 성경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가장 강력한 증거는, 수만 명의 성도들이 살았던 예루살렘의 상황이다. 그 당시 그 지역에는 적지 않은 가정 모임들이 있었지만, 사도행전 8장 1절은 그들 모두를 포함한 개념인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단수로 표시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가정에서 모이고 심지어 가정에서 성만찬을 뗄 수도 있지만(행 2:46), 그 각각의 가정 모임을 독립된 개 교회로 볼 수는 없다는 강력한 반증이다. 만일 그 각각이 교회라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들’로 했어야 옳다. 심지어 일부 장로교단 내의 가정교회 운동이 성경은 물론이고 심지어 장로교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항간에는 주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마 18:20)고 말씀하신 것을 개 교회의 범위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의 ‘임재’를 약속하신 것이지, 개 교회의 범위가 두 세 사람이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직전 문맥(17절)에서‘두 세 사람’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게 말하라고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세 사람’이 교회라면 있을 수 없는 말이다.


하나님의 엑클레시아(assembly, 교회)는 사탄의 세상체계(Cosmos)의 지리적인 행정구역으로 입장을 취할 수 없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시인 엑클레시아(교회)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며, 그 구성원들은 천국 시민들이다(히12:22-23, 빌3:20). 총체적인 교회(엑클레시아)가 천국(하늘나라)이며, 하나님의 나라이라며, 증거하는 교회들(assemblies)은 그 천국의 도시(City of kingdom of Heaven)들이다.


천국의 도시는 하나님의 도시(City of God 시46:4, 48:1, 8)요, 만군의 주의 도시요, 의의 도시요(1:26), 신실한 도시요(사1:26,렘33:16), 진리의 도시이다(슥8:3). 우주적인 하나의 교회를 증거하는 교회들(assemblies)은 이 땅에 속한 도시들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신성한 하늘에 속한 본성을 가진 천국의 도시들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누가 감히 경계(境界)하거나 분계(分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교회를 사탄의 왕국인 이 세상의 행정구역으로 경계하고 분계하는 지방 교회의 입장론은 커다란 오류이다.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그들의 눈을 열어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을 그 누가 제한(制限)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몸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엡1;23). 각 모임들인 그리스도의 충만을 그 누가 이 땅의 지리적인 경계로 규정할 수 있는가? 각 도시와 도시의 경계가 교회의 경계라고 말하는 그 교리는 이교적인(paganism)인 사상이다. 그 사상은 증거하는 교회가 도시보다 커서도 안되고, 도시보다 작아서도 안된다는 해괴한 이론을 주장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땅의 지리적인 경계를 초월한다. 교회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것이요, 영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의 간증인 각각의 모임들은 한 도시 안에서 한 교회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각 교회들인 천국의 도시민들인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것임으로(빌3:20), 이 땅의 행정구역에 따라 교회의 경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이 땅의 어디에서든지, 어느곳에서나, 도처에(every place, every where) 아무런 제한 없이 표현될 수 있다. 아! 이 땅(한 우주, 한 국가, 한 도시)의 어느곳에서나 어디에서든지, 제한 없이 그리스도의 이름 안으로 모이는 모임들이여! 이 땅의 한 도시 안에 있는 충만한 교회들의 영광이여!주님을 찬양하라! 천국의 도시들을 찬양하라! 하나님의 도시들을 찬양하라!


반론: 위 주장은 언뜻 보면 매우 성경적이고 심지어 가슴이 찡할 만큼 감동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갈망인 교회의 한 방면을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한 눈으로 본다면, 이 글은 교회의 어느 한 방면으로 교회의 또 다른 면을 부인하고 있다. 교회가 보편적인 방면(한 몸)과 지방적인 방면(교회들)이 있다는 것은 거의 모든 교회론 신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천상의 교회만 강조하고 이 땅에 출현한 실행적인 교회를 가볍게 여기는 위 글은 <뜬 구름잡는 교회론>이고, 교회의 실행의 원칙을 무시하도록 뒷문을 열어 준 <무책임한 교회론>일 뿐이다.


교회가 윗글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의 충만’(엡 1:23)을 말하는 에베소서 방면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교회임에도 그 안에 분열과 음행, 심지어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까지 있는 ‘고린도 교회’의 방면도 말씀하고 있다. 주님은 이러한 지역 교회 구성원 중 하나가 죄를 지으면 한두 사람이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게’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말씀하신다(마 18:17). 글쓴이의 교회론은 이런 실행적인 방면을 성경의 원칙을 따라 질서 있게 처리하는 부분이 쏙 빠져 있다.


이처럼 교회의 보편적인 방면만 고집하고, 또 다른 방면인 지역 교회의 원칙을 무시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즉 소위 권징의 원칙이 무너지다 보니 교회가 목회자(혹은 개교회) 중심으로 이합집산하게 된다. 또한 목회자가 도덕적인 결함으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교인 숫자가 많은 곳은 다루기가 어렵고, 치리를 하면 교단을 탈퇴하거나 또 다른 교회를 차려 나가도 속수무책이게 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 땅에 이단 빼놓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로만 구성된 교파만 자그마치 4만 개라는 공식 통계가 있다.


글쓴이의 주장처럼 성경적인 교회가 “이 땅의 어디에서든지, 어느 곳에서나, 도처에(every place, every where) 아무런 제한 없이 표현될 수 있는” 그런 것이라면, 주님께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셨던 기도인 “그들이 모두 하나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요 17:21)라는 간구와 초기 교회 교부들이 분열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교회의 단일성’의 원칙은 어찌 되는가? 위 글쓴이의 주장은 한쪽으로 치우쳤고 결과적으로 비성경적인 궤변일 뿐이다.



“견고한 진(陣)을 파하라


(고후10:4-5) -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堅固)한 진(陣)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오늘날 개신교, 즉 기독교 종교 안에는 주로 칼빈 신학, 루터 신학, 웨슬레 신학, 형제회 신학등으로 분파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주된 신학으로 인하여 수 많은 교파들이 산출되었고, 각각의 교파들은 자파(自派)의 신학(교리)만을 주장하고 고집하는 오류(誤謬)를 범하고 있다. 이 강력한 교리들은 서로 논쟁하고 그 논쟁의 와중에서 파생(派生)되는 또 다른 교리의 바벨탑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사로잡는 덫(올무)으로서 견고한 진(陣)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각각의 교파들은 권위의 성경에 굴복하지 아니하며, 심지어 대적하기 까지 하는 오만(傲慢)한 그 교리의 진(陣)들,즉 요새(stronghold)들은 그들 스스로의 유전(전통)과 문화와 의식과 규례들과 신조와 교권으로 무장되어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여 사람이 만든 교리를 스스로 높이 추켜 세운 것들은 그 교리를 만든 사람의 사견(私見)에 의한 사상과 이론을 바탕으로 성경을 변개시킴으로 혼잡케 하여(고후2:17, 4:2) 해석한 것들이다(벧후1:20).


광명을 가장한 사탄의 일꾼들의 사상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교리는 오늘날의 혼적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그 혼들을 갈취했고, 대부분 보아도 보지 못하는 소경된 자들을 분명한 목표가 없이 전통의 흐름을 따라 미신적이고 맹신적인 이교사상(paganism)의 구덩이에 빠져버리게 했다. 그 구덩이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기독교 종교인들은 만성적(慢性的)인 그 대세의 흐름에 젖어 있다. 그들은 그 거대한 공룡같은 특정한 분파적인 교리에빠져 버렸다.”


반론: 위 말 자체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는 천상에 있고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의 주장을 하다가 갑자기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의 분열을 탓하는 것은 생뚱맞다. 글쓴이는 소위 천상 교회만 강조하고 이 땅 위의 실제적인 교회들의 표현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이 수 많은 분파들에게 면죄부를 준 점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교리)은 형제회의 신학으로부터 도움 받은 것들이다. 팬튼(D.M Panton)은 말하기를 형제회의 운동은 종교 개혁을 훨씬 능가하는 의미를 가졌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종교 개혁은 인간 정부와 결탁을 했지만, 여기에 반작용으로 일어난 형제회의 움직임은 영적이었으며, 주님을 위한 일에서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형제회의 영적 부흥의 시기도 오래 가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시작된 진리의 해방이 강하게 일어났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생명의 음식을 위한 일이 되지 못하고, 썩는 음식인 교리적 지식의 흐름으로 하락(下落)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형제회 안에서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다. 최초의 분열은 형제회를 일으킨 다비와 벤자민 뉴튼 간에 휴거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두번째 분열은 다비의 폐쇄 형제회와 죠지 뮬러의 개방 형제회 간의 분열이었다. 그 분열은 모든 교파를 죄악으로 간주하는 다비파와 비록 우리와 다른 교파에 있더라도 주님의 사랑스런 성도가 거기에도 있으니 그들과도 교통해야 하며, 그들을 형제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뮬러파 간의 분열이다. 그러므로 이때, 벤쟈민 뉴튼파, 다비파(폐쇄 형제회), 죠지 뮬러파(개방형제회)로 세파로 분열되었고 그 후에 형제회는 백여개 이상으로 분열되었다.”


반론: 위 내용에서 형제회의 역사를 말한 대목의 상당 부분은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교리)은 형제회의 신학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들이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어떻게 16-18세기에 이미 형성된 신학들(칼빈주의, 루터 신학, 웨슬리 신학 등)이 후대인 19세기에 출현한 형제회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인가? 앞뒤가 안 맞는 이런 주장은 무책임하다.


그 분열의 흐름 안에서 형제회의 교리를 근간으로 몇몇 교리를 추가하고 삭제하고 수정하여 특정한 교리로 정립하여 또 다른 교파인 지방입장론(한 도시-한교회)을 주장하는 지방교회가 산출되었다. 오늘날 많은 분파적인 교파들은 어떤 특정한 교리를 근간으로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씩 수집하고 정립한 것들로 만든 교리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여 한 무리의 교파를 형성한 것이다.


반론: 소위 ‘지방 교회’(혹은 ‘지방입장론’)는 이미 1세기에 쓰여진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행8:1), <안디옥에 있는 교회>(행13:1)라는 말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지방(city) 단위의 지역 교회인 ‘local church’ 원칙은 워치만 니 혹은 위트니스 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던 실행이었다. 따라서 보편적인 교회가 지방적 교회 단위로 나타나야 한다는 점은 일부 양식 있는 신학자들도 말하고 있다(박형룡 전집(VI), 32쪽, 기독교의 이단들(장로교 합동 측 교육국), 304-305쪽, 정훈택 전 총신대 교수가 월간 교회와신앙 96년 12월호에 기고한 글(99-101쪽) 참조).


그리고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소위 지방 입장(터)은, 1) 주님의 몸은 하나임(엡 4:4)으로 나뉠 수 없다. 2) 이러한 주님의 몸의 하나의 실재는 그 영이다(엡 4:3). 3) 우주적인 한 몸은 성경에서 지방 단위로 출현한다(행 14:3, 딛 1:5)는 점을 다 포함한 개념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방 입장보다도 하나님의 경륜(딤전 1:4)의 노선을 따라 <생명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충만인 그분의 몸>, <그 몸의 완성인 새 예루살렘>, <삼일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을 더 강조했다. 이것은 성경의 중심 노선을 따른 가르침과 실행일 뿐 특정 교파 형성과는 무관하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된다. 믿는 이들이 개인적으로는 어떤 진리에 대해서 확고한 견해를 가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서로간에 자유를 허용하고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함으로 본질의 입장으로 돌이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한다(엡4:3). 그러나 본질적인 진리를 거역하는 교리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말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심 받아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는 오직 부르심의 한 소망, 한 몸, 한 성령, 한 주(主), 한 믿음, 한 침례, 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하나이다(엡4:4-6).


그리스도인들은 한 본질 안에서 하나, 한 생명 안에서 하나를 진리로 붙들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근본이요, 또한 우리가 먹고 살아야 할 생명의 음식이다. 성경은 우리가 생각으로 아는 지식의 책이 아니라, 생명의 음식으로 공급받는 것을 아는 하나님의 계시(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성경을 아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기 위한 목적이 있다(벧후3:18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스려 스스로 추켜 세운 높은 것들이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견고한 요새, 즉 견고한 진이다. 그 스스로 추켜 세운 높인 것들이란 생명의 음식인 생명나무가 아니라 선(good)한 것인 성경에다 사탄의 사상인 모든 생각들을 혼합한 선과 악(evil)의 지식의 나무인 각종 교리들이다. 사탄과 동역하여 사람이 만든 분파적인 교리들은 사망의 나무이다(창2:9, 17, 3:1-6).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길은 각종 교리들을 무너뜨려야 하며, 모든 생각(사상)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모임은 주님이 계시는 종교의 진(陣) 밖(영문 밖, 진영 밖)에 있어야 한다.우리는 종교의 진영 밖으로 나아가서 참된 제물(그리스도)을 함께 나누는 자들이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코이노니아(교통, fellowship)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다(히13:13-16 참조).”


반론(평가): 바로 이런 내용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누누히  강조하던 것들이 아니던가? 특정 창시자, 특정 교리, 특정 실행을 따라 분열을 만들기 보다는 참되게 거듭난 사람, 하나님께서 받으신 사람은 다 받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한 지방에 한 교회> 원칙의 본질이다.


“각 교파의 종교적인 교리들은 악한 영들로 우리 안에 자리잡는다. 그 악한 영들이 귀신들이다. 귀신들은 순수하지 못한 더러운 영들이요, 음행하는 영들이요, 저주받은 영들이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길은 종교적인 영들인 귀신들을 쫓아내야 하는 길이다. 종교적인 귀신들을 내 쫓는 길은 금식과 기도로 내 쫓아야 한다(마17:21).


우리가 먹는 음식인 종교적인 교리의 음식에 대해서는 금식하고 생명의 음식을 갈구하기 위해 기도함으로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다.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마 8:16), 성령을 힘입어 귀신들을 쫓아내는 길(마12;28)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말씀이며, 성령이다(계19:13, 요14:26 참조). 주님은 오늘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이 영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신다(요6:63).


사람이 만든 각종 분파적인 교리들은 육신적이며, 혼적인 것을 위한 것들로서 하나님의 뜻인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음식을 대치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의 능력으로 종교적인 교리들인 그들이 높이 세운 견고한 요새(진)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반론: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은 주님의 교회이며, 특정 지역의 교회는 그 안에 사는 모든 거듭난 믿는 이들을 포함한다는 원칙은 특정 교리나 특정 인물이나 특정 실행을 따라 교파(교단)를 만드는 실행보다 더 성경에 부합한다. 실제로는 장로교, 루터교, 가정교회 등의 울타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치는 것은 워치만 니의 표현을 빌리면, “담 너머로 악수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라면 “대중 앞에서나 이 집 저 집에서 주저하지 않고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행 20:20)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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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션스 2018.03.04 22:07
    글 잘 보았습니다. 제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도 있어서 적어주신 성경구절을 모두 찾아보았는데, 꼭 한 도시에는 하나의 교회가 있어야 된다는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요? 당시에는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만 있었다는 내용을 변증하는 내용인데 그게 이후에도 그래야 된다는 근거는 될 수가 없는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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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션스 2018.03.04 22:32
    그리고 하나만 더 질문을 드리자면, 저도 구글 번역으로 헬라어를 번역해보니 서머나 사람들의 교회~ 이렇게 번역이 되던데요. 님의 말씀처럼 서머나에 사는 모든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해석해도 되겠죠. 하지만 거기에 도시 이름만 들어간게 아니고 모든 교회의 이름에 "사람"이라는 개념이 들어갔으면 도시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강조되고
    중심이 되는 것으로 보아야 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LA한인교회라는 교회가 있으면 LA에 사는 거듭한 한인들의 교회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LA라는 지역보다 "한인"이 더 중요한 것이죠. 한국 사람들이 모인 교회니까 한국말 못하는 사람들이 예배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명제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관심은 "도시"가 아닌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의 개념이 가장 중요한 것이면 앞에 반드시 도시이름이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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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신인: 지방 교회측 진리변증위원회(DCP Korea) 2016. 9. 26. 서울 도봉구 창4동 은혜빌딩 101호 전화: 1544-6302 수신인: 월간 종교와 진리 발행인 겸 편집인: 오명옥(omyk7789@gmail.com) 서울시 영등포구 도신로 244, 2층 전화: 02-6225-7001~3 제목: ...
    Date2016.10.06 Reply0 Views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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