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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론 논쟁 - "교인이면 다 천국인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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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론 논쟁 - "교인이면 다 천국인가" (4)

 


전OOO 목사님께(4)


처음 몇번 주고 받은 이 메일과는 달리, 목사님의 직전 이 메일 답글 내용은 매우 실망스럽고 대화의 기본이 무시된 것같아 안타깝습니다. 기본 개념 이해에 현저한 이견이 있음이 밝혀진 이상, 다음 세 가지 방면에서 쌍방의 대화가 좀 더 심도있게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현재의 갈등의 핵심은, 1. 목사님의 “구원이 곧 휴거이고, 휴거가 구원이다”라는 <이질적인 구원론>과, 2. 휴거가 ‘익은 곡식을 수확하는 문제’(휴거된 십사만 사천 명을 ‘첫열매’(the firstfruits)로(계14:4), “땅의 곡식이 익었음이니라(the harvest of the earth is ripe)…그러자…낫을 땅에 대어 땅에서 곡식을 거두시더라”(계14: 15-16)라고 한 말씀에 비춰볼 때)임을 보지 못한 <덜 익은 휴거론> 때문입니다. 둘 다 성경적인 구원론 그리고 성경적인 휴거론과는 다른 가르침이자 잘못된 판단 기준입니다.


이제  목사님의 주장의 문제점들을 세 가지로 나누어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지방 교회측은 (비록 그중 일부는 대환란을 통과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결국 다 휴거된다고 믿고 가르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목사님께서는 “믿는 모든 이들이 휴거 되지 못함이 더욱 확실히 드러났습니다.…지방교회는 믿는 모든 이들이 휴거 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라는 식의 엉뚱한 반응을 보이고 계십니다. 이것은 대화의 기본을 무시한 명백한 거짓말 입니다.


우리는 지난 두번째 해명 글에서 ‘모든 믿는 이들이 휴거된다’는 증거로 계14:15-16, 고후5:10 두 곳의 성경구절과 위트니스 리의 해설을 소개드렸습니다. 해당부분을 다시 옮겨와 소개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이번에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성의있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인용시작) “지방 교회측이 1차 휴거에 이어서 ‘모든’ 믿는 이들도 휴거된다고 믿는 근거들


목사님께서는 위 1번 사례만 가지고 ‘지방 교회측이 믿어도 휴거 자체가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라고 주장한다’고 하셨지만, 그것은 큰 오해이십니다. 아래와 같이 지방 교회측도 모든 믿는 이들이 결국에는 다 휴거될 것을 믿습니다.


1) 요한계시록 14장 15-16절에 언급된 휴거 : “주의 낫을 대어 곡식을 거두소서. 주께서 거두실 때가 되었으니 이는 땅의 곡식이 익었음이니라. 라고 하더라. 그러자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그의 낫을 땅에 대어 곡식을 거두시더라”(계14:15-16).


위 말씀은 계 14장 1절의 ‘첫 열매’가 휴거된 이후에, 대환란을 거쳐 나중에 익게 된 수확물을 거두는 것을 말합니다. 위 본문은 소위 ‘휴거’가 하나님께는 익은 곡식을 ‘수확’하는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참고로 ‘땅의 곡식’(15절)에 대해서 위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해설합니다.


“땅의 곡식은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이다(고전3:9). 주님께서 땅에 첫번째 오셨을 때 그분은 자신을 믿는 이들 안으로 뿌리셨다(마13:3-8, 24). 그 때 이후로 그분을 생명의 씨로 받아들인 모든 믿는 이는 땅 위에서 하나님의 농작물이 되었다. 처음 익은 이들은 14장 1절부터 5절까지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대환란 전에 하나님께 첫열매로 거두어질 것이다. 그후 (나머지) 대부분의 믿는 이들은 대환란 동안의 고난을 통해 익을 것이고, 대환란이 끝날 때에 거두어져 휴거될 것이다.” (회복역 성경 계14:5 각주1 참조).


위에서 보듯이 지방 교회측도 모든 믿는 이들이 결국에는 모두 휴거된다고 가르칩니다. 목사님의 심각한 오해와 달리, 성화가 덜 된 이들이 대환란을 통과하고도 이 땅에 그냥 버려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는 이는 모두 휴거 됩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2) 우리 모두는 장차 공중으로 휴거되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함.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후5:10).


(중략)… 위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모든 믿는 이들이 휴거될 것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대, 즉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1) 천년왕국 전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신 직후에, (2) 부활하여 휴거된 모든 믿는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 (3) 천년왕국에서의 보상이나 형벌을 위해 있을 것이다. 이 심판에서는 믿는 이들의 구원받은 후의 생활과 일을 심사하게 될 것이다(롬14:10, 각주1).”


위 내용을 볼 때 지방 교회측이 비록 환란 전과 환란 후로 나누긴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믿는 이들이 휴거될 것을 가르친다는 점이 자명해졌습니다. –“ (인용끝)


위 인용문 특히 밑줄친 부분은 지방 교회측은 ‘모든 믿는 이들이 휴거된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 거듭 거듭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목사님께서 서두와 같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신 것은 독해 능력의 문제이거나 잘못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억지로 비쳐질 수 있음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거듭강조하거니와 ‘대환란 전 혹은 대환란을 거친 후 모든 믿는 이들은 휴거된다’라는 것이 성경적인 휴거관이자 지방 교회측의 휴거관입니다. 이 점 오해가 없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휴거가 구원이고 구원이 휴거’라는 목사님의 아래와 같은 구원관은 비성경적이며, 대부분의 성경교사들이 말하는 구원론과도 크게 다릅니다. 아울러 이러한 목사님의 왜곡된 구원관이 지금과 같은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킨 근본 원인임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휴거에 조건이 붙은 것은 성경 본문 자체이지, 지방 교회측이 조건을 붙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전OOO)….목사님은 지방 교회측이 ‘휴거를 구원과 연관 지으니’ 이단이다 라는 식으로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라고 하셨는데...휴거가 구원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구원 따로 휴거 따로네요? 구원 받아도 기도하는 행위가 없으면 휴거 못 되는 것이잖습니까? 구원이 휴거이고 휴거가 구원이에요.


1) 위 주장과 달리,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보혈에 근거한 죄사함과 칭의(엡1:7) 그리고 영생이신 주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죽어있던 사람의 영이 거듭나는 것(요일5:12, 요1:12, 3:6)까지를 말합니다. 여기까지 경험한 이들을 성경은 ‘구원받았다’(엡2:8)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구원은 다시 취소되거나 지옥(불못)에 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원에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또 귀한 일입니다.


2)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미 거듭난 이들에게 ‘구원을 이루라’(빌2:12), 혹은 ‘생명 안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롬5:10) 혹은 “믿었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이라”(롬13:11)라는 식으로 현재 진행형 혹은 장차 다가올 구원의 방면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각각 ‘혼의 구원’(벧전1:9), ‘몸의 구속’(롬8:23, 빌3:21)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3) 정통 신학자들은 구원론에서 통상적으로 1) (선택, 예정,소명…) 죄사함, 2) 거듭남까지를 다루거나, 조금 더 확대하여 3) (중생) (칭의) (신비적 연합) 성화, 영화롭게 됨까지를 구원론에서 다루지 목사님처럼 ‘휴거’를 구원론에서 다루는 신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휴거는 구원의 많은 결과들 중 하나일 수는 있어도 휴거 자체가 곧 구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결과는 그 외에도 통상 성령의 열매로 거론되는 평강, 안식, 기쁨, 충성, 친절, 선함, 믿음, 오래참음, 절제 등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이 곧 구원과 동의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자 넌센스입니다. (참고자료: http://kcm.kr/dic_view.php?nid=38948, http://tripartiteman.chch.kr/salvation/index.html)


4) 만일 휴거가 곧 구원이라면 <교인이면 다 천국인가>에서도 마땅히 다뤘어야 할 것이나, 휴거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가 없었다는 것은 휴거가 곧 구원이 될 수 없다는 반증입니다(이 책에서 ‘휴거’라는 말은 지방 교회측을 부당하게 정죄하는데 잠시 언급되었을 뿐임).


5) 만일 휴거를 언급하면서 ‘스스로 주의하라…깨어서 항상 기도하라’는 요구가 함께 수반된 것 자체가  행위구원 이단이라면 전OOO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주 예수님 자신을 정죄하고 모독하고 계신 것입니다.


6) 만일 위와 같은 요구가 목사님의 억지 주장처럼 불신자를 겨냥한 것이라면, 그것은 불신자에게 구원(휴거)을 위해 행위를 요구한 것임으로 그런 가르침을 소유한 전OOO 목사님 본인이 행위구원 이단자라는 자백일 뿐입니다.


7) 구원=휴거라면, 이미 받은 ‘구원’(과거)과 장차 올 ‘휴거’(미래) 사이에 시간의 불일치가 생깁니다.


결론적으로, 전OOO 목사님의 ‘휴거=구원 혹은 구원=휴거론’은 주 예수님 자신도 행위구원론자로 만들고 본인도 행위 구원론자가 되는 비성경적이고 이질적인 구원론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자는 무조건 다 (대환란 전에) 휴거된다는 주장은 목사님 본인의 ‘가설’에 불과할 뿐 참 진리가 아닙니다.


셋째, 전OOO 목사님은 눅21:34-36, 계14:1-5 등 휴거관련 성경 본문의 이해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으십니다. 또한 위 책에서 인용된 벧전1:9, 고전15:2, 마7:21는 결코 불신자들이 받는 구원을 말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성경에서 구원하면 무조건 불신자가 받는 것이라는 왜곡된 구원론이 가져온 심각한 본문 왜곡일 뿐입니다.


아래에서 목사님께서 성경본문을 왜곡되게 이해하신 것들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목사님께서 눅21:34-36의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그러므로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 그래야 장차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서기에 합당하게 여겨질 것이라”라는 본문에서 언급된 ‘너희’는 제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백성”(37-38절)을 가리키며, 따라서 이들 중에는 ‘구원 받지 않은 사람들’도 섞여 있다((전OOO)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할 때 듣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1) 그러나 이런 주장은 불신자(“모든 백성”)가 구원(휴거)받기 위해 ‘스스로 주의하고’ ‘깨어서 항상 기도’하는 행위가 요구된다는 말임으로 그 자체가 행위 구원 이단사상입니다.


(2) 위 본문이 포함된 눅 21장 5-36절까지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에서 제자들을 향해 주신 답변인데 반해, 목사님이 말씀하신 37-38절에서의 모든 백성은 위 올리브 산이 아니라 ‘성전에 계신 주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너희’는 오직 주님의 제자들을 가리킬 뿐 ‘모든 백성’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이 점은 ‘너희’를 가리켜,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리니, 회당과 감옥에 넘겨주며 왕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고 가리라”(12절)라고 말씀 함으로써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차분히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 목사님께서는 계14:1-5의 시온산의 ‘첫열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전OOO)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마음은 있었으나 올바른 지식이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여 대혼란 속으로 들어간 자들입니다. ?? 오직 이스라엘 사람들로서 그들 중에서 성령께서 인치신 자들입니다. 세상 모든 보편적 환란중 휴거될 자들이 아닙니다.”


계시록 14:1-5의 ‘첫열매’가 “구원받지 못하여 대환란 속으로 들어간 자들”이라는 목사님의 설명은 엉뚱하고 본문과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본문 자체가 말하고 있는 첫열매의 특징은 이들이 (1) “어린양(예수님)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이고”(4절) (2) “하나님 보좌 앞에서 흠이 없는 자들”(5절)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이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유대인들이 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또한 이들은 대환란 전에 첫열매로 휴거된 자들이지 결코 대환란을 통과한 자들이 아닙니다. 대환란이 이들의 휴거 이후에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11절).


3) 목사님께서는 위 책 중 ‘지옥가는 교회에서 구원받은 교인으로’라는 소제목 아래서 벧전 1:9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을 인용하실 때, 이것을 불신자가 구원받는 본문으로 착각하고 계십니다(120-121쪽).


그러나 이 역시 9절의 ‘너희’는 그 앞의 문맥에서 이미 구원받은 사람을 말하며 결코 불신자를 겨냥한 말이 아닙니다. 즉 이들은 이미 ‘거듭난 자들’(3절)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는 자들’(5절)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런 오해는 목사님께서 구원 하면 무조건 ‘영생얻어 하나님의 자녀되는 것’만 생각하고, 그후 그 자녀가 장성한 분량으로 자람을 가리키는 구원의 방면들(벧전1:9, 2:2, 1:5, 갈4:19참조)을 무시하시기 때문입니다.


4) 목사님께서는 고전15:2(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도 역시 불신자의 구원을 말하는 본문으로 착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본문 역시 바로 앞 1절에서 바울이 ‘형제들아’라고 했음으로, 이미 구원받은 믿는 이들에게 한 말이지 목사님의 오해처럼 불신자가 구원받으라는 본문이 아닙니다. 불신자는 결코 바울의 형제일 수 없습니다.


참고로 위 본문이 말하는 구원은 시제가 ‘현재’ 수동태임으로, 앞으로 받을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언어 학자인 코니베어는 이것을 ‘구원의 길에 있는’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그 영으로 거듭난 후,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구원받는 과정 안에 있으며(롬5:10), 결국 성숙하여 완전히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롬8:29).


5) 목사님께서는 마7:21(나에게 주여 주여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되느니라)에서 아버지 뜻을 행하는 것이 ‘영생얻는 것’ 즉 죄인이 ‘거듭나는 것’을 말하고 있는 본문으로 착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위 본문은 불신자가 영생을 얻으라는 문맥이 아닙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리라”(20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반석 위에 지은 현명한 사람같아서..”(24절)라는 전후 문맥을 볼 때, 이 본문은 이미 거듭난 사람이 삶 속에서 살전 1:3이 말하는 ‘믿음의 행위’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율법의 행위’나 ‘선행’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아버지의 뜻은 영생을 얻는 것이라는 말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주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10:10하)라고 하신 것을 볼 때 ‘더욱 풍성히 얻는 것’ 즉 거듭남에 더하여 생명의 성숙을 통한 장성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이 말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께서 협의의 구원 개념에 사로잡혀서, 생명의 성숙을 말하는 신약 성경의 여러 구원 관련 구절들을 행위 구원으로 오해하는 것이 목사님의 “치명적인 문제점”입니다. 그러한 치우친 구원론으로 본다면 아래와 같은 말씀들이 다 행위구원으로 보이게 됩니다.


“(주 예수님)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그러므로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 그래야 장차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서기에 합당하게 여겨질 것이라”(눅21:34-36).


“(사도 바울)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전9:27)


결론적으로, 전OOO 목사님은 구원을 오직 죄사함과 거듭남에 국한시키고, 휴거를 천국에 직행하는 과정으로 크게 오해하심으로써 성경적인 구원론과 휴거론과는 거리가 먼 ‘다른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저서인 <교인이면 다 천국인가>에서 구원을 ‘불신 지옥, 믿음 천국’으로 너무 단순화하여 구원관련 본문을 왜곡시키고, 주 예수님과 사도 바울 그리고 지방 교회측이 바르게 증거하는 믿음의 행함(살전1:3)까지도 행위구원으로 오해하고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하는 죄를 범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전OOO 목사님께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빛 가운데로 이끄사, 이러한 참된 실상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울러 내면의 양심의 음성을 따라 부당한 이단정죄를 스스로 철회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낙원과 천국 http://www.localchurch.kr/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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