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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와 논쟁 중 드러난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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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에 대한 최삼경 목사의 정통성을 의심한다"

 

이단감별사 최삼경 목사(빛과소금교회)가 삼신론 논란과 월경잉태 이단사상 등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다.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논란은 과거 최 목사가 이단으로 정죄한 지방교회와의 지상논쟁 가운데 촉발됐다. 최 목사는 90년대 말 그가 현재 상임이사로 있는 '교회와신앙'에 지방교회와 12차례 이상 신학적인 논쟁을 펼쳤고, 그 과정 가운데 삼신론자임이 들통나 논란이 거세지자 일방적으로 지상논쟁을 접었다. 본지는 당시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논란이 어떻게 촉발됐는지 이해를 돕고자 지상논쟁 전문을 개제한다. 마찬가지로 최삼경 목사가 자신에 대한 변론과 반론을 더 원한다면 본지는 언제든지 수용해 독자들에게 전달할 방침이다.

지방교회와 논쟁 중 드러난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1)
지방교회와 논쟁 중 드러난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2)

 

Ⅰ. 최목사가 언급한 ‘형식적인 문제’에 대한 반박

 

첫째, ‘이단’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우리측의 요청에 대하여

 

지난 10월호에서 우리가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이라는 단서와 함께 ‘이단’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자제토록 요청한 이유는 이렇다.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이라는 우리측 첫번째 기사(96년 8월호)의 짧은 서문에서조차도 편집자는 ‘이단’ 또는 ‘이단성’이라는 단어를 6회나 사용하였으며 더우기 표지의 제목을 붉은 글씨로 “위트니스 리(지방교회)의 이단성”으로 정함으로써 토론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독자들에게 지방교회는 이단이라는 선입관을 심어주었다. 또한 같은 8월호에 게재된 예장 통합측 연구보고서 포커스 제목도 “위트니스 리(지방교회)의 이단성”이다. 이런 사례는 9월호에도 다소간 발견되고 있다.

 

이상의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독자들은 이미 ‘지방교회는 이단’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이 글을 대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최목사가 9월호에서 언급한 ‘유익한 논쟁’이나 ‘인신 공격성 논쟁을 피하자’라는 뜻은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단’으로 분류되는 것보다 더한 ‘인신공격’이 어디 있는가?

 

둘째, 지방교회가 기성교회를 바벨론 또는 음녀라고 부른다는 말에 대하여

 

우선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지난 8월호 기사에서도 밝혔듯이 지방교회측은 기독교 안에 있는 참된 믿는이들에 대해 그 분들이 어느 교파에 소속해 있든지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중하며 사랑한다는 점을 재차 밝혀둔다(8월호 135 쪽 참조). 다만 성경의 진리를 말해야 할 경우(특히 성경을 해석할 때), 위트니스 리는 기독교 안의 믿는이들을 비난하지 않고 항상 ‘기독교의 비성경적인 상태’를 지적하고 있음을 주지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최삼경 목사는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식의 언급을 중단하고 진리를 토론하는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오기를 요청한다.

 

예장통합측의 77차 연구보고서는, 지방교회가 기성교회를 바벨론 또는 음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위트니스 리의 책들을 인용했다. 그러나 최 목사는 이 연구보고서에서 위트니스 리의 중심사상을 왜곡하여 독자들을 오도했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내용에 의해 분명히 증명된다.

 

최목사가 인용한 책들에서 위트니스 리는 공통적으로 요한계시록 17장 1절~6절까지를 해석하고 있다. 우선 성경 말씀을 직접 인용해 보자.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계 17:1~2, 4~6).

 

위 말씀을 위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계시록 17장에는 큰 성 바벨론이 있는데, 그것은 로마 천주교를 위주로한 종교적 체계를 말한다. 구약의 바벨론은 모형일 뿐이지만 신약의 큰 성 바벨론은 실제의 것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말은 기독교계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이다. 그러나 큰 음녀와 많은 딸들에 대해 말하는 자는 우리가 아니라 성경이다. ... 오늘날 큰 음녀는 누구인가 ? 그리고 이 큰 음녀의 딸들은 누구인가? 이것이 로마 카톨릭 같은 류가 아니라면 이 말이 누구에게 적용 될 수 있겠는가?

 

성경에서 음행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어떤 것에게로 가는 것이며 이는 마치 한 부인이 그녀의 남편을 떠나서 그 밖의 어떤 사람에게로 가는 것과 같다. 성경은 이 우주 안에서 유일한 남편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한다 (사 54:5, 렘 31:32)”(주의 회복에 관하여, 12~13쪽).

 

“오늘날 기독교계는 두 무리의 것들이 대적에 의해 연합되어 있다. 한 면에서는 금과 보석과 진주가 있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또 한 면에서는 가증한 물건, 음행, 더러운 것이 있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몹시 싫어하시는 것이다. ... 가증한 것과 음행과 더러운 것의 근본은 무엇인가? 물론 그것은 누룩이다” (그리스도냐 종교냐, 210~211쪽).

 

“주 예수님은 모든 유대 백성들이 구약을 가지고 있을 때 오셨다. … 그들(유대인)은 하나님의 일에 관하여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 그들은 (영적으로)죽어 있었다. … 그것은 오늘날의 기독교의 상황과 동일하다. 여러분의 교회는 어떤가? 오 주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일곱 영, 10쪽). 이상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1) 위트니스 리는 위 글에서 기독교를 정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시록 17장을 해석하고 있다. 바벨론에 대한 성경적인 원칙-그분의 아내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실치 못하고 부정한 것들과 섞이는 것-은 그러한 상태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

 

심지어 지방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도 그러한 하락의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는 그가 쓴 ‘일곱 영’이라는 책에서, ‘여러분의 교회’ 또는 ‘주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 메시지는 주로 지방교회 성도들에게 전달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2) 위트니스 리는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처럼 계시록 17장의 큰 바벨론과 큰 음녀를 로마 천주교로 본다. 교회사를 볼 때 ‘성도들과 예수의 증인들을 핍박하여 피를 흘리게 한 것’이 천주교라는 사실은 이미 보편적인 해석이 되었다.

 

3) 개신교 안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이 몹시 싫어 하시는 것’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와신앙>측도 이 점을 인정하여 이에 대한 개혁 방안을 특집으로 다룬 것이 아닌가? (95년 7월호, 96년 6월호).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최목사 생각에, 개신교도 계시록에 기록된 큰 바벨론 또는 큰 음녀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토록 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예민해질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 아닌가?

 

최목사가 인용한 내용에서 위트니스 리의 의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큰 바벨론, 또는 큰 음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영적으로 살아 있어야 하며,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 사랑하거나 그리스도의 몸에 혼합시키지 말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사실들을 최목사는 부정하는지 묻고 싶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최목사는 일부분의 내용을 왜곡하여, 위트니스 리가 기독교를 ‘저주’하고 ‘욕’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독자들의 증오를 유발시키는 최목사의 태도에서 순수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의 자세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셋째, 본 논쟁이 성경적인 논쟁이 되어야 한다는 최목사의 말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토론과정(지방교회측이 96년 8월호와 10월호, 최목사가 9월호와 12월호의 기사를 썼음)을 주의 깊게 지켜 본 독자들은 쉽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으리라고 믿는다. 즉 지방교회의 글은 주장하는 진리의 매 항목마다 성경의 근거가 분명하며 필요시 성경말씀을 직접 인용하였으나, 최목사의 글에는 이상하게도 단 한 구절의 성경말씀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진리의 논쟁을 하는데 어찌 성경말씀이 단 한 구절도 언급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사람이 어떻게 ‘성경적인 논쟁’을 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할 수 있는가? 부디 다음 호부터는 최목사도 분명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논쟁에 임해주기 바란다.

 

넷째, 위트니스 리가 쓴 책에 의해 변증하라는 최목사의 말에 대하여

 

우리는 위트리스 리의 글을 자주 인용했다. 문제는 최삼경 목사가 위트리스 리가 쓴 책의 본문 내용을 문맥과 관계 없이 떼어내어 자기의 제한되고 잘못된 이해로 인해 왜곡한 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트리스 리의 참된 의도를 설명할 뿐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과 여러 신학자들의 견해를 제시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만일 다른 그리스도인이 최목사의 가르침을 이단적이라고 비판할 때, 최삼경 목사는 자신의 글만 가지고 자기의 가르침이 성경적이고 정통적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느 개인의 신앙이 성경적이고 정통적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1) 성경의 가르침의 분명한 지지를 받는 것이고, 2) 역사적으로는 전통적인 신앙을 가진 것으로 인정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관점과 일치하는 것인 것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단체에 속한 사람의 관점이 자신을 지지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지난 10월호에서 지방교회측은 많은 성경 근거와 함께 여러 신학자들과 단체들의 견해를 소개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박형룡 박사, 차영배 교수, 존 칼빈, 필립 샤프 같은 분들은 최삼경 목사와 같은 장로교 계통의 신학자들이다.

 

또한 월간 현대종교, 미국 종교문제 연구소(소장 고든 멜튼 박사)는 종교문제 전문 기관이며, 그리피스 토마스는 미국에서 정통 신학 노선에 있는 ‘달라스 신학교’의 설립자이고, 아타나시우스 등의 초대교부들은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놓은 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분들은 적어도 언급한 주제에 관해 지방교회측과 완전히 일치된 관점을 갖고 있는 데, 이들 중에 누구를 이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어느 단체를 이단적이라고 정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분들의 관점들을 소개한 것이 지방교회측과 최삼경 목사간의 토론을 지켜보는 독자들에게 객관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믿는다.

 

다섯째, 지방교회측의 질문에 임하는 최목사의 태도에 대하여

 

지방교회측은 지난 10월호에서 토론의 주제와 관련하여 최목사에게 일곱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러나 최목사는 자신의 삼위일체관을 밝혀야 하는 ‘핵심적인 질문’은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으로 돌려 피해갔다.

최삼경 목사의 삼위일체관이 성경적인지 아니면 이단적인 요소가 있는지를 점검하고자 하는 우리의 다음 질문들에 관해 최목사는 반드시 답변해 주기 바란다.

 

1) 최목사는 지난 12월호에서, ‘위트니스 리식으로 하나님과 연합을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믿지 않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성경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의 사실에 대한 자신의 관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목사 식의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은 어떤 것인가?

 

2)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인 요한복음에 있는 구절들에 대해서도 역시 최목사는 답변을 회피했다. 다시 한 번 질문하건데, 최목사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시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 안에 계셨던(상호 내주) 사실을 믿는가? 만일 믿지 않는다면 요 14:10~11, 20, 17:21, 10:38의 분명한 말씀을 설명해 주기 바란다.

 

3) 최목사는 주 예수님(삼위의 2격 하나님)을 직접 영접했는가, 아니면 성령님(삼위의 3격 하나님)의 대리를 통해서인가? 또한 영접한 경로는 무엇인가?

 

4) 최목사는 정통교부들이 지지한 삼일성의 경륜적인 방면(Economical Aspect)의 역사적인 사실을 인정하는가? 인정한다면 그러한 관점과 위트니스 리의 관점의 어느 부분이 다른가?

 

5) 최목사는 12월호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와 맏아들을 구별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비판하고 싶으나 뒤로 미루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목사가 보는 하나님의 독생자(요 1:18)와 하나님의 맏아들(롬 8:29)의 차이’는 무엇인가?

 

6) 최목사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형제임을 인정하는가? 만약에 예수님의 형제임을 인정치 않는다면 요한복음 20장 17절과 히브리서 2장 11~12절에서 믿는이들이 예수님의 형제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설명해 주기 바란다.

 

7) 덧붙여서, 최목사는 마치 자신이 정통교회를 대표하여 이 토론을 진행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무엇이 정통교회인지를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최목사가 주장하는 정통교회의 정의는 무엇인가? 또한 로마천주교와 동방정교도 정통교회에 포함되는가?

 

우리는 성경의 빛 아래 우리의 신앙을 제시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최삼경 목사도 위 질문들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혀야만 할 것이다.

 

Ⅱ. 신인합일주의와 양태론에 관한 최삼경 목사의 억지논리

 

1. 위트니스 리가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친다는 주장에 대하여

 

지난 12월호의 최목사의 글을 읽어 볼 때 1992년 장로교 통합측의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 판정’이 얼마나 부실한 연구과정과 해석상의 헛점을 통해 내려진 판단인지가 밝히 드러난다. 이 점을 지난 호 최목사의 글을 재인용하여 증명해 보겠다.

 

최목사는 위트니스 리의 책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이유’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다음의 내용을 인용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 자신을 분배받는 그릇이 되게 하시려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셨다.…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은 하나님 자신을 사람에게 공급하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과 변화의 최후 완성은 하나님과 사람의 우주적인 연합이다”.

 

이 내용을 최 목사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필자(최 목사)의 편에서 정리해보면… 우리와 예수님은 신성이나 인성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는 점에서… 어디에서 예수님과 우리의 차이를 찾을 수가 있는가? 한 마디로 없다.… 그러므로 신인 합일주의(이단)이다 라는 결론을 내린다.

 

지방교회측은 최목사가 이러한 오해를 하는 것같아 지난 10월호의 글에서 이 문제를 분명히 밝혔다. 즉,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Divine Nature)에 참여할 수는 있으나(요 1:12, 벧후 1:4) 경배받는 위치인 ‘신격(Godhead, Deity)’(골 2:9)에는 영원히 참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신격이 있으시지만 믿는이들은 신격이 없는 것이 예수님과 믿는이들의 뛰어 넘을 수 없는 차이임을 분명히 지적했었다.

 

다시 한 번 이점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말을 그의 책에서 직접 인용해 보자.

 

“… 하나님은 사람을 그 분과 똑같이 되게 하시어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그 분과 같은 류가 되고 같은 모양이 되게 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은 그 분의 신격을 가질 수 없다. …”(위트리스 리, 과정을 거치신 신성한 삼일성의 믿는이들 안에서의 분배, 변화, 건축, 18쪽, 한국복음서원, 1994).

 

“… (위트리스 리가 작사한 찬송가 가사 중 일부) 그(하나님) 성품에 참여하나 그 신격에는 참여 못해…”(위 같은 책, 25쪽).

 

최목사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지방교회측이 여전히 예수님(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처럼 가르친다고 말함으로써 10월호를 읽지 않은 독자들을 기만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균형잡힌 관점은 그의 책들을 조금만 더 주의 깊게 조사했더라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엄중한 일을 담당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예를 들면 연구에 필요한 자료의 요청, 또는 공정한 연구자세 등)을 간과한 채, 최목사는 자신의 잘못된 해석 즉 ‘필자(최목사)의 편에서 잘못 정리(해석)한 전제’를 근거로 함부로 남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위트니스 리가 쓴 책 중 ‘과정을 거치신 신성한 삼일성의 믿는이들 안에서의 분배, 변화, 건축, 18, 25, 57쪽, 1994, 한국복음서원, ‘로마서에 있는 하나님의 복음의 결정’ 20쪽, 욥기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24 122쪽, 사람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 메시지2 20~21쪽, 섞임에 관한 실제적인 요점들 45~46쪽’ Concerning The Person of Christ' 서문 등 여러 곳에서 위트니스 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과 성품에 참여하되 그 분의 신격에는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우리와 예수님의 차이)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개혁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에 믿는이들이 참여하는 범위를 구분하는 것인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의 구별과 같은 시각에서 이해할 일이다.

 

정상적인 인식이 있는 독자라면 위와 같은 지방교회측의 글을 읽은 후, 위트니스 리가 예수님과 믿는이가 전혀 차이가 없다고 가르친다는 최삼경 목사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 말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2. 위트니스 리가 ‘양태론’을 가르친다는 주장에 대하여

 

지방교회측은 지난 10월호에서 성경근거, 교부들의 시각과 함께 위트니스 리가 쓴 ‘신약의 결론-하나님 편’의 내용을 소개하며, 위트니스 리가 성경적이며 균형잡힌 삼위일체관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증명했다. 이런 내용을 이미 읽었을 최목사가 마치 읽지 않은 사람처럼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아울러 최목사의 삼위일체관은 무엇인지 밝히도록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최목사는 이것에 대해 답변을 아예 안 하든가 핵심을 피한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최목사와 통합측이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변형된 양태론’으로 보는 근거가 얼마나 불공정한 것인지를 한 가지만 재반박하겠다.

 

최목사는 위트니스 리의 책인 ‘하나님의 경륜’ 16쪽에서,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다” 라고 말한 부분을 지적하며, 그(위트리스 리)는 비록 인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셋’이란 말을 쓰고 있지만 영을 말할 때는 ‘한’ 영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약이나 신약이나 아버지 하나님도 한 영이요, 성령님도 한 영이신데 어떻게 이 둘이 하나라고 하는가?”라고 반문했다(교회와신앙, 1996 12월호, 136쪽).

 

우리는 이러한 최삼경 목사의 반문이 독자들에게 저자의 의도를 얼마나 왜곡되게 전달하는지와 더 나아가 최삼경 목사의 관점이 얼마나 위험한 이단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고자 한다.

 

위트니스 리는 최목사가 인용한 같은 책인 ‘하나님의 경륜’ 10쪽에서, “하나님의 본질은 영이다(요 4:24). 전능하시고 만유를 포함하시고, 우주 안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본질은 바로 영이시다”라고 말한다. 위 말을 근거로, 위트니스 리의 말을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본질(영)이 아닌 하나의 본질(영)” 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말은 삼위일체에 관한 가장 기본적이고 정통적인 신앙고백이다. 장로교 신학의 거장인 죤 캘빈도 ‘한 하나님’은 주로 본질의 단일성을 가리키며 여기서 본질이란 ‘영성’이라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함(차영배, 개혁교의학 신론 227~228쪽, 총신대출판부)으로 위트니스 리와 완전히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목사의 질문의 어조에 의하면, 자신은 삼일 하나님을 두 본질(아버지 하나님이 한 본질, 성령 하나님은 또 다른 본질)을 가진 분으로 믿는다는 말인데, 이러한 믿음은 성경의 계시에도 위배되고 정통신앙에 위배될 뿐 아니라 칼빈의 가르침과도 다른 이단적인 것이므로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목사는 자신의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성경적이고 균형잡힌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변형된 양태론’이라고 비난했다.

 

만일 최목사의 말대로, 아버지가 한 영이고 성령도 다른 한 영이라면 삼위 안에 두 본질이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두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인데 이런 불경스런 말이 어디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최목사가 주로 작성한 1992년 장로교 통합측 조사보고서 중 위트리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부분은 너무 성급히 작성되다보니 사실파악도, 절차도, 기준도, 결론도 모두 미흡한 것이 되어 버렸다. 물론 제한된 시간 내에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여 결론을 내려야 했을 최목사의 입장을 동정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앞에서의 문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대(롬 14:10)앞에 있는 문제가 아닌가?

 

 

Daniel Towle/ 캘리포니아 플러톤교회 목회자
조동욱/ 캘리포니아 플러톤교회 목회자


출처 : 믿음을 위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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