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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 “가장 나쁜 종류의 이단사냥”의 희생양



지방 교회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서도 지방 교회를 이단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문맥들로 급히 비판글을 써야 했던 이들은 두 가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해 왔다. 그것은 1차 자료를 뽑아낼 때 전후 문맥을 무시한 것이고(사실 왜곡), 절대적 기준이 아닌 상대적 기준으로 함부로 이단시 한 것이다(판단 기준 오류). 현재 김홍기 목사 역시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특히 그는 절대 기준인 성경 본문에 취약한 경향을 보인다. 즉 진리 토론임에도 그의 글에는 성경 본문에 근거한 말은 거의 없고, 신학자들 혹은 본인의 개인적 주장뿐이다. 이처럼 김 목사는 성서침례교단 소속임에도 전혀 ‘성서’적이지도 ‘침례교인’답지도 않다.


“침례교인들에게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권위는 신구약 성경이다. 신앙 고백은 단지 성경해석을 위한 안내자일 뿐이며, 우리의 양심을 지배하는 권위를 가지지 않는다.” (김승진, 침례교회와 역사, 침례교 신학교 출판부, 2009년, 211쪽)


한편 지방 교회측을 무려 6년간 연구한 후, “우리가 틀렸었다”라는 글을 쓴 CRI 저널 편집장 엘리옷 밀러는 이러한 김 목사식의 이단 정죄를 “가장 나쁜 종류의 이단사냥”이라고 했다(우리가 틀렸었다, 26쪽). 즉 이들은 “전후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지도자나 그 단체에 대해 일반인들이 등을 돌리게 하려고”, “이단처럼 보이거나 언어도단인 것 같은 진술들을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흔들어 보이는 특징이 있다. 김 목사의 네 번째 토론글 역시 사실 왜곡과 거짓말로 도배되었고, 위 ‘가장 나쁜 종류의 이단사냥’의 특징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우리는 김 목사가 무슨 내용으로든 글을 쓰면 그 후에야 반론을 펴는 입장이다. 따라서 그가 다룬 쟁점들을 중심으로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식의 반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이러한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참된 성경 진리를 사모하는 독자들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믿는다(롬8:28).



1. 지방 교회는 가장 성경적인 교회론이다.


거듭 밝히건대, “지방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행8:1),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1:2)처럼 (거듭난 모든 이들인) 우주적인 몸이 지방적(city)으로 나타난 성경적인 교회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이다(마16:18, 18:17, 계1:11, 행14:23, 딛1:5).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포함한 소위 ‘주의 회복’(Lord’s recovery)은 이러한 지역 교회의 원칙을 성경에서 발견하고 성경대로 실행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난 반론글에서 ‘대북시 교회’의 예를 들어 이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 그럼에도 김 목사가 우리의 설명에는 귀를 막은 채, 지금처럼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은 본 토론을 ‘이전투구’식으로 끌고 가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김 목사에게 들을 귀가 생길 수만 있다면, 지방 교회에 대한 바른 정의를 천번이라도 더 반복해서 들려 줄 수 있다. 과거의 CRI의 예에서처럼, 결국은 진리가 역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번 글에서도 김 목사는 “지방 교회는 지방 교회의 신조와 다른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방 교회가 철저하게 신조 중심으로 무장된 ‘교파’임을 보여준다”라고 거듭 거짓을 말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가장 신조 중심인 교단은 개혁 교회이다. 김 목사가 몸 담은 침례 교단이 그 다음이며, 지방 교회측은 아예 ‘고유의 신조’ 자체가 없다. 성경 66권 전체가 신조요 신앙 고백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위트니스 리는 “우리는 성경의 참된 것은 어느 것도 반대해서는 안 된다. 지방 교회들은 만유를 포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교회 생활의 특수성, 일반성, 실행성, 27쪽). 그럼에도 김 목사가 위와 같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지방 교회를 어설프게 알거나 양심의 소리를 막고 지방 교회의 참 모습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래에서 보듯이 ‘신조’(Creed)라는 말은 지금처럼 아무데나 붙일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침례교인들은 신조주의를 배척하는 사람들이다. 신앙고백과 신조는 명백히 구분된다. … 신앙고백은 가변적이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양심을 속박하지 않는다. … 신조는 강제성, 항구성, 무오류성 그리고 절대성을 갖는다. … 성경만을 최종적인 유일 권위로 믿고 있는 침례교인들은 신조를 거부해왔을 뿐 아니라 … 신앙고백이 신조처럼 사용되어질까봐 매우 조심을 해왔다(김승진, 위의 책, 210-211쪽).


그런데 지방 교회측에는 신조는 커녕 신앙고백조차 침례교만큼 축적되어 있지도 않다. 사실 처음 온 이들이 지방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를 요약한 소위 신앙고백이 있느냐고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른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아래에서 말한 내용들이 일종의 우리의 신앙 고백이다(혹은 ‘확증과 비평지’의 http://www.affcrit.com/st_faith.html(영문)를 보라.)


하나님의 교회는 이 일곱 가지(한 몸, 한 성령, 한 소망, 한 주님, 한 믿음, 한 침례, 한 하나님(엡4:4-6)-필자 주)에서 똑같으므로 나눌 수 없다. … 상대방이 누구이든 그가 일곱 가지에서 우리와 똑같고 또 우리와 같은 지방에 있다면, 그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가 소재하는 지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다(워치만 니,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 한국복음서원, 2003, 200쪽).


“교회 생활의 특수성은 성경, 하나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역사, 구원, 교회에 관한 신앙들로 이뤄져 있는 믿음(faith)이다(계14:12, 갈1:23, 딤후4:7).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같은 믿음(딛1:4)인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한 동일한 신앙을 함께 나눈다.”(위트니스 리, 교회 생활의 특수성, 일반성, 실행성, 한국복음서원, 1998, 5, 7-12쪽).


아울러 위 “지방 교회”의 정의 속에는 참되게 거듭난 모든 이들을 배척하지 말고 형제 자매들로 받아야 한다는 사상이 들어 있다. 이러한 신념은 폐쇄파 형제회와 달리, 본인이 거듭났다고 고백하는 모든 이들이 지방 교회측의 주님의 상(고전10:16-17)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들은 전 세계 지방 교회들 안에서 보편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주일 오전 말씀 집회에서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말할 수 있고, 또 말하도록 권장되고 있다(고전14:4, 31).


그럼에도 김 목사는 “소위 ‘교파 그리스도인들’이 지방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하라고 가르친다”라고 거듭 사실을 왜곡시키고 있다. 그러나 지방 교회측은 성경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움으로 한 사람이 ‘교회 집회’에서 매주 설교하는 실행 자체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고린도전서 14장 31절과 26절을 근거로, “모두가 한 사람씩 차례로 2-3분씩 신언(申言)함”을 실천하고 있다.


따라서 김 목사가 아무리 이러한 <성경적인 지방 교회 원칙과 실행>에 ‘교파’ 딱지를 붙여 흠집을 내려고 해도 그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김 목사는 교회(유기체)와 교파(조직)는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김 목사가 비성경적인 교파주의를 버리고, 성경적인 지방 교회의 원칙 안에서 주님의 한 몸을 건축하는 대열에 합류할 것을 재차 간곡히 권고한다. 끝으로 김 목사가 ‘워치만 니를 지방 교회의 창시자’라고 말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시자 창시자이신 주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임을 지적해 둔다.



2. 니케아 신조의 의의와 한계 및 김홍기 목사의 잠재적 삼신론


지방 교회측은 니케아 신조의 배경과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즉 니케아 신조(325년) 혹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381년)는 아리우스주의 이단을 배격하고, 성자가 성부와 동일 본성(호모우시오스, ὁμοούσιος)이심을 선언한데 큰 의미가 있다. 니케아 신조가 선언한 것처럼, 우리도 당연히 성자께서 성부와 동일 본질을 가지신 참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고 고백한다.


이절(롬 9장 5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비록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유다지파에서 나온 육체를 입은 사람(롬5:15)이셨지만, 그분은 또한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사람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시다(위트니스 리, 신약 성경 회복역, 각주1). 여기서 주님은 그분이 신성, 즉 그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단언하셨다(요10:33, 5:18, 1:1, 20:28, 요일5:20, 빌2:6)(위의 책, 요10:30, 각주1).


사실이 이러함에도 김 목사는 “리는 삼위일체에 관한 니케아 신조의 이해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라고 거짓을 말하고, 한술 더 떠서 자신이 마치 지방 교회 전문가인양 행세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김 목사의 허세와 거짓을 사실처럼 말할 줄 아는 담대함의 뿌리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니케아 신조는 김 목사의 이해와 달리, 삼위일체론의 모든 것을 망라해서 해결 했거나 정의하지는 않았다. 단지 삼위 특히 성자의 동일 본성을 확인했을 뿐이다. 다음을 보라.


'니케아(신조)는 4세기 교회의 모든 교리적인 문제들을 다 해결하지 않았다. 오히려 삼위일체 논쟁이 니케아와 더불어 더 진지해지기 시작하였다. … 신조가 이해된 방식에 있어서는 서명자들 사이에 광범한 차이들이 있었다'(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76쪽).


'니케아 신조는 성령에 관한 고백이 지나치게 간단하다. 성자와 성령이 구별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나 동질인지 혹은 발출인지 조차도 밝혀지고 있지 않다‘(차영배, 삼위일체론, 134-135쪽).


'(니케아 신조는) 성령에 대한 고백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고백과 비교할 때 매우 간략하다. '또 성령을 믿는다'로 되어 있을 뿐 아무 설명이 없다. 이와 같이 니케아 신조는 사도 신조와 큰 차이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고백만으로는 그것이 삼위일체론의 권위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 그러나 사도신조의 내용 구조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과 같은 삼위일체론의 표준이 된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삼신론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함께 언급하면서도, 그 셋이 하나라고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종성, 삼위일체론, 1995, 85-86쪽과 머리말 참조).


위에서 보듯이 균형잡힌 신학자들은 위트니스 리와 마찬가지로 니케아 신조의 의의를 귀히 여기되, 그 한계도 솔직히 지적한다. 심지어 이종성 박사는 니케아 신조든 사도 신조든 셋을 말하지만 그 셋이 하나이다 라고 말하지 않음으로 “삼신론적인 구조”라고까지 말했다. 그럼에도 김 목사는 같은 지적을 한 위트니스 리를 향해 “니케아 신조를 ‘이단 신조’로 둔갑시켜 버린다”라고 했고, 또 이런 거짓 단정을 근거로 글 제목을 “지방 교회 … 이단 종파”라고 붙이는 가벼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다면 묻겠다. 김 목사의 눈에는 같은 표현을 한 통합교단 원로 신학자인 고(故) 이종성 박사도 이단인가? 이 점을 다음 글에서 꼭 답변해 주기 바란다. 만일 진리 문제를 상대에 따라 달리 말한다면, 그것은 비겁한 것이다!


삼위의 셋이 한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지 않은 니케아 신조의 한계는 그 후 ‘페리코레시스’(상호내주, 상호 침투)(요14:10-11) 이론으로 보완된다. 이처럼 정통 삼위일체론은 니케아 신조에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후의 계속적인 논의들을 통해 보완되고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래 김명용 박사(장신대 총장)의 글이 그 점을 말해 주고 있다.


바른 삼위일체론은 … 성부, 성자, 성령이신 세 분 하나님께서 페리코레시스적 삶인 상호내주와 함께 하심을 통해 하나됨을 유지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독특한 삶과 존재방식을 설명하는 교리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나님은 상호내주와 함께 거하심으로 하나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라고 말씀하셨다(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와 바른 삼위일체론, 월간 <교회와 신앙> 2001년 10월호).


위에서 보듯이 삼위의 세 위격들께서 한 하나님이심을 유지하려면, 김 목사가 항상 강조하는 삼위의 동일 본성 공유만 아니라 ‘페리코레시스’(상호내주) 이론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김 목사는 이 정통 삼위일체를 유지하는 필수 요소를 “지방 교회의 이단적인 상호내재론”이라고 함부로 폄하하고 거듭 배척해 왔다.


그 결과 삼위 중 한 위격 안에 다른 두 위격들이 상호내주하심으로, <한 위격은 곧 세 위격들 전체 곧 완전한 하나님이시다>라는 방면을 김 목사는 부인한다. 바로 이런 점이 김홍기 목사와 노먼 가이슬러가 ‘분리된 세 위격들’을 주장하는 ‘잠재적 삼신론’ 신봉자로 보이는 이유이다.


이들의 특징들 중 하나는 제 1, 3 위격은 배제된 채 오직 제 2격만 성육신하셨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1) 요한복음 1장 14절(장막을 치시고, 스케노오), 2) 2장 21절(성전된 자기 육체), 3) 14장 11절(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 4) 골로새서 2장 9절(신격(데오테스)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5) 디모데전서 3장 16절(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시고, 한글 킹제임스) 등의 성경 말씀에 위배된다. 성전 안에는 ‘일부’가 아닌 삼위 하나님 ‘전체’가 계신다는 것은 상식이다.


김 목사 주장은 어거스틴, 스트롱, 로뢰인 뵈트너 같은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의 아래 말과도 크게 다르다.


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신다(… and all in each)”(어거스틴, On the Trinity(VI), p.103).


“거룩한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분리된 개체들이 아니다. 각 위격은 다른 두 위격을 포함하며, 한 위격의 오심은 다른 위격들의 오심이다.”(A. H. 스트롱, Systematic Theology, p.p.332-333).


“주기도문에서 … ‘아버지’라는 단어는 … 배타적으로 첫째 위격만 아니라, 한 하나님인 세 위격들을 가리킨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p. 107).


그렇다면 과연 누가 니케아 신조를 바로 이해하고, 누가 이단 사설을 주장하고 있는가? 김홍기 목사같은 소위 ‘전통(traditional) 삼위일체론자’인가, 아니면 위 세 명과 같은 명실 상부한 ‘정통(Orthodoxy) 삼위일체론자들’인가? 당연히 후자가 아닌가? 이 점도 다음 글에서 김 목사의 입장 표명이 요구된다. 이 기회에 우리는 김 목사의 주장과 달리, “전통”과 ‘정통’은 결코 동의어가 아님을 밝혀두고자 한다.



3. 김홍기 목사는 성경의 핵심 진리를 믿어도 ‘교파’일 뿐이라는 억지 주장을 버리기 바란다.


김 목사는 이번 글에서 지방 교회측도 ‘교파’라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려고 온갖 억지를 쓰고 있다. 그는 “지방 교회는 다른 교파들과 마찬가지로 중심을 이루는 어떤 특정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 리는 그것을 ‘계시’라고 포장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특정한 진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지방 교회는 말로는 일치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신조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결코 강단을 개방하지 않는 지극히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교파이다.”라고 거듭 억지를 부린다. 세상에는 명시된 죄목이 있어야 죄로 판단하는 ‘죄형법정주의’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김 목사는 지금 죄명도 없는 정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세상만도 못한 ‘의로운’ 재판관 행세일 뿐이다.


지방 교회측은 물론 성경의 모든 가르침들, 특히 구원과 관련된 핵심 진리들(1) 성경의 무오성, 2) 동정녀 탄생, 3) 대속의 죽음, 4) 몸을 입으신 부활, 5) 기적 인정 또는 주님의 재림)을 확고하게 믿는다. 그런데 이렇게 믿으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교파”라는 식의 김 목사의 주장은 한 마디로 궤변이다.


김 목사 본인은 이런 핵심 진리를 부정해도 자신의 강단을 개방하는지 모르지만, 사도 바울은 신앙 선배인 베드로도 면전에서 꾸짖으며 ‘다른 가르침’(딤전1:3-4)과 ‘다른 복음’(갈1:6)을 엄히 경계했다(갈2:11). 사도 바울은 또한 어떤 교파도 만들지 않았고, 단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회심한 이들로 지방 교회들을 세웠다. 이런 지극히 성경적인 자세를 두고 ‘교파’니 ‘배타적이니’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역시 사도 바울처럼 주님의 몸을 건축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단호히 거부했고, 몸을 건축하는데 꼭 필요한 다음 세 항목들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주님의 몸의 하나(엡4:4)를 더 견고케 할 뿐, 김 목사의 오해처럼 결코 ‘교파를 만드는 특별한 신조’가 아니다.


1)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알고 체험함 - 이것은 골로새서 3장 4절(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말씀에 근거한다. 이 방면을 다룬 영적 서적들은 소위 속생명파(정적주의)의 것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쓴 저서들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체험하고 누리는 것은 김 목사의 억지 주장과 달리, 오히려 교파적 분열을 치유하고 그리스도의 한 몸을 건축한다(고전3:3-5, 6-7, 엡4:16).


2)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를 힘써 지킴 - 이것은 에베소서 4장 1-6절(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과 요한복음 17장 21절(그들이 모두 하나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의 주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에 근거한다. 이 역시 분열을 고착화시키는 교파주의와는 정반대 개념이다.


3) 성직자 평신도 제도에서 벗어나 만인 제사장을 실천함 - 이것은 베드로 전서 2장 9절(여러분은 선택받은 족속이고, 왕들인 제사장 체계이며)에 근거한다. 마틴 루터는 ‘만인 제사장’의 계시를 보았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더 나아가 교회 생활에 그것을 접목하여 실천했다(엡4:11-12).


우리는 위 세 가지가 온전히 이뤄질 때 결국 모든 교파는 사라지고, 주님의 한 몸이 건축될 것을 굳게 믿는다. 주님의 몸인 교회의 최종 모습인 새 예루살렘(계21:2, 9-10) 안에는 어떤 교파도 없다. 단지 그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만 충만하다(계21:11). 이처럼 지방 교회측은 영원토록 존재할 새 예루살렘(주님의 몸이자 신부)의 성취를 위해 서 있고, 김홍기 목사는 결국엔 사라질 교파를 위해 지금 헛되이 싸우고 있다.



4. 성경과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파를 거부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한 몸에 분열을 가져오는 어떤 유형의 교파(종파)도 거부한다(고전1:11-13, 롬16:17, 딛3:10-11, 행20:30). 또한 현재 주요 교파의 기원자들도 교파(분열)를 만들 의도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교파는 인간의 약함의 산물일 뿐, 하나님의 원하심이나 신실한 믿는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다.


칼빈은 독립 교회(Freikirche)를 형성할 계획은 추호도 없었다(오토 베버, 칼빈의 교회관, 풍만 출판사, 1985, 33쪽). 요한 웨슬레 역시 한번도 자기가 영국 교회로부터 독립하여 새 교회를 조직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이종성, 교회론, 221쪽).


16세기 종교개혁이 결코 기성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의 분리를 지향했거나, 하나의 새로운 교파를 형성하려 했던 것이 아님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교회는 갈래갈래 찢겨지고 말았다. … 칼빈 사후, 베자와 제네바 동료들은 계속해서 루터교 사람들과의 일치를 추구했다(이형기, 세계 교회의 분열과 일치추구 역사, 1994, 121쪽).


그런데 김 목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그 하나됨(엡4:4, 요17:21)에 대한 영적인 조명과 체험이 희미하다 보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교파’를 옹호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가 보는 교파 혹은 종파의 일반적인 특징은 이런 것들이다.


1) 교파(혹은 종파)는 자신들의 특정 교리로, 거듭난 이들 중 일부를 배척한다: 지계석주의 침례교인의 다음과 같은 결의문(Cotton Grove Resolutions)이 그 좋은 예이다. 그들은 이런 내용을 근거로 장로교인과 감리교인들과의 강단 교류를 거부했다. 그런데 김 목사는 이런 단체를 극찬한 바 있다.


첫째로, 침례교인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패턴에 따라 조직되지 않고, 정치, 직분자, 교회 회원, 의식과 교리와 신앙행습 등과 다른 종교적 사교 단체들을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인정할 수 있는가? 둘째로, 그들을 복음적인 교회, 혹은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가? 셋째, 우리는 그런 비성서적인 단체의 목회자들을 복음 사역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 네 번째 질문을 제외하고 모든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으로 결의문이 채택되었다(김승진, 위의 책, 408쪽).


한편 워치만 니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한국복음서원, 2003)에서 “보혈로 구속되어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우리의 형제로 보며”(190쪽), “다른 것은 곧 그들이 거주하는 지방이  다를 뿐”(202쪽)이라는 전제 하에 종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파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별하는 것이 종파이다. … 종파가 없을 때 구별의 행위가 없어지게 되고 완전히 포함시키는 심장이 있게 된다(208쪽). …형제들이 성경 안의 교통의 범위가 한 지방에 있는 종파 없는 믿는 이들이 아니라 그 지방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임을 보도록 해야 한다(211쪽).


2) 교파(denomination)는 대외적으로 자신들을 지칭하는 ‘공식 명칭’이 있다: 거듭나서 주님의 몸의 지체들이 된 후에도 여전히 다툼과 분쟁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생각이 다른 “유오디아와 순두게”(빌4:2) 혹은 같은 고린도 교회 안에 머물면서 ‘바울에게’ 혹은 ‘아볼로에게 속했다’라고 말하는 상태(고전3:3-5)만으로는 ‘교파’라고 하지 않는다. 교파(혹은 교단)는 자신들을 지칭하는 공식 명칭을 가진다. 이러한 교파가 현재 전 세계에 약 4만개라는 통계가 있다. 김 목사가 적극 옹호하고 있는 이러한 교파 혹은 교파주의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교회 일치와 반대되며, 쉽게 말하면 ‘분열’이다.


“또 다른 교회 일치의 방해요인은 교파주의였다. 대량 학살, 화형, 죽기 살기의 신학논쟁 등은 교파주의적 절대주의를 증거한다. 1618년에 이르면 교파주의는 전쟁을 유발한다. 각 교파는 타 교파들과 공통 분모보다는 자신들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신앙고백서들을 작성하고 스콜라주의 신학을 발전시킨다. 따라서 각 교파들이 자신들이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의 한 부분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이형기, 세계교회의 분열과 일치추구 역사, 1994,166쪽).


위와 같이 자신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다름을 공식 천명한 것이 교파이다. 그러나 지방 교회는 1)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모든 이들(롬8:9)은 주님의 몸의 지체들이고, 2) 그들을 나누는 유일한 기준은 거주하는 지리적인 경계(city)뿐이라는 것이다. 이 외에 다른 무엇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별하는 것이 종파”(sect)이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공식 명칭을 갖는 것이 교파(denomination)이다.


교파 혹은 종파와 달리, 우리는 어떤 공식 명칭도, 본부도, 총회도, 총회장도 없다. 소위 ‘지방 교회’(Local Church)도 남들이 부르는 호칭이다. 심지어 ‘주의 회복’도 공식 명칭이 아니다. 우리의 공식 명칭은 단 하나, 즉 ‘어느 지방에 있는 교회’일 뿐이다. 우리는 모든 참되게 거듭난 이들을 그 지방의 교회의 일원이라고 믿으며, 주님의 몸 안의 모든 지체들과의 생명의 교제를 추구한다(요일1:3). 따라서 우리는 교파가 아니다. 엘리옷 밀러는 이런 점을 “지방 교회의 놀라운 포용성”이라는 소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교파주의에 반대하는 이러한 입장은 분열적이고 엘리트 의식에서 비롯된 배타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본래의 의도는 사실 정반대이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에서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일치와 그들을 향한 겸손과 그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일관되게 장려된다. 사실 이것이 ‘지방 교회들’에서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태도이다(우리가 틀렸었다, 35쪽).



5. 본질적인 것들은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들은 자유를!


CRI 와 풀러 신학교는 위 원칙을 따라 지방 교회측이 정통이고 그리스도의 몸 안의 참된 지체들이라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믿는 이들에게 ‘본질적인 것들’(central doctrines)인가? 먼저 우리는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벧후1:1, 딛1:4)-참고로 위트니스 리는 이것을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벧후1:3)을 실재화하는 것으로 본다-을 들 수 있다.


이것을 조금 더 풀어 쓰자면, 다음과 같은 구원과 관련된 성경의 핵심 진리들이 “본질적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즉 1) 성경의 무오성, 2) 주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나심, 3)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심, 4) 대속하는 죽음, 5) 몸을 가지신 부활, 6) 지상 재림, 7) 그분의 구속을 믿고 생명으로 영접함으로 거듭남, 8) 거듭난 모든 이들은 주님의 몸의 지체들로서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통”(요일 1:3)을 나눔. 바로 이런 것들이 세상 사람과 구별되는 한 새사람(엡2:15)인 우리의 본질적인 정체성이다.


김 목사는 지난 글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인한 구원”, “그리스도의 가시적인 재림”, “교회 의식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본질적인 것들’로 제시했다. 우리도 이 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김 목사는 이에 더하여 “삼위일체에 관한 가르침”을 ‘본질적인 것들’ 중 하나로 제시하면서 지방 교회측이 이 점에서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글을 썼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성경적인 삼위일체에 충실하다. 단지 위에서 본대로 김 목사가 ‘삼위의 상호내재’를 부정하고 어거스틴 등과 달리 ‘한 위격이 세 위격 전체’인 방면을 거부하는 점에 반대할 뿐이다. 따라서 정통 삼위일체론과 거리가 있는 쪽은 잠재적 삼신론을 신봉하는 김 목사 자신이지 결코 우리가 아니다.


김홍기 목사는 지금까지 토론글에서 크게 두 방면을 주장해 왔다. 첫째는 삼위의 동일 본질에 따른 하나는 믿되, 어느 ‘한 위격이 세 위격 모두이심’을 부인하는 잠재적 삼신론을 고집한 것이고, 둘째는 비성경적인 ‘교파주의’를 절대시하고, 그것에 동조하지 않는 동료 믿는 이들을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언사들과 독설로 비난한 것이다. “정통 교회의 심장에서 더 많은 검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선혈이 낭자한 교리 전쟁터”, “피뭍은 창검을 휘두르며 사납게 질주하는 종교적 몽골인들”, “날선 도끼를 사용하여 정통교회의 머리와 심장을 가격 하기를 좋아하는 교리적 바이킹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말들은 진리 토론에는 매우 부적절하며,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분노를 부추겨 한 몸의 지체들을 이간시키려는 마귀만 이롭게 할 뿐임을 지적해 둔다.



6. 김홍기 목사가 말하는 소위 ‘정통 교회’는 실체가 모호하다.


김홍기 목사는 이번 글에서 나름대로 정통 교회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고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위 정통 교회의 실체는 모호하기만 하다. 그 이유는 성경에는 ‘성경적인 교회’는 있어도 소위 ‘정통 교회’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통 교회는 상대적 개념일 뿐이며, “끝없는 이단논쟁만 불러 일으킨다”(정행업, 세계교회사에 나타난 이단논쟁, 한국장로교 출판사, 1999, 20-21쪽).


기독교 신문인 뉴스 미션의 최근 기사 제목 중 하나가 “여중생 사망 父 목사, 정통 교단 소속으로 밝혀져”이다. 이처럼 성경에 없는 상대적인 개념인 ‘정통 교회’(정통 교단)는 최근 들어 많은 이들의 신앙 생활에 혼동과 낙심과 실망을 주는 용어가 되고 있다. 즉 그것은 애석하게도 위에서처럼 소위 정통 교회답지 못한 행동으로 세간의 조롱거리 혹은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실족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해 왔다. 또한 구원의 확신도 없는 사람들과 심각한 죄를 범한 이들이 정통 교단 소속이라는 명분아래서 자신의 참된 영적 상태를 착각하게 했다. 이러한 정통 교회 개념의 역기능은 훗날 심각한 재앙을 초래하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김 목사는 소위 ‘정통 교회’의 예로 ‘정통 개신교’ ‘정통 루터교’ ‘정통 개혁 교회’ ‘정통 침례 교회’ ‘정통 복음주의 교회’를 열거하며 이들이 “어떤 특정한 종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초대 교회의 유산”이라고 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어디에 위와 같은 교파들이 있었는가?  이들의 거의 대부분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산물이 아니던가!


김 목사는 이처럼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정통 교회의 정의는 잠시 접어 두고, 개혁 신학자인 김효성 박사가 아래에서 열거한 각 교파들도 정통 교회인지 여부를 다음 글에서 밝혀주기 바란다. 참고로 김홍기 목사는 침례 교단 목사답게 자신이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치 않는) 자유주의를 배격한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김 목사의 그러한 신앙 양심에서 나온 솔직한 말을 듣고 싶다. 겸하여 동성 연애자를 강단에 세우는 미국 PCUSA교단이 김 목사가 말하는 정통 교회인지도 밝혀 주었으면 한다.


“거기(한기총)에는 예장 통합측 같은 자유주의적 교단이나 기성기침같은 포용주의적인 교단들이 가입되어 있고, 그뿐 아니라 기장이나 기감같은 자유주의 교단들까지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교회들은 NCC뿐 아니라, 이러한 타협주의적인 단체도 배격해야 한다. 보수 교회들은 자유주의적 교회들과 교제해서는 안되고, 마땅히 보수 교회들과만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김효성, 현대교회제문제,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166쪽)


끝으로 우리는 ‘기독교’, ‘큰 바벨론’ 등 김 목사가 두둔하는 개념들에 대하여 이번에는 지면 관계상 충분한 반론 혹은 해명을 할 수 없었다. 이점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한 가지 즉 성경에는 ‘기독’(인격체)은 있어도 ‘기독교’(종교)는 없다는 점을 밝혀 둔다. 주님 혹은 그분의 몸은 살아 있는 ‘인격체’이지 결코 죽은 ‘종교’가 아니다.


김홍기 목사의 지금까지의 글 내용들은 요약하면, “지방 교회는 … 삼위의 ‘본질적인 하나됨’을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식의 근거없는 거짓 단정의 반복이거나 성경과 신실한 신학자들과 소위 ‘교파 창시자’로 간주되는 이들도 거부하는, ‘교파주의’에 대한 옹호만 가득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의 눈에는 불에 태워질 나무와 풀과 짚에 해당되고(고전3:11), 김 목사 자신에게는 “가시 돋친 막대기에 뒷발질 하는 고통”을 줄 뿐이다(행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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