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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주 예수님 자신은 우리 안에 안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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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측의 진리 변증-

과연, 주 예수님 자신은 우리 안에 안 계시는가?

-요일3:24 ‘성령으로 말미암아’의 바른해석-

 

 

차영배 박사 등 일부 개혁신학자들은 ‘생명이신 아들 하나님’의 사람 안의 직접적인 내주를 부인하고, 주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내주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아들 하나님 자신은 사람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본인들이 주장 근거로 제시한 요한일서 3장 24절 본문 해석에서 심각한 오류를 보여주고 있고, 그 결과 잘못된 결론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래에서, 관련 주장들 그리고 그것이 왜 오류가 있는 해석인지를 성경 원문과 저명한 주경 신학자들의 해석을 통해 밝혀보겠습니다.


1. 개혁 신학자들의 주장 소개


1) 차영배 박사


차영배 박사는 ‘위트니스 리 삼일론 논박’이라는 소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성령의 내주로 충분하고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내주는 필요없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바로 성육신되신 분이다”라는 명제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주 예수는 부활하셔서 승천하사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기 때문이고, 우리 안에 內住하시는 분은 주 예수께서 보내주신 성령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의 내주에 관하여는 사도요한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성령의 내주는 곧 주 예수께서 내주하시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성령의 내주로써 충분하기 때문에 주 예수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실 필요가 없다. 그는 재림 때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이 사도신경이다. 따라서 주 예수는 우리 안에서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 받으실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차영배,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0월호, 창간 8주년 기념 삼위일체 특집, 122쪽).


2) 변종길 교수


고신대 신대원 원장인 변종길 신약학 박사 역시 성령을 통한 예수님의 내주하심을 요한일서 3장 24절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어떻게 함께 계시는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통해 함께하신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고(요일3:24), 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이다. 아니,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함께해 주신다.”(변종길,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생명의 말씀사, 2003, 52쪽)


2. 성경 본문을 통한 반박


성경본문의 문법 구조로 볼 때, 아래 요한일서 3장 24절 원문은 결코 우리 안에서의 아들 하나님 직접적인 내주를 부정하고 성령을 통한 간접적인 내주만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1) 헬라어 원문


καὶ ὁ τηρῶν τὰς ἐντολὰς αὐτοῦ ἐν αὐτῷ μένει καὶ αὐτὸς ἐν αὐτῷ καὶ ἐν τούτῳ γινώσκομεν ὅτι μένει ἐν ἡμῖν, ἐκ τοῦ πνεύματος οὗ ἡμῖν ἔδωκεν.


이 구절의 하반절(밑줄 부분)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다"와 "우리에게 주신 그 영을 통해"로 구성되어 있고, 이 두 부분은 구두점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신 그 영을 통해"는 명백히 앞 부분의 구 전체(γινώσκομεν ὅτι μένει ἐν ἡμῖν)를 수식하는 것이므로, 이 구 안의  종속명사절(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 ὅτι μένει ἐν ἡμῖν)이 아닌 주절의 동사(우리가 알다: γινώσκομεν)를 수식함이 분명합니다.


2) 한글 번역본


개역성경과 달리, 한글 킹제임스역과 회복역 성경은 모두 위 해석원칙에 의거하여 바르게 번역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에게 주신 성령에 의하여 우리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아느니라."(한글 킹제임스역)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영을 통해 압니다."(회복역)


3. 저명한 주경 신학자들의  견해를 통한 반박


1) Robertson은 그의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 요한일서 3장24절 해설에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성령에 의해서 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228쪽).


2) <Expositor’s Greek New Testament>(vol.5)의 요한일서 3장24절 각주도 "(이 같은) 확신은 성령으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영"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앎"을 수식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188쪽).


3) Wuest는 <Word Studies in the Greek New Testament>의 요한일서 3장24절 해설에서 "우리가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심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은 ...성령으로 부터 온다"(158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And in this we know experientially that He is abiding in us, from the Spirit as a source whom He gave to us"


4. 결론


서두에 소개한 차영배 박사의 잘못된 주장은 ‘성령으로 말미암아’(by the Spirit)가 수식하는 대상을 잘못 이해한 것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가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수식한다고 오해함으로써 ‘아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신다’라는 잘못된 해석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결과, 아들 하나님의 직접적인 내주가 배제되고 성령을 통한 간접적인 내주라는 잘못된 교리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을 구별에서 지나쳐 분리시켜 생각하는 위 차영배 박사의 주장은 삼신론이라는 의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통 삼위일체론자 중 하나로 평가되는 다메섹의 요한(670-750)의 '삼위의 상호 공재'(페리코레시스) 개념에 따르면, “성자는 성부와 성령 안에 계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 안에 계시며, 성부는 성자와 성령 안에 계시나 뒤섞임이나 용해와 혼합은 발생하지 않는 분”(유해무, 개혁교의학, 165쪽)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들 하나님의 우리 안에서의 직접적인 내주를 부인하는 위 차영배 박사의 주장은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요일5:12),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골1:27)와 같은 성경 말씀들을 체험하지 못하도록 교리적으로 차단시켜 성도들이 참된 거듭남의 체험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점은 위와 같은 잘못된 주장이 저명한 신학자의 말이라는 후광을 업고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하심'를 말씀하고 있는 성경 본문(골3:4, 1:27)을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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