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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17) - 다윗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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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17) - 다윗성(2)

 

 

느헤미야가 재건한 성벽


어떤 면에서 왕의 지위에 있는 총독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함에 있어서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이기적이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았으며, 다윗을 포함한 모든 왕들과 같이 성적인 정욕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는 성벽을 쌓을 목적으로 총독에 주어지는 양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먹였다.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그는 아마 유일하게 그러한 방식으로 처신한 국가 지도자였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


느헤미야 2장 17절부터 20절까지는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축에 관한 말씀이다. 모압과 암몬의 방백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조롱하고 업신여기며 말하기를, 왕을 배반하기 위해 그일을 행하느냐고 물었다(2;19절).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고 했다(20절). 이러한 대답은 느헤미야가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가리킨다. 느헤미야서의 핵심은 예루살렘 성이 그 안에 있던 하나님의 전(殿)의 보호와 안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 재건은 하락한 교회를 회복하심을 예표하며,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회복하심을 예표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집을 건축하심과 그분의 왕국을 건축하심은 함께 나아간다(마 16:18-19).


느헤미야서는 두 부분으로 나누인다. 즉 느헤미야 아래서의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느1 - 7장)과 하나님의 선민의 재조성이다(느8 - 13장). 에스라서는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과 관계되며, 느헤미야서는 성의 보수와 재건축에 관계된다.


B.C. 538년 고레스(키루스, cyrus) 왕의 성전 재건 조서가 내린 후, 이스라엘은 스룹바벨의 영도 하에 예루살렘에 귀환하였고, 22년만인 B.C. 516년 성전 중건이 완수되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성전 중건 이후 72년이 흐른 뒤였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은 느헤미야에 의해 B.C. 444년에 재건되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받고 총독 직책을 맡아 예루살렘으로 향했다(느 2:1-8). 당시는 12년 전 예루살렘을 재건하려던 에스라의 계획이 반대자들의 방해로 인해 중단되어 있던 상태였다(스 4:21-24).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즉시 황폐한 도시 주위를 둘러 보았다(느 2:11-15). 동쪽 경사면, 돌들로 된 벽은 매우 황폐해져 있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놀랍게도 다 허물어져 있던 성벽을 52일만에 재건했다(느 6:15). 그가 성벽 재건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백성들이 동참하여 성벽 각 부분마다 나누어서 건축하였기 때문이었다(느 3:1-32).


성경에는 왜 느헤미야가 52일만에 급히 다윗 성의 성벽을 재건했는지가 나온다. 유다의 이웃들은 이 프로젝트를 반대하고 유대인들의 노력을 비웃었다(느 4:1-2). 그는 특별히 조직한 방식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 방식으로 그는 군사적 방어와 함께 재건을 수행하였다. 그때 백성들의 반은 일을 하였고, 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지고 방어하였다고 한다(느 4:16). 이것은 빠른 작업을 위한 것이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다시 쌓은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 세계에서 성읍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중요한 보호벽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그 나라에 정치적인 자주권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훼파된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아서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주적인 나라가 되었음을 보여 주고 정치적인 중심지 예루살렘을 외부의 적들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귀환한 백성들이 함께 성벽 재건 작업에 참여함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과 자주성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거룩성을 회복하고 유지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느헤미야는 능력있고 신뢰받는 사람이었다. 포로로 잡혀간 나라에서 중요한 지위에 올랐던 것을 볼 때 탁월한 실력을 지녔을 것으로 생각된다(느 1:11, 2:1-8). 그가 했던 술 맡은 관원이라는 직책은 왕이 독살당하지 않도록 먼저 술 맛을 보는 일이었는데, 이는 신뢰받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또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이었으며(느 1:5-11, 2:4, 4:4-5, 6:9;14), 문제에 대해 주의 깊게 접근하여 철저한 계획을 세웠던 사람이었다. 그는 반대자들(산발랏, 도비야, 게셈)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를 지녔으며(느 4, 5, 13장),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느 5:14-18). 또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 과거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느 9:137) 헌신하도록 가르쳤던 지도자였다. 또한 느헤미야는 자신이 행한 일을 기록한 뒤, 하나님께 “나를 기억해 주소서”라고 간청했다(느 5:19, 13:14;22;31).


이는 곧 “나에게 상을 주소서”라는 의미로, 현 세상에서 보상을 바라지 않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바랐던 내면의 가치가 잘 표현된 말이었다. 동시대의 에스라가 제사장으로서 영적인 부흥을 이끌었고, 말라기 선지자가 이를 도왔다고 본다면, 느헤미야는 정치적이고 실제적인 부분에서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진1.jpg


통곡의 벽(서쪽벽)

 

 

사진2.jpg


베데스다 연못 근처, 52일만에 완성한 느헤미야 성벽 건축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3.jpg


헤롯의 성전 모형도

 

 

사진4.jpg


올리브 산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사진5.jpg


남쪽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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