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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8) - 브엘세바

첨부 6

 

이스라엘 탐방(8) - 브엘세바

 

 

오늘 우리는 브엘세바를 탐방했다.


성경 말씀

 

(창 21:31) 두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창 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창 22: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창 26: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창 26: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창 46: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창세기 L/S 메시지 56>


이삭을 위한 우물은 블레셋 인의 땅과 인접한 브엘세바에 있었다. 이스마엘을 위한 우물과는 달리 이 우물은 애굽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인의 땅과 가나안의 좋은 땅에 인접해 있다. 브엘세바는 블레셋인의 땅에 있었고 나중에는 성지의 최남단의 땅이 된다. 성지의 지리를 설명할 때, 성경은 심지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삼상 3:20)라는 구절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북쪽의 단에서부터 남쪽의 브엘세바까지의 거리가 가나안 땅 전체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었던 것을 말해주는 33절은, 또한 그가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영원한 하나님-히브리 원문)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또 다른 특별한 칭호-여호와 엘오람-를 본다. 17장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충족케 하는 능하신 자인 엘샤다이를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엘오람을 본다. 히브리어 「오람」은 「영원」, 혹은 「영원함」을 뜻한다. 그러나 이 히브리어의 근원은 「숨기다」, 「감추다」, 혹은 「시야를 가리다」라는 뜻이다. 베일로 가리워진 모든 것은 자연히 비밀이 된다. 아브라함은 마침내 영원한 분, 비밀하고 신비로운 분인 하나님을 체험했다. 우리는 그분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그분은 참 실재이시다. 그분의 존재는 영원하다. 왜냐하면 그분에게는 시작이나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분은 영원한 하나님이시다(시 90:2, 사 40:28).


<창세기 L/S 메시지 57>


창세기 2장에서 계시의 중점은 생명나무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창세기 21장의 둘째 부분의 중점적인 계시는 에셀나무이다. 우리가 신성한 빛으로서 영적 계시를 가진다면 여기서의 에셀나무가 체험되고 표현되어진 생명나무임을 알 것이다.


우리가 생명나무를 체험하고 표현하지 못할 때 그것은 단지 생명나무일 뿐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생명나무를 체험하고 표현하면, 그것은 에셀나무가 된다. 에셀나무는 생명의 풍성한 흐름을 보여 주는 가느다란 가지들과 미세한 잎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브엘세바에서 맹세의 우물 옆에 심겨진 에셀나무는 생명의 풍성한 흐름을 예표하고, 생명나무를 체험한 결과를 예표한다. 생명나무가 당신의 체험 속에서 에셀나무인가? 우리가 집회에 갈 때마다, 반드시 생명나무가 에셀나무가 되어야 한다.


<창세기 L/S 메시지 59>


창세기 21장은 이삭의 출생에 관한 기록이다. 이것은 분명히 언급할 가치가 있었다. 그것에 이어 같은 장에서, 아브라함은 우물을 다시 찾고 에셀나무를 심고 엘오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그런 후 22장에서 이삭이 드려진다. 그러고 나서 23장에 사라의 죽음과 장사가 있다. 이 세 장들은 적어도 삼십 칠 년 동안의 기간의 장들이다. 삼십 칠 년 동안 아브라함에게 많은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네 가지 일들-이삭의 출생, 브엘세바에서의 생활, 이삭을 드림, 사라의 죽음과 장사-만이 언급되었다. 우리의 인간적인 관념으로 보기에 중요한 많은 것들이 이 세 장에서 빠졌는데, 사라의 죽음과 장사에 대한 세세한 기록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23장을 철저히 살펴보아야 한다. 22장의 끝에서 아브라함, 사라, 이삭은 브엘세바에서 거주하였으며 맹세의 우물과 에셀나무 근처에서 살았다. 이것은 교회 생활의 축소판이다. 왜냐하면 교회 생활은 항상 생수의 우물과 에셀나무 옆에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L/S 메시지 64>


우물은 누림과 만족을 상징한다. 이삭의 전 생애를 통해서, 이삭은 결코 목마름의 고통을 겪지 않았다. 그가 가는 곳이 옳은 장소이든 잘못된 장소이든, 그가 갔던 곳에는 다 우물이 있었다. 그의 생애는 우물로 특징지어졌다.……우물인 당신의 누림이 당신의 위치를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누림은 당신의 운명이기 때문이다.……우리가 잘못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아버지의 자녀들이고 그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나는 매일 내 아버지의 공급을 계속 누린다. 이 누림이 우리의 운명이요 우리의 분깃이다. 어떤 사람들은 누림이 그들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곳에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당신은 당신의 누림을 위한 우물을 가질 수 있으나 주님의 나타나심을 놓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만 브엘세바에서 성취될 수 있다. 우리는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이삭은 어느 곳에서나 누림을 가졌지만, 브엘세바에서만 주님의 나타나심(이것은 하나님의 단순한 방문과는 다르다)을 보았다. 오직 유일한 장소, 브엘세바에서 그는 약속을 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간증의 생활을 가질 수 있었다. 오직 맹세의 우물 브엘세바에서 우리는 주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고, 약속을 받을 수 있고, 간증인 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장막을 칠 수 있다. 여기, 오직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

 
A. 족장시대의 브엘세바


브엘세바는 이삭을 바친 사건 다음에 아브라함이 한동안 머물렀던 곳이고(창 22:19), 야곱이 하란으로 떠나기 전에 머물렀던 곳이며(창 28:10), 야곱이 요셉을 만나러 애굽으로 내려갈 때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창 46:1). 이처럼 브엘세바는 족장들의 행적과 깊이 관련된 성읍이다.


1. 아브라함


브엘세바 부근의 우물로 인해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의 종들 사이에 분쟁이 잦았으나 아브라함은 일곱 암양 새끼를 선물로 주고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 그 우물의 소유권을 확보했다(창 21:30-31). 그리하여 그 우물은 '브엘세바'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일곱의 우물'(일곱 암양 새끼로 산 우물이라는 뜻) 또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도성 바로 바깥 지역에 매우 깊고 오래된 한 우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아브라함의 우물이라는 증거는 없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에셀나무를 심어 그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확인하는 한편 영원한 하나님, 여호와 엘오람(영원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창 21:33).


2. 이삭


이삭이 흉년으로 다시 블레셋 땅인 그랄(Cerar)에 거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부유함을 시기하여 아브라함 때의 우물들을 메워버렸다. 이삭이 장막을 옮기고 아버지 때의 우물을 다시 팠을 때 그랄 목자들이 다투며 우물의 소유권을 주장하자 이삭은 우물 이름을 에섹(Esek, 다툼)이라 짓고 다른 우물을 팠다. 이번에도 그랄 목자들이 다투었으므로 그 이름을 싯나(Sitnah, 적· 증오·대적)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을 때는 다투지 않았으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장소를 넓히셨다 하여 르호봇(Rehobth, 넓은 장소)이라 했다(창26:19-22) 이삭은 점점 장막을 옮겨 마침내 브엘세바로 돌아갔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으므로 이삭이 여기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 26:1-33). 그리고 블레셋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왔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이삭에게 찾아와 화친을 청했다.


B. 가나안 땅 정착 시기의 브엘세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이곳은 유다 지파에게 속했으나(수 15:28), 후에는 시므온 지파에게 돌아갔다(수 19:2). 사무엘의 노년에 이곳에서 그의 두 아들(요엘, 아비야)이 사사가 되었다(삼상 8:1-2). 남유다 출신이면서도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아모스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일찍이 족장들과 관계가 깊었던 브엘세바로 나아가지 말 것을 경고했다(암 5:5, 8:14). 아마도 그 당시에는 브엘세바가 혼합종교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어 원문은 국경을 '건너(pass over)' 브엘세바를 찾지 말라고 되어 있다.


C. 가나안 땅의 남방 경계 브엘세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거하게 된 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땅의 최남단에 위치했으므로 이스라엘 전체 땅을 일컬을 때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을 자주 쓰게 되었다(삿 20:1, 삼상 3:20, 왕상 4:25).


I. 위치 및 지형


A. 위치


텔 브엘세바(Tel Beersheba)는 네게브(Negev) 북부지역, 즉 현재의 브엘세바(예루살렘 남서쪽 120km, 헤브론 남서쪽 43km에 위치)의 동쪽에 위치한다. 네게브 지역에 위치한 성읍으로,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삿 20:1, 삼상 3:20, 왕상 4:25)라는 표현처럼 이곳은 이스라엘 영토의 남방 한계선으로 지칭되었다.

 
B. 도로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문명생활의 경계선인 유대 남부와 네게브 입구에 위치하고, 이스라엘 각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차로였다. 북쪽으로는 유대 산악지대와 연결되며, 동쪽으로는 유대 광야와 사해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해안 평야지대로, 남쪽으로는 네게브(남방 건조지대)와 가데스 바네아(Kadesh-Barnea), 그리고 에일랏(Eilat)으로 이어진다. 또한 브엘세바는 중앙 산지 분수령길(족장의 길)의 종착역으로써 중요한 교통로 구실을 하였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하란 땅으로 갈 때 브엘세바를 출발하여 헤브론, 벧엘, 세겜을 거쳐 벧산에 있는 대간선도로에 이르는 중앙 산지 분수령길(족장의 길)을 따라 갔다(창 28:10). 브엘세바에서 헤브론, 베들레헴, 예루살렘, 기브아, 라마, 미스바, 실로, 세겜에 이르는 길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족장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히 ‘족장의 길’이라고도 부른다.


C. 기후


브엘세바는 네게브 지역의 정착·개발의 중심 도시이다. 네게브 지역은 강우량이 적고 건조한 기후 조건으로 인한 생활 용수의 부족으로 사람들이 거주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고대로부터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제한된 범위에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머물렀을 뿐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스라엘 전역에 물수송망 건설이 완공되면서 네게브 지역의 정착과 농업개발이 활성화되었다.


D. 현대


현대의 브엘세바는 1900년대 이후 오스만 제국과 영국 통치 시기를 거치면서 발전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이스라엘 독립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귀환하였다. 현재 브엘세바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 구리온(David Ben-Gurion)'이 세운 사막농업으로 유명한 '벤 구리온 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Ⅱ. 유적지 및 관광지


A. 텔 브엘세바(Tel Beersheba)


1. 고대의 브엘세바


고고학자들은 발굴 작업을 통해서 텔 브엘세바가 잘 정비된 성읍이었으며, 남방지역의 행정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사진2. 텔 브엘세바 항공사진 참조). 동석기 시대의 도기류(pottery)가 발견된 점으로 보아 BC 4000년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이곳의 최초 정착민으로 보고 있다. 후에 성경에서 언급한 시므온 지파(수 19:1-2)로 추측되는 거주자들이 BC 12 - 11 세기에 이곳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거주자들이 판 20m 깊이의 우물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성벽은 발견되지 않았다.


2. BC 10세기 전후 시기의 브엘세바


그 후 브엘세바는 B.C. 11세기 후반부터 성벽과 집들이 지어지기 시작하였으며, BC 10세기에는 통일왕국 시대가 시작되면서 요새화된 큰 도시가 건설되었다(사진3. 텔 브엘세바 유적지 참조). 텔 브엘세바 유적지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형적인 건축방식으로 건축된 4방 구조집이 있다(사진4. 4방 구조집 참조). BC 9세기에는 성벽이 건설되었으며 인구수는 대략 400~500명 가량이었다. 이곳은 BC 8세기까지 존재했는데, 군사 및 일반 건물들이 모두 견고하게 지어진 것으로 보아 방어목적으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잘 정비된 도시 구조와 물 저장소를 포함한 수로 시스템이 이 도시의 특징이었다. 동쪽에는 큰 창고가 있었는데 이 유적지에서 곡식과 식량을 담은 많은 항아리들이 발견되었다. 또한 창고터에서 뿔 달린 제단의 잔해들이 발견되었는데, 제단이 부서진 상태로 발견된 것은 히스기야 왕의 ‘산당 타파 정책’의 일환으로 추측된다(왕상 18:4). 이 창고 옆에는 행정을 담당하는 궁전이 있었다.


3. 브엘세바의 파괴와 재건 - 텔 브엘세바는 산헤립(Sennacherib)에 의해서 B.C. 701년 파괴되었다. 이후 몇 채의 집들이 이곳에 지어져서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더 이상 행정 도시로서의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이후 바벨론에게 정복되어 이 도시는 방치되었고, 헬레니즘 시대에는 신전이 세워졌다.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시대에는 목욕탕을 갖춘 큰 성이 되기도 했다. 이 도시는 로마, 비잔틴 시대에 현대 브엘세바 근처로 이동하였고, 20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의 행정 도시로서 발전되었다.


영적인 공급


우리가 생명나무를 체험하고 표현하지 못할 때 그것은 단지 생명나무일 뿐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생명나무를 체험하고 표현하면, 그것은 에셀나무가 된다. 에셀나무는 생명의 풍성한 흐름을 보여 주는 가느다란 가지들과 미세한 잎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브엘세바에서 맹세의 우물 옆에 심겨진 에셀나무는 생명의 풍성한 흐름을 예표하고, 생명나무를 체험한 결과를 예표한다. 생명나무가 당신의 체험 속에서 에셀나무인가? 우리가 집회에 갈 때마다, 반드시 생명나무가 에셀나무가 되어야 한다.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처럼 이곳은 이스라엘 영토의 남방 한계선으로 지칭되었다(삿20;1, 삼상3;20, 왕상4;25).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각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차로였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하란 땅으로 갈 때 브엘세바를 출발하여 족장의 길을 따라갔다.


현대의 브엘세바는 1900년대 이후 오스만 제국과 영국 통치 시기를 거치면서 발전하였다 20세기에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기점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본격적으로 귀환하였다. 브엘세바에는 다비드 벤 구리온이 세운 유명한 벤 구리온 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BC 10세기에는 통일왕국 시대가 시작되면서 요세화 된 큰 도시가 건설되었다 텔 브얼세바는 BC 701년 산헤립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아브라함의 우물로 관심을 받았던 ?이 우물은 BC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깊이는 30m에 이르고 위쪽 6m는 다듬어진 돌로 마무리 되었다. 텔 브엘세바에서 BC 8세기에 우상숭배에 사용되었던 번제단이 발견되었다.

 


사진1.jpg

 

우물곁에 에셀나무! 에셀나무는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한다.

 

 

사진2.jpg


브엘세바의 우물(아브라하함이 마셨던 우물)

 


사진3.jpg

 

텔 브엘세바 항공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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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신의 번제단 히스기야왕 때 요시야 왕때 신당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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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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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저장소로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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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갈렙 2019.01.06. 14:37
저는 생명나무(예슈아)가 표현된것은 우물이라고 여겨지며 동산이 생명나무를 보호하기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셨듯이(나타) 우물을 보호하기위해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었다(나타)라고 생각됩니다. 우물은 예슈아께서 수가성의 여인에게 말씀하셨듯이 다시 목마를 뿐 우리는 생수인 예수아 즉 생명나무를 먹어야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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