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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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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라고는 사치스런 사람들의 오락쯤으로 여기는
시골 촌에 있는 학꼬방 집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이가
한번은.... 잠을 자기 전에 본,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생각하였습니다.


이 우주는 얼마나 넓은 것인가
사람인 나는 죽으면 저 별 어디쯤으로 가는 것일까
언젠가는 죽는 것이 사람에게는 다 찾아올텐데,
그 죽음 뒤에 사랑하는 부모와 가족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끝도 없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가지는
‘영원’에 대해 한번 생각에 젖기 시작하더니
왜 그렇게 슬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 다 자는 사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울고 울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무엇이
얼마나 가슴을 서럽게 했는지...
참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어린 시절 기억은 까마득해져 가서 기억에조차 없어지고
제멋대로 천방지축 좌충우돌하며 사춘기 다 보낸 후
청년 때, 어느 날인가...
주님은 마치 ‘우연’처럼 찾아오셨고
주님을 영접한 지 얼마 지나고 나서야
그 책상 밑에서 혼자 훌쩍거리며 울던 어린 시절,
그 서럽게 울던 그것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영접하고 시작한 교회생활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기이하게도 안식과 만족을 주는 이 행복이란...
그것은 가장 깊은 곳의 갈증을 채워주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은 그것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eternity in there heart)(전3:11)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학생 때는 별난 것처럼 제법 예배당인가 열심히 나가던 누나가
유교스런 가풍이 있는 집에 시집간 후로는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 후 어느 날 폐가 돌처럼 굳어지는 희한한 병에 걸린 누나를
온 가족이 안타깝게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침상에 누워 혹 다시 못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
누나가 급하게 제 아내를 부르더니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았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전해들은 말로는,
누나가 동생인 나를 위해 기도한 노트가 두 권 있는데,
그것을 나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고.... 했답니다.


아, 그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마치 ‘우연’을 가장하고 찾아오신 주님이신 것 같았지만,
주님이 나로 하여금 그분을 영원한 생명으로 영접케 한 것은,
한 사람(누나)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중환자실에 누워 움직일 수 없는 누나에게
저희 부부는 말씀 테이프를 틀어주고 또 틀어주며 기도했습니다.
누나가 원래 가지고 있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깨어나게 해달라고...


.......그런 환경이 마치 태풍과 같이 지나간 후,
누나는 그 안에 있는 ‘영’이 소생되었고,
그 가정의 행복한 교회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영’에 관한 말씀과 메시지를 대하면서,
저에게 쓰여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만족시키는
즉, 내 속 깊은 곳에 있는 ‘영을 소생시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택하신 자에게는 어느 순간에든지,
한번쯤은 영원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는 마음이 주어지고
반드시 ‘영’이 소생되는 편지를 새기게 됩니다.
크든 작든, 험하든 험하지 않든, 길든 짧든...

 

어떤 사람들은 ‘영’이란 단어를 말하면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반대한다 해도... 솔직한 체험에서부터
우리는 우리 속 그 깊은 존재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몸을 편안하게 하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과 좋은 집이 있어도
심지어 많이 배워 교양을 쌓고, 문화활동을 해도,
어떤 때는 성경을 대하고 예배당에 출석한다 하여도...
도저히 그 속을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 공허를 채우지 못하고 그것을 견딜 수 없을 때,
아무리 다른 필요를 다 채워도 자살을 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의 만족과 혼의 만족 외에
그 깊은 곳의 갈증을 채우지 못할 때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 우리 존재 깊은 곳인 ‘영’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헛되고 헛됨을 반복하며 그 끝없는 공허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후... 하고 불어낸 비누방울과 같이 오색찬란하게 빛나며
유유히 공기 중을 떠다니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없어져 버리는 허무한 것이
인생임을 솔로몬은 긴 장탄식을 하며 헛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 속에 지어진 영은
사람의 영 안에서 필요가 있으며 이 필요는 하나님입니다.
이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영원을 갈증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눈 앞에 밝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영’이라는 단어를 오용해서 쓰는 사람들로 인해서
쉬쉬 두려워하며 멀리하고 이단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경과 체험은 그 필요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엡2:1)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골2:13)

죄와 허물은 사람의 영으로 하여금
그 기능과 느낌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마치 바람빠진 타이어처럼 아무런 위치를 갖고 있지 않던 어느 날,
그분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시고
사람의 영 안에 들어가시기만 하면 그분은 사람의 영을 소생시키십니다.


아, 그분의 생명을 분배하여
그의 죽어 있는 영을 깨우는 이것이 구원입니다.
오직 생명의 주님, 그 속이 생명과 부활이신 분,
그 영으로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만이
우리의 죽어 있는 영으로 생명을 갖게 하고
소생되게 하시며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게 하며
우리 깊은 속, 즉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만족시킵니다.

 


다른 것으로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요(요4:24) 그 하나님을 경배(접촉)하는 길은
영을 사용하는 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영은 영이요, 혼은 혼이며, 혼으로는 영을 대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영 안의 생명만이
하나님께 속하고 신선하게 하고 살아있게 하며,
생동력있게 하며, 능력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밝고 거룩하고 참되고 공허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합니다.


한마디로, 오직 이 영만이 하나님을 접촉하게 합니다.
백번, 천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영’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생명을 주며 변화시키는 영이 되시어
우리의 영과 연합되신 그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 존재 안에 ‘영원’은 '영’ 안에 있습니다.


구원의 시작이 이 ‘영’안에서 이루어졌듯이
구원의 노정도 이 ‘영’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영 안에 있지 않으면 영에 관한 것마저
종교 교리로 바뀔 정도로 영은 우리의 참된 실재(reality)입니다.
구원의 길이 오래일수록 ‘영’에 관한 것이
축적된 교리가 되고 경험있는 가르침이 될까... 그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영의 ‘이야기’를
살아있는 실재의 편지로 새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쓴이 : 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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