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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구원관련 책을 펴낸 어떤 목사님과
구원과 휴거 개념을 놓고 주고 받은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분은 계14장의 십사만 사천 명도 유대인들 즉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고, 구원과 휴거에 관해 상이한 견해를 가지고 계셔서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화가 반복해서 오고 갈수록 전OOO 목사님의 성경 진리 인식의 정도와 상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 삼위일체, 구원, 종말(낙원, 천국, 휴거), 교회, 율법, 특정 성경본문 이해에 있어서, 주 예수님이나 신약의 사도들이 가르쳤던 것과는 너무 다른 가르침을 붙들고 계십니다(아래 ‘값싼 구원론’ 등 참조).


한 예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을 향해 “나의 어린 자녀들아, 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내가 다시 산고를 치느노라”(갈4:19)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눈에는 이미 구원받았기에 가만히 놔두어도 자동으로 휴거될 대상을 향해, ‘그들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되게 하려고 다시 산고를 치른다’는 바울이 불쌍해 보이고 행위구원을 가르치는 이단처럼 보이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바울에게 문제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을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목사님은 지난 글의 일부 항목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재반론을 하셨지만, 그마저도 본인의 심각한 문제점만 더욱 노출시키고 계십니다. 매우 죄송하지만, 그야말로 총체적 부실이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가 난감할 정도입니다. 이하에서 저도 목사님처럼 논증없이 간략 간략하게 거론된 쟁점들만 재차 거론하는 방식으로 해명글을 써보겠습니다.


1. 지방 교회측이 ‘모든 거듭난 믿는 이들이 다 휴거된다’고 가르치고 있음에도, 그렇게 안 가르친다고 목사님께서 주장하신 것은 명백한 거짓말임을 지적했습니다. 거짓말을 반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휴거는 ‘익은 곡식’을 추수하는 것임을 성경 본문 자체가 말씀(계14:4, 15-16참조)하고 있음에도, 얼마나 익어야 (성화되어야) 휴거되느냐고 따지는 것은 그렇게 말씀한 분께 직접 하실 일입니다.


3. 계14:1-5의 첫열매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 맞다고 거듭 우기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갔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입에 거짓말이 없었나요”? 전혀 엉뚱하고 잘못된 해석입니다.


4. 지방 교회측은 위 첫열매(14만 4천)를 목사님 주장처럼 “환란 중 휴거 받은 자”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에 ‘환란 전에 휴거된 자들’이라고 여러번 밝혔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지금처럼 무성의하게 글을 쓰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5. 눅21:34-36에 대해서도 감람산이든 성전이든 이들이 불신자가 포함된 ‘일반대상’을 겨냥한 말씀인지 아니면 이미 ‘믿음을 가진 제자들’을 겨냥한 것인지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들 즉 ‘너희’를 향해  하신 말씀 중에, “또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리니…”(17절)를 포함하여 믿는 이들을 염두에 둔 내용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목사님 주장대로라면, ‘일반 대상’(불신자)도 ‘주 예수님 이름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미움을 당한다’는 말인데 이것은 비상식적인 억지 주장일 뿐입니다.


6. 바울을 비롯한 서신서 기자들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거듭난 후에 생명이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3:6, 벧전 2:2). 이것을 “믿고도 열심히 살아야 하니 불쌍한 사람입니다”라고 조롱하듯 말하는 것은  ‘생명’ 그리고 주관적인 십자가와 부활의 체험의 결과인 ‘생명의 성장’에 대한 목사님의 진리 인식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7. 목사님은 ‘영생’을 말은 하지만 그 영생을 얻은 초기 상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젖이나 먹을 “그리스도 안의 어린 아기들”(고전3:1-2) 상태임을 모르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을 어린 상태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자로 세우려고(골1:28-29), ‘하라’(do), 혹은 ‘하지 말라’(don’t do)는 권면을 하며 힘껏 수고한 사도 바울까지 ‘불쌍하다고’ 조롱할까 두렵습니다. 목사님은 생명이 자란다(골2:19)는 말의 의미를 알고 계십니까? 그것을 위해 어떤 실행을 하고 계시는지요?


8. 앞서 제시한대로 ‘씨 뿌린 것이 익으면 수확(휴거)한다’고 말한 것은 성경 자체입니다(계14:4, 15-16). 이런 말씀에 대해 “그런 망발을 내뱉다니 매우 안타깝고 분노까지 치밀어 오릅니다”라고 하시니 그 분노의 근원이 과연 무엇일런지요?


9. 씨뿌림(영생 얻음) 이후 자라고 성숙해야 추수한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성경이 말씀하는 바 입니다(막4:26-29, 하나님 나라는 이와 같으니 ...땅 속에 씨를 뿌려…처음에는 싹이 나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그후에는 이삭에 낟알이 가득하게 되느니라. 그러나 열매가 익으면 그가 즉시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휴거)때가 왔음이라). 그럼에도 이런 말에 대해 “어리석고 단순하게 성경을 보는 것은 너무 유치한 해석들, 대화조차 하고 싶지 않을 지경입니다”라고 하신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씨만 뿌렸으면 무조건 다 휴거되고 아무 문제없다는 식의 ‘생명의 성숙과정’을 무시하는 구원론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파 구원과 유사합니다.


10. 말씀하신 갈라디아서 1:6의 ‘다른 복음’은 할례 등 ‘의식적인 율법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유대인 거짓 형제들(행15:1)을 겨냥한 말이었지, 생명의 성숙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는 주 안의 형제들을 정죄하라고 쓰인 말이 아닙니다.


11. 갈라디아서는 ‘성령 받음’을 이중적으로 말합니다. 즉 갈3:2의 성령 받음은 과거 시재인데, 갈3:5의 성령 받음은 현재 계속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전자만 인정하고 후자를 행위구원으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이며 그 자체가 사도 바울이 전한 것과는 ‘다른 복음’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장성한 아들이 되는 단계 즉 아들의 명분을 얻는 것까지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갈4:5, 엡1:4-5). 결코 영생 얻어 거듭나는 것 자체가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12. 성경적인 구원론은 목사님이 현재 주장하는 구원과 많이 다릅니다. 쉽게 말해 목사님이 전하는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어린아기’(고전3:1) 만드는 복음이라면, 성경은 이 어린 아기가 젖과 말씀을 먹고 자라서 장성한 사내아이가 되는 것까지의 복음입니다(엡4:13, 골1:28). 따라서 바울은 이미 거듭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롬1:15, 그러므로 나로서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그럼에도 이것을 행위구원이라고 정죄하고 불쌍하다고 조롱하고, 어리석고 단순하게 성경을 본다고 나무라시는 것은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반복하거니와, 아래 내용이 참된 복음이요 구원관입니다.


“1) 위 주장과 달리,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보혈에 근거한 죄사함과 칭의(엡1:7) 그리고 영생이신 주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죽어있던 사람의 영이 거듭나는 것(요일5:12, 요1:12, 3:6)까지를 말합니다. 여기까지 경험한 이들을 성경은 ‘구원받았다’(엡2:8)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구원은 다시 취소되거나 지옥(불못)에 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원에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또 귀한 일입니다.


2)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미 거듭난 이들에게 ‘구원을 이루라’(빌2:12), 혹은 ‘생명 안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롬5:10) 혹은 “믿었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이라”(롬13:11)라는 식으로 현재 진행형 혹은 장차 다가올 구원의 방면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각각 ‘혼의 구원’(벧전1:9), ‘몸의 구속’(롬8:23, 빌3:21)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13. 거듭 말씀드리지만,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다른 복음’은 할례, 안식일 준수, 음식에 관한 규례를 지켜야 구원받는다 라고 주장하는 것을 가리키지, 지금처럼 ‘은혜 안에 계속 머물므로 생명이 자라고 성숙에 이르러야 한다’라는 말을 정죄하라고 쓰인 말이 아닙니다.


14. ‘율법의 행위’(롬3:28)와 ‘믿음의 행위’(the work of the faith)(살전1:3)는 전혀 다른 두 가지입니다. 성경은 전자를 배척하고 후자를 권장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착각합니다. 지방 교회측 누구도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계속 이들을 ‘율법의 행위’를 지키는 사람들처럼 거짓되게 몰아가고 조롱하고 계십니다. 이 점 즉각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15. 성경은 대속의 죽음에 기초한 객관적인 의와 거듭난 이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산 결과인 주관적인 의 두 방면을 말합니다. 특히 성경은 후자를 어린양의 신부가 예비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 즉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계19:9)이라고 말합니다. 마22:11-14는 ‘결혼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이가 혼인 잔치에서 쫒겨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전OOO 목사님의 칭의론은 성도들이 ‘의로운 행실’인 ‘세마포 옷’을 예비하는 자체를 행위구원으로 정죄하고 훼방하는 반쪽 짜리 칭의론일 뿐입니다(칭의에 대한 자세한 것은 http://www.localchurch.kr/1691 를 참조).


16. 목사님의 칭의론은 영적인 갓난 아기(고전3:1)의 상태도 장성한 자(히5:13-14)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반쪽 칭의론입니다. 사람의 죄된 본성은 거듭난다고 즉시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대신에 피로 구속된 이후에도 여전히 말씀의 물로 씻고 거룩케 되는 긴 과정이 필요합니다(엡5:26). 그 후에라야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27절)로 (신랑 앞에) 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즉 성경적인 구원은 ‘위치’만 아니라 ‘상태’에서도 그리스도인다운 존재가 되는 것까지를 목표로 합니다. 이 점을 무시하고, 교리적으로 의인되었으니 아무 문제 없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어떤 이들은 ‘값싼 구원론’자들이라고 부릅니다(http://blog.daum.net/kssuh84/1564 참조).


17. 앞서 언급했지만 목사님은 지금 갈라디아서를 크게 잘못 적용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성령을 받음(갈3:2)을 말할 뿐 아니라 이어진 ‘계속적인 성령받음’(갈3:5)을 말합니다. 목사님은 후자에 대해 무지함으로 그것을 ‘율법의 행위’로 오해하고 정죄를 하고 계십니다. 지방 교회측 중 누구도 할례받아야 휴거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신에 ‘계속적으로 성령받음’(갈3:5)을 ‘육체의 행위’로 간주하는 자체가 심각한 오류이고, 휴거를 구원과 동일시하는 것은 이 오류의 연장일 뿐입니다.


18. 목사님은 칭의와 거듭남만 구원이라고 오해하나, 성경은 생명의 성숙을 통한 혼의 변화도 ‘혼의 구원’이라고 말합니다(벧전1:9). 이처럼 구원 개념이 성경과 다른 것이 목사님의 치명적인 문제점입니다. 더구나 구원의 결과인 휴거까지 구원 자체로 착각하다 보니 구원론이 더욱 뒤죽박죽입니다. “구원을 받았기에 그 받은 구원을 구원답게 이뤄간다”는 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무엇을 어떻게 이뤄간다는 말입니까? 말 장난이 안 되려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19. 1) 하나님 보시기에 추수 할만큼 익어가는 것(생명이 성숙)이 성화입니다. 오늘날 생명의 성장 곧 성화와 무관한 밖의 경건의 행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2) 그리고 얼마나 익어야 추수할지는 추수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3) 휴거되면 바로 새 예루살렘(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휴거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기 위한 전 단계일 뿐이고, 4) 그 후에는 선악간에 우리가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마12:37, 네 말들로 인하여 네가 의롭게 되고, 또 네 말들로 인해 네가 정죄함을 받으리라, 고전3:15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불에 의해서인 것처럼 그렇게 되리라, 마25:30 너희는 그 쓸모없는종을 바깥 흑암에 내어 던지라). 그럼에도 목사님은 현재 이런 엄중한 경고의 말씀은 무시하고 ‘값싼 복음’으로 성도들을 속이고 계십니다.


20. “에베소에 여기 저기 흩어진 교회들이 많았다”는 주장 역시 성경에 전혀 근거없는 억지입니다. ‘집회소’는 성경에서 말하는 ‘이 집 저 집’(행2:46)처럼 집회하는 장소를 의미할 뿐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교회는 우주 가운데 오직 하나 뿐입니다(마16:18, 엡4:4). 그 하나 뿐인 교회가 각 지방에 나타난 것이 바로 ‘그 지방에 있는 교회’입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가 그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적인 교회론은 얼마나 명쾌하고 분명합니까?


21. 세 구별된 위격들이 한 동일 본성을 소유하시지만, 한 신격(골2:9, 데오테스, 2320)을 가지심으로 분리된 세 하나님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지방 교회측 삼위일체이자 성경적 삼위일체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 침례받으실 때 내려오신 성령을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침례받으시기 전에는 예수님 안에 성령께서 안 계셨습니까? 바로 그런 삼위를 분리시키는 사상이 삼신론 사상입니다. 존재론적으로는, 아들 하나님 안에 다른 두 위격들이 영원전부터 영원토록 상호내재 하십니다(요14:11). 목사님의 주장처럼 마3:16-17도 성경의 기록이지만, 요14:11도 성경 기록입니다. 따지지 말고 둘 다를 굳게 믿어야 하며,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부인하면 그가 이단입니다!


22.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죽은 강도는 어째서 낙원에 갔습니까?”라는 질문과 현재의 쟁점인 휴거는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낙원은 믿고 죽은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부활 전까지 거기서 안식하는 임시거처일 뿐 영원히 살 천국이 아닙니다. 낙원과 천국이 어떻게 다른지는 이미 첨부글로 소개드렸으나 읽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시간을 내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낙원은 영혼과 몸이 분리된 상태에서 전자만 가지만, 천국은 부활 후 전인격이 다 갑니다.


낙원과 천국 : http://www.localchurch.kr/1592


23. “주님 앞에서 무엇을 자랑할 것인지 말씀해 보세요.”라고 하셨지요?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는 길(빌3:8)을 갔던 사도 바울은 무엇을 자랑했을까요? 이 땅에 사는 동안 사도 바울이 갔던 것처럼, 고난 중에도 힘껏 누리고 얻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 자신의 풍성(엡3:8) 외에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24. 평화 조약이 있다고 해서 금방 휴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이레(7년)의 절반이 지나기까지는 평화 조약은 깨지지 않습니다. 말세에 세상의 동정을 살피는 것은 필요할 수 있으나, 만일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처럼 정작 내면의 기름준비는 없다면 그 또한 간교한 사탄의 속임수에 속는 것입니다. 성경은 휴거된다고 해도 그릇에 기름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그날에 있을 혼인잔치에서 거절될 것이라고 엄숙히 경고하고 있습니다(마25:12).


그럼에도 이러한 의의 말씀은 행위구원으로 치부하여 거부하고, 값싼 구원만으로 성도들을 안심시켰다가 막상 그날에 혼인잔치 참여가 거부될 때 그 책임을 누가 지실 것입니까? 본인이 좋아하는 구절만 골라서 붙잡고 의의 말씀, 딱딱한 음식과 같은 말씀엔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것은 훗날 더 큰 재앙에 직면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전OOO 목사님께서 하고 계신 사역의 실상입니다. 주님의 긍휼을 입으사 목사님께서 자신의 부족을 시인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결단을 내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낫띵 16.10.24. 01:15
구원과 관련하여 몇 가지 쟁점들이 포함된 내용입니다.
 
낫띵 16.10.24. 08:40
위 대화의 대상인 분은 성서 침례교단에 속한 목사님이시고, 구원을 쉽게 풀어 설명하시면서 구원의 확신이 없어 흔들리는 사람들을 돕는 귀한 일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분의 구원론이 1) 죄사함, 2) 거듭남...까지일 뿐이고,
생명의 성장(고전3:6)을 통한 사람의 '혼의 구원'(벧전1:9, 빌2:12, 엡3:17)에 무지하여 혼의 구원을 행위구원 이단으로 치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지요. 

혹시 이곳에 성서침례교단에 속하신 분이 계시면, 이런 현상이 그분 개인에 국한되는지 아니면
교단 전체분위기나 인식이 그러한지 말씀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같습니다.
 
산울림 16.10.24. 08:45
낫띵님 안녕하세요.
아직 제가 분위 파악도 못한터라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애매함을 느낍니다.
님께서는 지방교회에 다니시는가 봅니다.
결론적인 부분만을 듣는것같아서 정리가 잘안되네요.
  낫띵 16.10.25. 03:20
안녕하세요. 산울림님,
그냥 구원과 휴거에 관한 이런 저런 쟁점들에 대해서 쌍방이 나누었던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특히 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에 대해서 이곳에서 토론이 있어서
그 부분이 들어 있는 글을 가져와 소개드려 본 것입니다.
  낫띵 16.10.25. 03:22
낫띵 물론 위 내용에서 언급된 구원(론)관련 관점들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경우 함께 더 대화하며 무엇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인지 함께 알아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낫띵 16.10.25. 03:28
낫띵 특히 거듭난 후 '네가 아니요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심'(갈2:20)을 '행위구원'으로 오해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 중에 한 가지는 골1:27이 말하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경우를 보았습니다. 

사실 거듭난 이후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옛나'가 매 순간 부인되고, 내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살아 표현되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관적인) 칭의이지요. 바울이 빌립보서 3장 9절에서 말하고자 했던 '의'이지요. 롬1:17이 말하는(객관적인) 의와는 조금 다른 방면입니다. 이 둘을 구분해야 요즘 한창 교계에서 논란이 있
  낫띵 16.10.25. 03:28
낫띵 는 칭의론 논쟁이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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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지방교회 교회관은 문제가 없는가? (오은환 목사) 관리자 2016.09.20 1769
255 지방교회의 특징 - 간략한 해명(2) 관리자 2016.09.19 1723
254 지방교회의 특징 - 간략한 해명 관리자 2016.09.19 1744
253 paul 님, 질문 하나 드립니다. 6 새예루살렘 2016.09.17 2257
252 지방교회의 특징 - 장단점 중심으로 (오은환 목사) 관리자 2016.09.16 1763
251 오늘의 지방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1 스티븐 2016.09.15 1847
250 지방 교회-지방 입장 -간략한 해명 2 관리자 2016.09.14 1997
249 지방교회의 태동 이유 (오은환 목사) 1 관리자 2016.09.13 1963
248 위트니스 리: 성도들의 4 가지 계급(단계)을 말하지 않았... 1 관리자 2016.09.12 1986
247 성도들의 4 가지 계급(단계) (오은환 목사) 관리자 2016.09.09 1954
246 스티븐 형제님의 질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 2 새예루살렘 2016.09.09 2031
245 건축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가? 2 스티븐 2016.09.08 2005
244 인간이 하나님이 될까? (오은환 목사) 관리자 2016.09.08 2016
243 지방 교회측은 반펠라기우스주의를 따르는가? 4 새예루살렘 2016.01.30 8049
242 지방교회 교회론 신학토론(8) 관리자 2015.08.24 7078
241 지방교회 교회론 신학토론(7) 관리자 2015.08.24 7016
240 지방교회 교회론 신학토론(6) 관리자 2015.08.24 7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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