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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들에 대한 이인규님의 거짓말(4)



지방교회의 정체, 이단적인 인간론-
지방교회의 영과 혼과 육에 대한 잘못된 주장(이인규님의 원글 제목)


이인규님은 정식 신학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신학책을 읽어서 나름대로 본인이 신학지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본인은 당연히 정통신학을 신봉한다고 스스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장로교단에서 감리교단으로, 다시 감리교단에서 장로교단으로 넘나들면서 ‘신학적 정체성이 모호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신론은 합동총신 교단에 의해서 <삼신론 이단>으로 공식 규정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신학적 정체성이 모호하며, 삼신론을 신봉하는 한 명의 평신도일 뿐인 이인규님의 말은 그 정도 가치만 있습니다.


이제 이하에서도 지극히 성경적인 지방 교회측의 인간론을 임의로 이단이라고 말하는 이인규님의 무리한 주장의 문제점을 하나씩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인규님) 정통교단에서도 어느 교단은 이분법을, 어느 교단은 삼분법을 가르칩니다. 물론 필자는 어느 교단에서 가르치는 이분법이 옳은가 혹은 삼분법이 옳은가를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필자가 비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살아있는 인간의 영과 혼과 육을 각각 분리된 장소적, 공간적인 개념으로 보는 헬라 철학적인 주장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한국교회에 소개된 것은 워치만 니로부터 우리에게 전파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개념으로부터 숱한 이단들(지방교회, 구원파, 베뢰아 등등)이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정통교회에서도 인간의 영과 혼과 육을 살아서 분리되는 장소적, 공간적인 개념으로 간주하여 아래와 같은 이원론을 주장하는 목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또한 영성운동, 영성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영과 육이 분리될 수 있다는 이단들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간을 이분설로 보든 삼분설로 보든 그 자체가 이단 사유는 아닙니다. 교리상 다양성이 인정되는 진리 항목이며, 위에서 이인규님이 고백하듯이 실제로도 이에 대한 관점은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주제로 함부로 이단시 하는 이인규님의 사고방식이 문제일 뿐입니다. 이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있게 알기를 원하는 독자분들은http://www.localchurch.kr/361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인규님) “어떤 사람들은 위트니스 리는 이단이지만, 워치만 니는 이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방교회 인간론은 워치만 니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양태론인 삼일 하나님이라는 용어 자체도 워치만 니로부터 나온 것이며, 그들의 배타적인 교회론도 워치만 니로부터 나왔으며, 특히 단체구원론도 워치만 니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의 책에서는 워치만 니가 현재의 지방교회의 교리에 대해서 이미 "잘 보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관계를 목격한 사람들은 그들이 "부자관계와 같았다"고 진술하며,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워치만 니는 배타적 형제교회의 존 다비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존 다비는 극단적 세대주의와 양태론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의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주장과 독단적인 성경해석 때문에 형제교회의 지도자들과 많은 분쟁이 일어나서, 많은 지도자들이 형제교회를 떠났다고 말합니다.”


위 내용은 증거능력은 없는 ‘전문 증거’(전해 들은 말) 혹은 사실을 왜곡시킨 거짓말 뿐입니다. 특히 존 넬슨 다아비가 ‘양태론’을 믿었다는 말은 명백한 근거도 밝히지 못하는 무책임한 말이요 형제교회를 모독하는 말입니다. 지방 교회 관련 양태론 주장도 ‘하나님(2격)이 육신을 입으셨다’는 말을 1격 곧 ‘성부’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다는 말로 오해한데서 나온 사실왜곡일 뿐입니다. 이런 배경에는 오직 성부만 ‘하나님’이시라는 이인규님의 잘못된 신론이 있습니다.


이인규님이 인용 소개한 위트니스 리의 1차 자료 인용문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


- 죄는 사단의 체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이 두 체현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사단의 체현인 죄는 우리 육신 안에 있다. (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 하나님, 73쪽)


- 우리는 우리 존재에 세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은 사단이 그의 거처를 당신의 몸, 즉 당신의 육체 속에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는가? (위트니스 리, 왕국, 218쪽)


지극히 성경적인 말입니다(골2:9, 1:27, 롬5:12, 7:17, 20 참조). 참고로 1) 성경은 단수의 ‘죄’(롬5:12)와 복수의 ‘죄들’(벧전2:24)을 구분하며, 전자는 우리의 속 곧 육체 안에 거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죄와 사탄은 일심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분인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과 연합되셨습니다(고전6:17). 이인규님은 교리적으로만 성경을 알고 이런 영적 실재에 대한 계시와 체험이 결여되다 보니 결과적으로 신약에서의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의 가르침의 실재는 배척합니다.


- 사람의 세 부분, 니 형제님은 그의 그리스도인 생활 초기부터 사람에게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살전 5:23). 그는 혼은 사람의 인격이고 몸은 물질적인 세계를 접하기 위한 사람의 바깥 부분이며 영은 영적 세계를 접하기 위한 사람의 가장 내면적인 부분임을 보았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 안에서 그분을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


인용 출처가 없습니다.


(이인규님) 정통신학에서는 인간은 살아 있을 때에 전인적이며 총체적인 존재로 봅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는 것은 곧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워치만 니로부터 시작된 인간론은 사람을 살아서 영과 혼과 육으로 분리시킵니다. 문제는 인간의 영에는 양태론적인 하나님이 거하고, 인간의 육에는 사탄이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혼에는 인격이 거하는데, 그 인간의 혼을 빼앗기 위하여 하나님과 사단이 싸운다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은 전인적인 존재이지만 그 내면의 작용은 구분이 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은 곧 감정이고, 감정은 의지다 라고 누가 말한다면 그 사람은 인간 이해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참된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은 자신의 혼(soul, 생각, 감정, 의지)보다 더 깊은 곳인 자신의 영 안에 내주하시는 한 분이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을 거스릴 때 영적으로 사망을 느낍니다(롬8:6). 주님은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혼을 다스려 그 혼의 지배 아래 있는 몸을 통해 그분의 뜻을 우리가 수행하시길 바라는데(빌2:13), 이것을 거부함으로 영적 사망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탄식하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엡4:30). 이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이원론이 아니라, 우리 영 안에 계신 하나님, 혼 안의 자아, 몸 안의 죄로 체현된 사탄 간의 작용 반작용인 것입니다. 마치 에덴동산의 뱀과 하와와 하나님의 구도와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사람들은 다 실제 삶 속에서 이것을 경험합니다.


- 사단은 우리의 물질적인 몸 안에 인격화된 죄로 거하고 있다. 오직 살아있는 인격만이 어느 곳에 거할 수가 있다. 우리의 물질적인 몸 안에 있는 그의 근거지로부터 사단은 우리 혼을 차지하고 우리 혼을 그의 절대적인 통제 아래 두고 싶어한다. (왕국, 216쪽)


- 사단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우리 몸으로부터 우리 혼에 대해 통제를 행사하고 있다. 이같이 사단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역사한다. 주님은 반대 방향으로 즉 안에서부터 밖으로 역사하신다. 어느날 주님은 우리 존재의 중심이요 축인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셔서 그것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 (위트니스 리, 왕국, 217쪽)


매우 성경적인 언급입니다. 1) 로마서7:17, 19-20, 23 등이 전자를 잘 말해주고 있고, 2)골1:27, 엡3:17은 후자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인규님) ”지방교회의 인간론을 충분히 이해하였다면, 지방교회의 양태론과 기독론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이제 그들이 말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지방교회 주장과 베뢰아, 구원파의 주장을 비교하여 보십시오. 그들은 지방교회와 동일한 양태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방 교회측은 베뢰아 혹은 구원파와 무관합니다.


(베뢰아)


-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기에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지만 육체는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 (김기동, 마귀론 하 154쪽) - 귀신은 사람의 영혼 속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육체 안에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 (김기동 마귀론 하 63쪽)


(구원파의 주장)


- 영혼의 구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영혼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죄성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짓는 이유: 사단은 공중권세를 가진 자이며 인간육체를 통해 역사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범하는 죄의 유형 첫째는 부지 중에 짓는 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신에 아직 죄성 가운데 있기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올라오는 죄입니다. (생명의말씀 선교회 홈페이지)


그것이 베뢰아이건 혹은 구원파이건 ‘인간의 육체 안에 죄가 거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 자체(롬7:17-18)이므로 만일 누구든 이것을 부정한다면, 그가 바로 비성경적인 인간론 소유자라는 말이 됩니다.


(이인규님) ”(1) 영과 혼은 서로 다른 구성요소인가?


과연 성경에서는 영과 혼을 서로 다른 인간의 구성요소로서 구별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삼분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 성경구절을 제시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5:23)


그러나 이것만으로 삼분법을 증거하기는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은 혼과 영의 구별이 없이 기록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또 히4:12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을 동일하게 적용시키자면, 인간의 구성은 ‘혼과 영과 영과 관절과 골수’로 되어있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은 인간의 구성요소 중에서 물질과 비물질에 대해서 ‘영과 육체’로 구분하기도 하고 ‘혼과 육체’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soul, 프쉬게)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10:28)라고 하셨다. 즉 혼(soul)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사후에 존재하는 것을 말하며, 즉 몸은 죽지만, 죽지 않고 남는 사람의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죽지 않는 비육체적인 부분을 “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분법이 옳은가 삼분법이 옳은가를 따져보자는 의미가 아니라, 성경은 이분법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삼분법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영과 혼은 항상 구별되어진다고 말할 수 없으며, 대부분 구별이 없거나 호환되어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육신은 멸하고 영(spirit)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고전5:5)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육체와 구별되는 비물질적인 존재를 ‘영’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야고보서 2장26절에는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본문의 ‘영혼’은 한글성경에서는 ‘영혼’이라고 번역하였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 soul(영혼)이 아니라, spirit(영)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시체는 영이 없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적으로는 죽은 사람에 대해서 “영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혼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영과 혼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죽지 않은 비육제적인 것으로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또 이미 죽은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서 히12:23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spirit)”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계20:4에서는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soul)”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영과 혼에 대한 구별이 없습니다.


다음 성경구절에서도 그렇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soul)들이 제단 아래 있어” (계6:9)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spirit)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12:23-24)


또한 죽음에 있어서도 혼(soul)이 떠난다는 표현(창35:18, 왕상17:21, 눅12;20)과 영(spirit)이 떠난다는 표현(시31:5, 전12:7, 눅23:46, 요19:30)등 사실상 명확한 구분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 영과 혼이 각각 따로 떠난다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영(spirit)은 살과 뼈가 없으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24:39) 물론 그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 자신의 부활체가 신체적인 것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지만, 만일 사후 존재가 실제로 없다면, 예수님이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 말씀하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12:27에서 예수께서는 "지금 내 마음(soul, 프쉬게, 혼)이 민망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다음 장, 요13:21에서 예수님은 "심령(spirit, 프뉴마, 영)에 민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마리아는 "내 영혼(soul, 프쉬게, 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spirt, 프뉴마, 영)이 내 구주를 기뻐한다고 눅1:46-47에서 말하였습니다. 또한 마음, 심령등은 모두 전인적인 개념을 갖는 것으로 해석하여야만 합니다.


마음이라는 단어도 원문으로 보면 heart, mind, spirit, soul 등 다양한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여 마음이 혼이라고 하거나 마음이 영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이인규님은 위에서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만, 결국은 사람의 영과 혼은 같은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 인용시에도 자신의 이런 주장에 유리한 것만을 골라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늘 양면성을 가짐으로 또 다른 방면을 말하는 성경구절들 역시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육신에 둔 생각은 사망이요, 영에 둔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롬8:6)는 말씀은 영과 혼을 동일시하는 이인규님 식의 이분법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은 <사람의 육체>와 <사람의 영>이라는 분명하게 다른 둘 그 어느 쪽으로도 연합될 수 있는 제3의 것으로 <사람의 생각>(mind)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생각(혼의 주도적인 부분인)이 영과 동의어라면 그 사람은 항상 영적인 생명과 평안을 유지해야 하나 성경 혹은 정상적인 믿는 이들의 체험은 생각이 육체와 영을 왔다 갔다 합니다. 이것은 체험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좀더 자세한 것은 http://chch.kr/kin/20785.html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인규님) ”(2) 사람은 살아서 영혼(영 혹은 혼)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으며, 죽었을 때에 영혼과 육체가 분리 되어집니다.


이단들뿐 아니라 일부 정통교회조차도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켜 육체에만 죄가 있고 육체에만 사단이 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헬라적인 이원론적 생각으로 육체를 죄악시하고 육체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것으로서 마치 중세 때의 일부 수도원 시대를 연상케 합니다. 그들은 육체를 죄악시하여 스스로 고통과 금욕과 학대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1절에서는 “거룩함을 온전하게 이루어 육과 영(spirit)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뿐 아니라 영도 더러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에는 하나님이 거한다”라든지 혹은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지방교회와 구원파 교회들에게 치명적인 오류가 될 것입니다.


다음 성경은 성령이 영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주셨다고 말합니다.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헬: 칼디아, heart)에 주셨느니라 육에는 죄와 사단이 거하고, 영에는 하나님이 거하므로 영은 죄가 없다는 지방교회와 베뢰아, 구원파등의 교회는 위 성경구절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요?”


이인규님은 성경 전체에 대한 조망이 부족하다 보니 자신이 알고 있는 것 혹은 자신에게 유리한 성경구절만 제시하는 경향이 엿보입니다. 1) 우선 로마서 8장 6절"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는 말씀은 육체와 영을 구분합니다(분리가 아니라). 또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생각’ 은 육체 혹은 영과 동의어가 아니며 독자적인 것입니다. 2)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라는 말에서 ‘영’은 거듭난 사람의 영이 아니라, ‘우상들과 같이 영적인 세계의 것들로 더러워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3) 성령은 우리의 거듭난 영에도 거하시고, 마음에도 거하시는 것이지 마음에만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6은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했고, 고전 6:17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영’이라고 말합니다. 이인규님은 자신의 짧은 성경지식을 지나치게 과신하다보니, 어느 한 쪽의 성경(고후1:22)으로 다른 쪽의 성경적 사실(요3:6, 고전6:17)을 부인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이인규님) ”또 죄에 있어서도 혼이 죄를 짓는다는 구절과(벧전1;22, 계18:14), 영에 죄가 있다는 구절(시78:8, 잠16:18, 전7:8, 잠16:2)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요? 인간은 전인적으로 죄인입니다.


인간은 육체나 영적으로 모두 죄를 지으며 더러워진 것입니다. 게다가 ‘영의 구원’(혹은 혼의 구원)과 ‘육의 구원’의 두가지, 혹은 세가지의 구원으로 분류하는 구원론은 명백하게 잘못된 주장입니다. 물론 성욕, 식욕같은 욕망을 육체적인 욕망이라고 표현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은 고깃덩어리 육체만의 욕망이 아니며, 결국은 영혼과 육체를 포함하는 전인적인 욕망입니다. 마찬가지로 육체는 죄악되고 더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 본문은 영혼과 육체가 따로 따로 주를 찬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표현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물론 전인적인 죄인입니다. 또한 사람의 영이 죄를 짓지않는다는 말은 이런 타락한 죄인이 아니라 거듭난 사람의 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요일3:9). 이 둘을 혼동하면 곤란합니다. 2) 이인규님이 ‘영에 죄가 있다’는 증거로 제시한 구약의 말씀들은 그런 주장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입니다. 예를 들어 잠16:2는 “사람의 모든 행위가 그 눈에는 깨끗하나 주께서는 그 영들을 달아보시느니라”이고, 18절은 “교만은 멸망에 앞서 있으며 거만한 영은 몰락에 앞서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전7:8은 “…영 안에서 인내하는 사람이 영 안에서 교만한 자보다 낫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3) 성경은 분명하게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의 구원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요3:6은 영의 구원, 벧전1:9는 혼의 구원, 롬8:23은 몸의 구속(구원)을 말합니다(원문 참조). 자신이 모르면 성경에 없다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면 곤란합니다.


(이인규님)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


사람을 육체와 영(영혼)으로 구별하여 죄는 육체에만 있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성경은 그렇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영적 예배는 우리의 몸을 드리는 헌신이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육체에 죄가 있으며 사단이 거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 육체라는 개념은 고깃덩어리 부분에만 죄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전인적인 사람 자체를 뜻하며, 성경은 육체도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2)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니"(시63: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죄와 사탄이 육체에 거한다고 주장하는 지방교회, 베뢰아, 구원파들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기도 한다는 위의 성경구절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반박하겠습니까?”


성경 그리고 사람의 구성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선 우리의 육체 안에 죄가 거한다고 말하는 근거는 롬7:17-18입니다. 이 때의 육체는 사람의 ‘타락한 몸’만을 제한적으로 지칭합니다. 그러나 갈5:19의 ‘육체의 일들’이라는 문맥은 타락한 사람의 존재 전체를 말합니다. 이 둘은 ‘육체’라는 용어의 의미가 문맥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구속받은 방면에서 볼 때의 우리의 온 존재는 그분 앞에 거룩하며 우리의 몸을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즉 성경에는 우리의 몸이 ‘의의 병기’ 혹은 ‘불의의 병기’로 드려질 수 있는 가능성을 다 말하고 있습니다(롬6:13).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이해할 때는 마치 변호사가 변론하듯이 섬세하게 살펴야 하며, 어느 한 쪽만 절대시해서 그것을 일반화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인규님이 지금 그런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영이 혼을 지배하고 우리의 몸이 혼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 예수의 생명은 우리의 죽을 육체를 통해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혼이 거듭난 영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살면서 육체의 정욕에 빠지거나 육체 안에 있는 죄에게 지게 되면 그 육체는 사탄의 손아귀 아래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존재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전쟁의 실상입니다. 베드로의 ‘성공’(마16:16-17)과 ‘실패’(22-23절)는 베드로만 아니라 거듭난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이인규님) (3)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와 ‘영’은 인간의 육신적 부분과 영적 부분을 대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을 대조시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대조시키면서,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영을 좇는 자’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그 ‘영’은 개인적인 사람의 영과 육체를 분리시켜 구별하자는 ‘개인의 영적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을 좇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성경에서 ‘육체’라는 표현은 물론 정신적인 영혼과 반대되고 대조되는 부분을 가르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총체적인 인간’을 말함으로서 ‘성령 하나님’과 대조되는 경우로 사용됩니다. 특히 “육신에 죄가 거한다”는 표현은 그 육신 자체가 곧 성령을 거스리는 전인적인 인간의 욕망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 성경본문과 같습니다.


“육체(인간)의 소욕은 성령(하나님)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즉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영이 구별되고 대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성령이 구별되고 대조되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어 ‘루아흐’ 혹은 헬라어 ‘프뉴마’로 표현되는 ‘영’이란 때로는 인간의 영, 즉 인간의 내적인 생명력으로서 신적실재와 접촉하는 직접성과 관련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성령을 가르킵니다. 인간의 영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하였듯이, 바울이 말한 ‘육신을 좇는 소욕’의 개념은 사람을 육과 영으로 분리하고 구별하여 영을 좇는 개념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보호를 좇는 삶’과 반대되는 개념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7-8)


본문에서 말하는 ‘육신의 생각’은 물질적인 고깃덩어리만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을 좇지 않는 총체적인 인간의 생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위 본문에서 ‘육신에 있는 자’라는 뜻은 하나님의 영이 없는 경우를 가르킵니다. 즉 육신에 있는 자들(거듭나지 않는 자)과 육신에 있지 않은 자들(거듭난 자들)을 구분하여주는 기준은 ‘성령의 내주’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바울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다시 말하여 ‘육신에 있다’는 말의 뜻은 ‘거듭나지 않았다’는 상징적이며 상태적인 개념을 말하는 것이며, ‘영에 있다’는 말은 ‘거듭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개념이 된다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6-7)


바울이 말한 ‘육체의 소욕’이란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외면하는 인격적인 인간 자체의 소욕을 말하는 것이 명백합니다.


위 성경본문 요한복음3:6-7은 “성령으로 난 것이 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만 이인규님의 (3) 제목으로 단,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와 ‘영’은 인간의 육신적 부분과 영적 부분을 대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을 대조시키는 것입니다>를 주장하는 말입니다. 이인규님은 동일한 오류를 반복해서 범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문맥을 무시한 채, 너무 거칠게 특정 구절의 말씀을 일반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1) 로마서 8장은 신자 불신자의 대비가 아니라, 둘 다 거듭났으되, 생각을 육신에 둔자와 생각을 영에 둔자의 대비를 말하는 것입니다(롬8:4,6,13). 2) 또한 갈라디아서 5장에서의 육체와 성령의 대비를 그 누구도 육체와 사람의 영과의 대비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이인규님)또 영이 거듭난다는 것은 이전의 영이 죽거나 혹은 없었는데,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 영을 강퍅하게 하셨다”(신2:30)는 것처럼, 불신자에게는 영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듭난 사람에게도 그 사람의 영이 존재하며, 성령은 그 사람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즉 우리가 불신자였을 때에 그 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영이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음을 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였을 때에, 그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적인 죽음도 함께 포함되어졌던 것입니다. 바울이 허물과 죄로 죽었으나(엡2:1)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되었다(롬6:11)고 말하였을 때에, 영과 육을 구별하고 분리하자는 것은 아니며, 전인적인 나의 시간적인 변화를 뜻합니다. 우리의 영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고후5:17)


성경이 말하고 있는 ‘육에 속한 사람(고전2:14)은 문자적으로는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혼에 속한 사람’(푸쉬기코스)을 뜻합니다.”


이인규님의 말 중 위 검게 칠한 부분은 이 분이 참되게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인지를 의심케 하는 언급들 입니다. 사람의 영은 불신자도 있지만, ‘성령’ 혹은 ‘그 영’(the Spirit)은 불신자 안에는 안 계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는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즉 불신자는 아무리 후대로 길게 자녀를 낳아도 육체일 뿐입니다. 오직 영(그 영, 하나님의 영)으로 영(사람의 영)이 나야 거듭난 그리스도인 입니다.


이인규님은 성경을 장황하게 인용 소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 참되게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본인이 인용한 성경본문들 중 어떤 말씀은 본인이 지금 주장하고 있는 것들을 반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지식적으로 교리적으로 알더라도 그 말씀에 대한 참된 체험이 없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인규님) ”개혁주의 신학자인 스트롱박사는 인간을 건물로 비유하여 ‘영’이라는 창문은 하늘로 향한 것이고, ‘혼’은 지상을 향하여 달린 창문이라고 보았는데, 이러한 비유는 적절한 설명으로 보이는데, 영혼은 창문으로 비유하였을 때, 그것이 어떤 개념으로 사용되었는가에 따라 의미적인 관점으로서 구별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영과 혼은 실제적으로는 분리될 수 없지만, 의미상 개념적으로 구별될 수 있으며, 영은 인간성의 특수한 방면으로서 사람과 하나님을 결합케 하는 방편으로, 혼은 인간에 내재한 속사람의 세속적 행동과 관습에 제한되어 있는 것을 뜻한다고 보면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의 모든 부분은 실제로 분리하면 몸 전체에 고장이 나고 만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우리의 몸 안의 장기들이 구별은 되지만 분리가 안 되는 것처럼 사람의 영과 혼도 그런 것입니다. 위 말은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다는 위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뒤집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도 미처 소화되지 못한 주제를 가지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그리고 거창하게 “지방교회의 정체, 이단적인 인간론” 운운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입니다.


(이인규님) ”물론 인간은 죽어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됩니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서 썩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곁으로 가게 되며, 썩지 않을 신령한 몸의 부활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으며, 성경에서 육체라는 표현은 대부분 영과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라 총체적인 인간을 말하거나, 단지 개념상으로 영과 대비시키는 육체로서 그 의미를 표현합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살아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경우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2장26절과 같이, 영혼없는 몸은 죽은 것입니다.


최근에는 영성개발원이니 영성운동이니 하는 곳에서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전혀 비성경적인 주장이며, 헬라철학적인 이원론 사상일 뿐입니다. 특히 입신이라는 비성경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죽지 않고 천국과 지옥을 갈 수 있다는 신사도운동은 비기독교적인 주장임에 분명합니다.


더욱이 지방교회, 베뢰아, 구원파같은 곳에서는 “죄가 육체에 거한다, 사탄이 육체에 거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잘 생각하여 보아야만 합니다.


바울은 ‘육체에 죄가 거한다’라고 말하였지만, 그가 말하는 ‘육체’는 영혼을 제외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말하며, 성령과 대조되는 의미에서 육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죄가 내 안에 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죄는 그 자리를 육체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며, 전인적이며 총체적인 자아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과연 영혼(혹은 영)이 배제된 육체라는 부분이 죄를 지을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 <육체, 생각(혼), 영>을 구별하여 말하는 대표적인 곳이 로마서 8장 6절입니다. 이 구절은 이분설로는 결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2) 롬7:17은 “이제 그것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라고 말하고, 18절은 “ 내 안에, 곧 내 육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함으로 ‘내 속’이 곧 ‘내 육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죄의 법’이 거하는 곳이고, 이와 달리 우리의 혼 안에는 ‘생각의 법’ 있고(23절),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는 ‘생명의 영의 법’이 거합니다(롬8:1, 요3:6).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런 상태에서 우리의 혼 안의 생각의 법이 우리의 영 안의 생명의 영의 법아래 있게 되면(롬8:6이 말하는 것처럼 영에 둔 생각이 되면) 이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그리스도를 삽니다(갈 2:20). 그러나 생각의 법이 생명의 영의 법의 다스림을 거부하면 즉시 죄의 법에게 져서 그 몸을 이끌어 자신도 원치 않는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롬7:23).


(이인규님) “죄는 인격적인 내가 나의 마음으로 짓는 것입니다. 마음은 영을 대표하는 기관이며 마음 안에 영이 있으며, 또한 육체가 있으므로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겔11:9)


성경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인간은 영(영혼)이 배제된 육체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죄를 짓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히: 레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17:9) “마음(헬: 칼디아)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15:19)


반면에 마음은 선을 낼 수도 있고 악을 낼 수도 있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헬: 칼디아)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


이미 위에서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마음은 혼과 거의 동의어(마음=혼+양심)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영의 인도 아래 있으면 선을 내고, 육체의 소욕에 지게 되면 악을 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마음이 그리스도의 거처가 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엡3:17). 그러므로 반복해서 지적하거니와 어느 한 방향의 말씀만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인규님이 반복해서 범하고 있는 실수입니다.


(이인규님) ”즉 성경에서 ‘육체의’ 라는 말은 ‘죄많은’ 이라는 단어와 동일시 되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육신이 그 자체가 연약함으로 유혹의 목표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헬라철학적인 이원론자들과 같이 죄가 육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그 영향과 활동이 지정의에 미쳐 전인적으로 죄가 파급되어지는 것입니다.


헬라철학적인 이원론자들은 이 세상의 근원을 영(선)과 물질(악)의 두가지로 구별하려고 하며, 모든 창조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양분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헬라철학은 초대교회 영지주의 이단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지를 주의하여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헬라 철학은 부수적이며 어떤 때는 불필요합니다.


(이인규님) ”하나님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할 때에는 우리의 육체만이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인적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육은 그 자체만으로 악하거나 악의 원천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능력에 있어서 약하고 힘없는 존재가 됩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육체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대신에 혈육(Flesh)을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17:5, 7)”


이인규님은 지금 불신자와 신자의 상태를 동일선상에 놓고 육체를 말함으로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아직 육체가 변화되지 않았음으로 당연히 육체는 죄인이요 불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과 연합된 사람의 영은 ‘의’ 그 자체입니다. 만일 이것을 부인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무효로 만드는 자이며, 인간론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합된 영(고전6:17)은 그 자체가 이미 새 예루살렘이 완성된 것입니다(히12:22).거기엔 죄와 사망과 밤이 없이 하나님의 영광만 충만합니다.


결론적으로, 삼분론 혹은 이분론은 이견이며 이단의 대상이 아닙니다. 또한 이인규님의 인간론은 사람의 영과 그 영의 구분도 모호하고, 불신자와 신자를 동일선상에 놓는 이를테면 ‘뒤죽박죽’ 인간론입니다. 따라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이전에 성경에 근거한 제대로 된 인간론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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